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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뜻하는 옛 속담은?

중앙일보 2016.10.08 00:16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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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
한성우 지음, 어크로스

한글날 맞아 알아본 우리말 쓰임새
밥·쌀이란 말 사투리가 없는 이유
속담 속 언어적 유희 낱낱이 풀어
‘헤르미온느’ 등 독창적 콩글리시
고쳐 쓸 필요없는 한국말 주장도

368쪽, 1만6000원

우리말 절대지식
김승용 지음, 동아시아
600쪽, 2만5000원

콩글리시 찬가
신견식 지음
뿌리와이파리
340쪽, 1만5000원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말의 쓰임새를 꼼꼼히 들여다본 연구서들이 여럿 출간됐다. 우리의 언어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살찌울 작업들이다. 분명 곱씹어 파헤친 대상은 ‘말’인데, 읽히고 보이는 건 ‘삶’이다. 우리네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우리말의 가치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음식의 언어』는 우리 음식에서 길어올린 말들의 성찬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삼시세끼 먹거리와 관련된 우리말의 다양한 기원과 용법을 펼쳐놨다. ‘밥’과 ‘쌀’에 사투리가 없다는 특징을 찾아내고는 “모든 지역에서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음식이었으니 변이가 일어날 여지가 없었다”고 해석했고, ‘밥’이 주인이었던 ‘밥상’이 ‘먹을 것’ 중심의 ‘식탁’이 된 것을 두고는 “밥에 집착했던 우리 삶이 먹을 것을 마음대로 즐길 만큼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라고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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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한글은 고정된 고체가 아니라 유동하는 액체에 가깝다. 외국어 핀들을 쓰러뜨리는 한글 볼링공 그림처럼 외래어를 받아들여 어휘를 풍요롭게 늘려왔다.

각 단어의 생활 속 분류법을 일러준 대목도 흥미롭다. “국물이 많으면 국, 적으면 찌개. 비싸고 크면 전골, 싸고 작으면 찌개” “밥과 함께 먹으면 채소, 밥 먹고 나서 혹은 밥 때와 관계없이 먹으면 과일” 등이다. 생물학적 분류에 따르면 모두 채소여야 할 오이·참외·호박·수박 중 참외·수박이 우리에게 과일로 통하는 이유다.

『우리말 절대 지식』은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무려 10년 동안의 자료 조사 과정을 거쳐 펴낸 속담책이다. 저자는 “속담은 삶의 지혜가 압축된 파일”이라며 속담 속 사물의 속성과 언어적 유희를 낱낱이 풀어냈다. ‘아우가 형보다 잘난 경우’를 일컫는 ‘갈모형제’를 갈모 사진까지 동원해 “갈모는 비가 올 때 비싼 갓이 젖지 않도록 갓 위에 씌우는 모자로, 위쪽은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진다. 이 모양을 본떠 형이 아우보다 도량이나 그릇이 좁은 경우 이렇게 부른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또 옛 속담과 비슷한 의미의 ‘현대 속담’도 함께 짚어,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말의 속성을 보여준다. ‘사돈 남 말 한다’는 ‘유체이탈화법’, ‘남의 집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너나 잘하세요’, ‘언발에 오줌 누기’는 ‘카드 돌려막기’에 연결시켰다. ‘빼도 박도 못한다’의 현대적 표현일 ‘직장 가면 죽이고 싶고 백수 되면 죽고 싶다’ ‘워킹맘은 애 생각에 울고 전업맘은 제 생각에 운다’ 등에선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애환이 생생하다.

제목부터 이채로운 『콩글리시 찬가』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를 지양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기존의 한글날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뜻이 잘 통한다면 굳이 원어의 발음과 용례에 맞춰 고쳐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15개 언어를 구사한다는 저자는 “언어는 제자리를 지키는 고체라기보다는 요동치는 액체에 가깝다”면서 “한국어 안에 녹아들어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는 ‘콩글리시’ 역시 한국어를 이루는 성분” 이라고 강조한다. 일례로 국어사전이 ‘웨이퍼(wafer)의 잘못’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웨하스’ 를 들었다. 웨하스는 웨이퍼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잘못된 발음이 굳어진 단어다. 하지만 저자는 웨하스를 웨이퍼로 바꿔쓰자는 주장에 대해 “잘 쓰던 말을 왜색 때문에만 바꾼다면 억지스러운 탈색”이라고 봤다. “바꿔봤자 고작 영어”라며 “어원을 단순히 영어 혹은 한 언어로만 여겨 그것과 조금만 다르면 막무가내로 뜯어고치기보다는 여유와 아량으로 낱말의 역사와 현재의 쓰임을 두루 살필 것”을 권했다.

그런 관점에선 『해리 포터』의 여주인공 이름 ‘헤르미온느’도 상당히 독창적인 한국말이다. 영어 이름 ‘Hermione’를 원어 발음에 충실하게 읽으면 ‘허마이어니’가 될 테지만, 이름의 그리스어 어원 ‘헤르미오네’와 ‘칸’을 ‘칸느’라고도 하는 프랑스어 민간 표기 방법을 결합시켜 ‘헤르미온느’를 만들어냈다. “헤르미온느로 이미 통용되고 있다면 이것도 한국 현대 문화의 전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신선하다.
 
[S BOX] 꿀밤은 도토리의 사투리, 영계는 어린 닭 아닌 연한 닭
손으로 머리를 아프게 때리는 동작 ‘꿀밤’은 꿀밤을 ‘꿀처럼 단 밤’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에겐 난데없는 단어다. 꿀밤은 도토리의 사투리란 사실을 알아야 납득이 된다. 끝이 뾰족한 도토리로 맞는 것처럼 아프다는 의미에서 ‘꿀밤 맞다’ 등의 표현이 생겼다.

‘흥분의 도가니’의 ‘도가니’는 음식 이름으로 종종 오해받는다. 도가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소 연골을 둘러싸고 있는 살’이고, 다른 하나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이다. 후자의 도가니는 제철소에나 있으니 본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흥분의 도가니’에서 도가니탕을 떠올리고 ‘흥분의 도가니탕’이라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삼계탕의 재료가 되는 어린 닭 ‘영계’는 영어 ‘영(young)’와 한자어 ‘계(鷄)’의 결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족보 없는 조어가 표준어로 살아남았을 리 만무하다. ‘연한 닭’을 뜻하는 ‘연계(軟鷄)’에서 비롯된 단어로 보는 게 맞다.

‘닭도리탕’은 이름 때문에 엉뚱한 수난을 겪은 음식이다. 일본말로 새를 뜻하는 단어 ‘도리’가 들어있으니 순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밀려 볶음도 아닌 음식이 ‘닭볶음탕’이 돼버렸다. 하지만 『우리 음식의 언어』 저자는 “아무리 봐도 처음 음식 이름을 지은 이가 ‘닭새탕’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 같진 않다”고 한다. ‘조리(調理)’의 옛 발음인 ‘됴리’에서 유래됐다고 보고 ‘조리한 닭탕’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는 것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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