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알레포의 눈물과 유엔의 한계

중앙일보 2016.10.08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이상렬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선 지금 제71차 유엔 총회가 한창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합의해 냈을 때와 같은 흥분과 감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유엔의 한계에 대한 탄식과 자조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북한도 유엔의 무력감에 일조했다. 총회 개막 불과 며칠 전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 없는 세상을 갈망해온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의 도발에 공분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듭된 제재도 북한의 광란의 핵도발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끊이지 않는 분쟁과 늘어나는 난민 문제는 유엔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단적인 예다. 유엔 총회 기간에도 시리아의 알레포엔 폭탄이 쏟아졌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평화를 논의하는 순간에도 수백 명의 어린이와 시민이 무자비한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 25만 명이 갇힌 알레포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공포에 질리고 피범벅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 연일 전 세계로 타전됐다. “우리는 매일 벌레처럼 으깨지고 있는데 세계는 우리를 버렸다”는 의료진의 절규가 유엔 총회장을 울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10년 임기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그에겐 이번이 마지막 총회다. 파리 기후변화협정과 ‘지속가능개발목표(SDG)’라는 그의 레거시(legacy)는 북핵과 분쟁의 확산 앞에서 빛이 바래고 있다.

사실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반 총장만큼 분쟁 지역을 직접 발로 뛴 이는 찾기 어렵다. 분쟁에 직간접 연루된 강대국들에 대한 공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총회 기조연설에선 “시리아에서 전쟁이 계속되게 하는 강력한 후원자들 역시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안보리 토의에선 “차라리 도살장이 더 인도적이다”며 민간인과 의료진 살상 방지에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지난달 말 한국의 유엔 가입 25주년 행사장에서 반 총장을 만났다. 그는 쉴 여유가 없어 보였다. 빡빡한 유럽 출장 일정을 얘기하며 유럽 지도자들과 시리아 문제 해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곤 유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알레포에선 반 총장과 유엔의 노력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이후에도 민간인과 병원에 대한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유엔의 평화 유지와 전쟁 방지 역량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유엔은 전쟁의 재앙 방지라는 주된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흔들리고 있다”(뉴욕타임스)는 평가까지 나온다.

유엔이 변화된 세상에 부합하는 개혁을 충분히 이뤄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 사이 유엔의 권위는 약화되고 문제 해결 능력은 한계에 부닥쳤다. 안보리를 장악하고 있는 강대국들은 번번이 개혁을 거부했다. 상당수 회원국은 그런 현실을 방관했다. 반 총장은 그 벽을 허물지 못했다.

유엔은 지구촌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지난 10년간 유엔을 한국인이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가슴 벅찼다. 그런 유엔의 한계를 보는 것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