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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밀어낸 ‘갓효신’…음원차트 서열 지각변동

중앙일보 2016.10.07 00:47 종합 25면 지면보기
올 가을 음원차트에서 아이돌이 실종됐다. 당초 샤이니·인피니트·2PM 등 아이돌 그룹의 대거 컴백으로 치열한 혈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90년대 발라드 황제들의 귀환과 인디씬의 떠오르는 샛별들이 어우러져 그간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진영이 구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같은 변화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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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일색이었던 가요 음원차트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들. 6년 만에 돌아온 박효신. [사진 각 소속사]

①다시 돌아온 발라드의 계절=사실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란 공식은 깨진지 오래였다. 아이돌 댄스음악과 힙합의 파죽지세에 몰려 30%가 넘던 차트내 비중이 20% 초반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EDM 등 새로운 음악이 대중의 귀를 사로잡으면서 상위권에서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한 곡이 발라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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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左), 한동근(右). [사진 각 소속사]

하지만 지난 8월 말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해’가 실시간 차트 1위에 등극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집 ‘I’M’을 발매하면서 “아이돌만 (차트에) 줄세우기 하라는 법 있나. 나도 하고 싶다”던 임창정은 ‘내가 저지른 사랑’ ‘노래 한 번 할게요’ 등으로 그 꿈을 이뤘고, 지난 3일 6년 만에 7집 ‘I am A Dreamer’로 돌아온 박효신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본인의 경험담을 녹인 가사가 돋보이는 수록곡 ‘숨’은 더블 타이틀곡 ‘Home’ ‘Beautiful Tomorrow’보다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발라드 가수 한동근·임창정도 가세
8월부터 가요 차트 정상 바통 터치

인디계 ‘볼빨간 사춘기’도 다시 주목
“아이돌, 팬덤 효과 끝나면 순위 하락”

이에 박효신은 소속사를 통해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노래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어떤 곡을 실어야 할지 오랜 고민을 했다”며 “무엇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희망과 용기, 위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위로가 고팠던 이들에게 “고단했던 내 하루가 숨을 쉰다”는 가사와 절절한 멜로디는 그대로 스며들었다.

②오묘한 매력 인디씬의 활약=‘갓효신’ ‘갓창정’ 사이를 오가며 실시간 음원차트 천장을 향해 ‘지붕킥’을 날리고 있는 건 이름도 낯선 ‘볼빨간 사춘기’다. 4인조 ‘경북 영주 시골밴드 볼빨간 사춘기’로 2014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6’에 도전했던 이들은 2인조 여성 듀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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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 사춘기(우지윤·안지영) 등 인디 가수들은 미처 몰랐던 다른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 각 소속사]

부끄러움이 많아 팀에서 ‘볼빨간’을 맡고 있는 우지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으로 ‘사춘기’ 역할이라는 안지영은 말그대로 순수하다 못해 담백한 가사와 몽환적인 멜로디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엄지와 검지만 해도 내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 붙어 안달 나니까”(‘우주를 줄게’) “이렇게 아픈 마음만 가지고 사는 건/도무지 불공평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나만 안되는 연애’) 등의 솔직발랄함은 익숙지 않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광경 아닌가. 바로 ‘인디계의 아이돌’이라 일컬어지는 십센치나 지난 여름밤을 달궜던 스탠딩 에그처럼 ‘나만 알고 싶은 음악’에서 ‘모두가 좋아하게 된 음악’으로 변모해가는 바로 그 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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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자카파(왼쪽부터 권순일·조현아·박용인)등 인디 가수들은 미처 몰랐던 다른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 각 소속사]

국내 음원사이트 순위를 통합 집계하는 가온차트 관계자는 “아이돌의 프로모션 방식은 천편일률적이어서 팬덤의 영향으로 상위권에 진입하긴 쉽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볼빨간 사춘기·스탠딩 에그·어반자카파처럼 어쿠스틱한 인디 음악도 저변이 많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③유효기간 사라진 음원 세계=다양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확대로 음원의 유효기간이 사라진 것도 아이돌 몰아내기에 한 몫 했다. 발라드 열풍을 불러온 한동근의 경우 2013년 MBC ‘위대한 탄생3’에서 우승하고 이듬해 ‘이 소설의 끝을…’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MBC ‘듀엣가요제’를 통해 재발견되면서 2년 전 노래로 EXO를 제치고 음악방송 1위를 하는 등 역주행의 새로운 사례를 만들고 있다.

음악 데이터 저널리스트 김진우는 “역주행 같은 이례적인 현상은 관련된 여러 콘텐트들이 다양한 채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끌 때 가능하다”며 “한동근의 경우 페이스북에서 일반인 커버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복면가왕’ ‘듀엣가요제’ 등에 연이어 출연하게 됐고, 신곡 ‘그대라는 사치’까지 발매되면서 시너지가 났다”고 분석했다.

‘이별 노래 전문’으로 사랑받고 있는 어반자카파 역시 유효기간에 구애받지 않는 대표 주자다. 8월 발표한 ‘목요일 밤’이 아직도 10위권 내에 머무르는 가운데, 6월 발표한 ‘널 사랑하지 않아’가 다른 가수들의 신곡이 치고 빠질 때마다 좀비처럼 10위권에 재진입하고 있다. 남다른 작사 비결에 대해선 “많이 차여봐야 한다”고 밝히고, 여름에 발라드를 들고 나온 이유로 “요즘엔 여름에도 많이 헤어진다”고 응수하는 이들이니 헤어지는 연인이 있는 한 이들의 음악은 계속 생명력을 유지하지 않을까.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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