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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무용] 몸을 해부하다, 감정이 드러나다

중앙일보 2016.10.08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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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주
무용평론가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공연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 문화축제부터 세계적 작품을 소개하는 공연예술제까지 그야말로 풍성하다. 그중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무대에 오른 ‘공공해부학’(1~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 출신 프랑스 안무가 토메오 베르제스가 신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안무가 베르제스


흰 벽의 방 안,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여자와 등지고 서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여자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다. 마치 ‘버그(bug) 난 움직임’처럼 규칙적 반복과 불규칙적 흐름이 대치하면서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인지, 서로를 경멸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또 다른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관계는 더욱 혼돈스러워진다.

영화감독 마틴 아널드의 ‘발견된 영상(found footage) 기법’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아널드의 덜덜거리듯 반복적인 영상을 라이브로 재연해 놓은 듯하다. 만약 정지 없이 평범한 움직임으로 이어갔다면 10분이면 끝날 작품을 ‘분절’과 ‘반복’으로 55분까지 늘려 놓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움직임을 무수한 조각으로 분절해 나열했더니 그 안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무의식 속의 숨겨진 감정이 적나라하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감정의 결을 세세하게 데이터로 만들어 찰나의 움직임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 베르제스의 안무기법이다. 인생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안무법이라지만 새롭고 특이하다. 최근 세계적으로도 젊은 안무가들 사이에 반복기법을 종종 사용하는데 베르제스가 원조 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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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세계무용축제에 소개된 ‘공공해부학’. 우리 몸짓에 숨겨진 감정을 낱낱이 드러낸다. [사진 크림아트]

베르제스의 평범하지 않은 가정사를 담고 있어 극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친할아버지가 참전하고 수년간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재혼했지만 이후 할아버지가 귀향하는 바람에 한 지붕 아래 3인 2쌍이 살게 된다. 운명적으로 얽힌 삼각관계 속에서 미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질투와 분노의 감정을 엿볼 수 있다. 튀어나올 것 같은 눈동자와 극도로 긴장한 팔다리를 보면 비록 우아한 춤 동작은 아니지만 이것이 마임이 아니라 무용극이라는 데 동의하게 된다.

베르제스의 이력 또한 남다르다.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정육점 아들로 태어나 수영선수를 거쳐 의사가 됐다. 이후 프랑스 안무가 마기 마랭의 눈에 띄어 무용수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정육점에서 보고 자란 ‘고기’, 의사로서 해부했던 ‘살’, 수영선수와 무용수로 사용했던 자신의 ‘몸’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안무가가 됐다.

베르제스는 말한다. “안무를 할 때면 토끼의 가죽을 벗기던 아버지의 칼, 의사가 되어 내 손에 들려 있던 메스가 떠오른다. 이제 난 그 칼로 신체와 움직임을 해부한다. 그런데 해부해 놓은 몸이 관객과 만나면 그때마다 새로운 몸으로 환생하는 것이 아닌가. 안무의 즐거움은 바로 그런 ‘우연’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처럼.”

장인주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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