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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창의성 생겨”

중앙선데이 2016.10.07 22:06 500호 8면 지면보기

올라퍼 엘리아슨 1967년생. 아이슬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 95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2003년 제 50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덴마크 국가관 대표작가를 맡은 것을 비롯해 각국의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인 ‘초록빛 강’(1998~2001), 뉴욕 강가에 설치한 ‘뉴욕시 폭포’(2008), 기후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 그린란드의 빙하 덩어리를 설치한 ‘얼음 시계’(2014),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 설치해 생존 작가 전시 중 가장 많은 관람객 수를 기록한 ‘현실 기계’(2015), 파리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에 거대한 설치물을 만든 ‘여름 프로젝트’(2016) 등으로 끝없는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후·환경·난민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실천으로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가’로 크리스탈 어워드를 수상했다. 베를린 예술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천장에 설치된 직경 13m 짜리 원의 끝 노즐에서는 물이 안개처럼 뿌려지며 뽀얗고 촘촘한 수벽을 만든다. 그 수벽을 비추는 빛에 의해 무지개가 생긴다. ‘무지개 집합’(2016), 스포트라이트· 물·노즐·목재·호스·펌프, 가변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neugerriemschneider, Berlin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49)은 창조자다. 빛·바람·물·안개·돌·이끼 같은 자연적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그래서 뭔가 느끼게 만든다. ‘유사(類似) 자연’ 예술이다.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홀에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날씨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관람객들은 마치 해변에 선탠하러 온 사람들처럼 미술관 바닥에 누워 그가 만들어낸 빛을 즐겼다. 관람객의 체험은 그의 예술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다. 반사나 착시 같은 극적 효과를 사용하는 이유도 보다 적극적으로 관람객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작품에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다.


빛·바람·물·이끼 활용한 '유사 자연' 창조자, 올라퍼 엘리아슨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시작된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9월 28일~2017년 2월 26일)은 이 ‘창조자’의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초기작 ‘이끼 벽’(1994)부터 최신작 ‘무지개 집합’(2016)까지 조각·설치·사진·회화 등 총 22점을 볼 수 있다.



그는 왜 유사 자연 예술을 하게 된 것일까. 그에게 환경과 예술은 어떤 관계일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그를 따로 만나 물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네 종류의 아이슬란드 화산암으로 육각형과 평행사변형 모양의 패턴을 만들어 바닥에 설치했다. ‘무제(돌 바닥)’ (2004), 조립현무암·유문암·현무암, 가변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부드러운 나선’(2016)과 ‘강한 나선’(2016). 각각 스테일리스 스틸, 페인트(검은색·흰색), 모터. 각각 높이 450 x 지름 100 cm



어릴 적 이야기가 궁금하다. “부모님은 교육 수준이 높진 않았지만 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셨다. 아버지는 요리사를 겸하는 아티스트였다. 어선 주방장 시절, 종이 위에 공을 올려놓고 배가 움직일 때마다 공이 그려내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재봉사였다가 나중에 재단사가 됐는데,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버트 라우센버그를 좋아하셨다. 내가 어려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네가 지금 지구를 밀어내고 있는 거야’라며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의 의미를 들려주시곤 했다.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정형화·정량화된 것을 추구하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세상 그대로를 재현하지 말라’면서 내가 다른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셨다. ‘아름다운 것은 측정이 불가능하다’면서.”



어떤 아이였나. “평범했다. 그림에는 좀 소질이 있어서 로봇과 괴물을 잘 그렸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도 없었다.”



자연과의 교감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1970년대 오일 쇼크가 왔을 때, 오후 7시면 마을의 모든 불이 꺼졌다. 하지만 그리 어둡진 않았고 창문 밖으로 푸르스름한 석양빛이 펼쳐졌다. 촛불을 켜면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그런 느낌이 내 안에 있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산에 자주 다녔다. 하지만 풍경을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뛰어놀았다. 아버지는 내게 ‘뛰지마’ ‘하지마’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우리 애들에게 ‘조심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세상 보는 방법을 키워주셨구나 생각한다.”

다양한 기하학 패텬으로 구성한 ‘사라지는 시간의 형상’(2016), 황동·스테인리스 스틸·스테인리스 스틸 거울·페인트(검은색)·할로겐 전구·조광기, 214 x 321 x 214㎝. Courtesy of the artist;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neugerriemschneider, Berlin ⓟ Jens Ziehe

물이 거꾸로 올라가는 ‘뒤집힌 폭포’(1998), 비계·강철·물·목재·플라스틱 판·펌프·호스, 312 x 278 x 160 ㎝. Collection: Thyssen-Bornemisza Art Contemporary Collection, Vienna

‘당신의 미술관 경험을 위한 준비’(2014), 아크릴 프리즘 고리·필터처리된 색유리(노란색)·스포트라이트·LED 조명·모터·전선, 가변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neugerriemschneider, Berlin.



덴마크 왕립미술학교 시절, 철학과 현상학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했다. “미대에서 공부하면서 오브제, 즉 객체의 비물질화에 관심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포커스를 뒀다. 내 작품과 그것이 보여지는 맥락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도록 철학적 기반을 쌓게 됐다. 또 사회과학·자연과학·도시학·도시계획·인프라 건설·심리학·신경과학·행동과학 그리고 경제학까지 폭넓게 공부했다. 모두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면 기하학적 아름다움도 추구하고 있다. “내 스튜디오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다. 건축가, 수학자, 기술자, 프로그래머, 미술사가, 요리사 등 9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다. 난 수학은 젬병이지만 수학적 아름다움이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을 내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현대 미술이 어렵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사람들은 ‘내가 잘 모르는 데 부족한 것일까’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당신은 잘 몰라도 완벽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술관에는 미술을 아는 사람들도 오지만 미술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온다. 심지어는 나도(작가도) 한 사람의 관객에 불과하다.”



그의 이 말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혜수 삼성미술관 리움 학예연구실장은 철학·과학·자연·건축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작품의 기저에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이 깔려있다고 설명한다.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엘리아슨의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오브제가 아닌 관객의 참여와 이를 통해 경험하는 심리적 감정들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비물질성의 주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엘리아슨은 1960~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제임스 터렐 등에 의해 주도된 ‘빛과 공간 예술 운동(Light & Space Movement)’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함과 동시에 작품의 탈물질화를 통해 감각적 지각작용에 중점을 둔다. 최소화된 형태와 공업용 재료의 사용, 광선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환경 조성, 빛과 결부된 지각심리학적 실험 등을 통해 작품의 비물질화를 시도한다.

바람을 내며 스스로 움직이는 ‘환풍기’(1997), 선풍기·전선·케이블, 가변크기. Collectio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포실포실한 북유럽 순록이끼로 바람벽을 가득 채운 ‘이끼 벽’(1994), 순록 이끼·목재·철사, 가변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neugerriemschneider, Berlin

태양광 전등 ‘리틀 선’을 시연하고 있는엘리아슨

반사와 분절을 통해 자신이 해체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자아가 사라지는 벽’(2015),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강철·목재, 가변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neugerriemschneider, Berlin



당신은 자연 환경을 인공 구조물 안으로 끌어와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마치 창조자처럼. “나는 창조자이기에 앞서 탐험가다. 탐험의 과정 자체는 창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의 결과에서 창의적인 것이 나온다. 작품이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창의성이 생긴다. 의미 있는 컨텍스트가 없다면 작품은 단순한 물건에 불과하다. 창의적 에너지는 주변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도 실제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리틀 선(Little Sun) 프로젝트는 어떤 것인가. “예술과 과학을 결합하는 하나의 실험이다. 태양열 기술을 이용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하다가 2012년부터 시작했다. 현재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세계 인류의 7분의 1이다. 이들은 화석 연료나 나무를 태워 쓰면서 환경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전력을 공급해주고 싶었다. 작은 발전소를 아주 많이 만들고 싶었다. 리틀 선은 하루 5시간 동안 태양열을 충전하면 하루 밤을 밝힐 수 있는 기계다(한국 판매가는 개당 4만원이다). 한 가정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선진국에서 팔아 제작비용을 마련해 인도와 아프리카 오지에 공급한다. 지금까지 50만 개 정도 팔렸다. 최근에는 태양열로 충전되는 모바일용 배터리도 새로 만들었다.”



직접적으로 환경운동에 나서기도 하는가. “내가 직접 환경운동을 한다기보다 내 작품을 매개로 활동한다. 최근 브뤼셀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는데, 건물 지붕에 태양열 발전 패널을 설치하고 그 힘으로 방에 조명을 밝혔다. 작품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내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다. ”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변화가 생겨야 할텐데. “변화는 전통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식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변화의 힘이 리더십에서 나오는 것, 즉 리더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상향식 변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도 파워가 있다. 내가 리더가 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러분이 바로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예술은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산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긍정적 태도가 부정적인 것보다 낫다. 부정적인 태도는 힘을 빼앗아간다.”



사회적 변화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책이나 신문 읽기 등에서 얻는 지적인 지식과 몸으로 얻는 지식을 종합할 때, 비로소 사회적 변화가 시작된다.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이 거기 덧붙여졌을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내 전시는 몸과 머리를 모두 이용해 느끼고 배우는 자리가 될 것이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m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삼성미술관 리움·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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