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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은 거절근거법…공무원 가장 반길 것”

중앙일보 2016.10.07 01:49 종합 12면 지면보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으로 공무원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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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담에서 최근 시행된 ‘김영란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김영란법을 최초로 제안했던 김영란(60·서강대 석좌교수) 전 대법관이 법의 최대 수혜자가 공무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일 오후 7시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서울 동교동 가톨릭회관에서 출판사 창작과비평(창비) 주최로 열린 대담에서 80여 명의 관객과 마주 앉았다. 그의 저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책 읽기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 자리였지만 초반 김영란법을 주제로 대담이 이뤄졌다.

김영란 전 대법관, 대담서 밝혀
우리 사회 인적네트워크 문화 강해
친척·선후배 이야기 거절 잘 못해
한때 법 이름 못 고치면 개명 생각
오늘 이 모임도 사전 신고하고 와
며칠 전 소포 ‘마음만 받겠다’ 반송

김 전 대법관은 “저도 김영란법 대상이다. 오늘 모임도 사전신고를 하고 왔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내가 이 법을 발의한 첫 번째로 중요한 이유는 (부정한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웃, 친척, 학교 선후배 등 인적 네트워크 문화가 매우 강해서 그들이 개인적 사유를 이야기하면 거절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무원들도 ‘안 됩니다’라고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렇게 근거를 만들어줬음에도 거절을 안 하면 규제하자는 것”이라며 “공무원행동강령을 법으로 끌어올려 공적 업무자들이 규범을 형식적이 아닌 내면화를 해 정착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도 있었다”고 말을 이었다. 특히 “사회에는 소수의 악당들이 저지르는 거대한 부정부패도 있지만,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정에 젖어드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법의 취지를 강조했다.

법 시행 이후 겪고 있는 부담도 털어놨다. 그는 “매일 포털사이트 전면에 이름이 나오는 게 부담스럽긴 하다”고 말했다. 법의 원작자이면서 지나치게 침묵한다는 평가에 대해선 “제가 운동하듯 나서서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불리는 것에 대해 “법 이름을 못 고치면 내 이름이라도 고쳐야 하는 거 아닌가도 생각했다. 국민이 그렇게 불러주시는 게 저를 신뢰하고 지지해 주시는 것 같아 불평할 처지는 아니다”며 웃었다.

김 전 대법관은 다가올 변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도 나타냈다. “김영란법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다리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벌 수위나 체포 가능성만 높인다고 부정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규범을 내면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최근 사례도 알렸다. 김 전 대법관은 “누군가가 비싼 선물을 보내면 성가셔도 돌려보내야 한다. 며칠 전에 나에게도 학교로 소포가 왔길래 ‘죄송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라고 다시 붙여 반송했다”고 소개했다. 또 “그런데 그 소포가 굉장히 무거운 물건이어서 우체국까지 들고 가는 데 힘들었다. ‘나를 좋아하면 이런 것 안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김 전 대법관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선 “매일 신문에 몇 가지씩 부작용이 실리는데 본의 아니게 사립학교나 언론을 그렇게 (규제)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며 “입법 취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위해 법을 만들었는지 생각하며 보완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습이 좋은 모습으로 바뀔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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