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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대’ 파워엘리트마저 평양 정권을 등진다면

중앙일보 2016.10.07 00:21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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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김일성대 출신 탈북 인사로 짜인 서울 동문회는 ‘주체교육’의 아이러니
“폭정 영원할 수 없다”는 몽골 대통령의 연설 학생들 뇌리에 남았을 것

통일전문기자

서울 도곡동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는 ‘NK그룹’으로 불리는 전문가 집단이 있다. 북한(North Korea)에서 망명한 고위 노동당 간부와 외무성 출신 등 평양 엘리트들이 핵심 멤버다.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던 고영환씨와 북한군 실세 현철해 원수(元帥)의 조카 현성일씨는 외교관 출신으로, 서울 정착 후 활발한 대외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떠들썩하게 외신을 장식했던 탈북 인사들은 대개 이 연구원에 근무하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신상을 공개하기 어려운 고위층 탈북 인사는 더 많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평양 권력의 핵심 인사 자제와 친인척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NK그룹은 북한 내부 정세나 김정은 권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분석을 내놓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정원 산하 외곽 연구기관인 이곳이 국내외 언론과 연구자로부터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NK그룹은 최근 손님 맞이 채비에 나섰다. 7월 말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탈북, 망명한 태영호 공사를 비롯한 신규 회원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 북한 대표부 고위 간부의 가족 동반 이탈 소식까지 들려왔다. 김정은 일가의 건강을 챙기는 보건성 핵심 인사란 점에서 벌써부터 주목 받는다. 북한을 비교적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진 NK그룹 내부에서도 평양 엘리트층의 동요가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평양에서 살다 온 우리는 아무래도 ‘촉’(觸)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며 “관계 당국이 에둘러 탐문해 오더라도 ‘아! 어느 집안이나 기관에서 또 누구 하나가 서울로 튀려는구나’고 직감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이들 NK그룹의 주축은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다. 북한 최고의 학부이자 ‘주체 교육의 산실’로 불리는 이른바 ‘김대(金大)’가 탈북 엘리트 그룹의 주류를 이룬다는 건 아이러니다. 평양에도 없는 김일성대 동문회까지 생겼다. 회장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는 “북한에선 동문회나 동기회란 게 없으니 서울 ‘김대 동문회’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설명한다. 북한 주민생활의 바이블격인 ‘유일영도 10대 원칙’(2013년판)은 종파주의·가족주의를 비판하며 친척·친우·동향·동창 등을 정실(情實)이나 안면 관계라고 치부하고 있다. 망명 동문회격인 이곳 회원은 30명에 이른다. 김일성대 총장을 지낸 황장엽(2010년 10월 사망) 전 노동당 비서까지 포함됐다고 하니 보통 조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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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마침 평양에선 김일성대학이 설립 7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1946년 10월 1일 평양 대성구역 용남산 자락에 세워진 김일성대는 학생수 1만2000여 명의 ‘민족간부 양성 기지’라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8만여 명의 졸업생은 노동당과 내각의 핵심을 차지해 북한 권력을 움직이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김일성대에 보낸 축하 서한에서 해외에 학생을 유학 보내고 해외에서도 받아들이라고 지시했다. 국제학술토론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건 김정은 자신이 잘 알고 있을 듯하다. 불과 두 달 전 태영호 공사 망명사태에 격분한 김정은은 해외 공관원과 주재원의 자녀를 귀국시키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인터넷 불모지대인 김일성대 캠퍼스에서 국제화와 공동 연구·토론을 기대한다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북한은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 출신임을 강조한다. 옛 소련·동구 국가로부터 유학을 권유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스토리다. “아버님(김일성을 지칭)의 존함을 모신 우리 대학에서 공부할 것”이라며 정치경제학부를 마쳤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랬던 김정일도 자식들에게는 태도를 달리했다. 김정은을 포함한 세 아들과 딸 여정을 모두 스위스에 조기 유학시켰다. ‘우물 안 개구리식’ 교육이 가져올 재앙을 누구보다 김정일 자신이 잘 알았을 것이란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학파 김정은에게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1년 말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에게 북한의 파워엘리트들은 “해외에서 조기 유학을 했으니 개혁·개방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집권 5년 동안의 행보는 절망을 안겨줬다. 고모부까지 무참히 처형하는 극단적 공포정치로 자신의 지지계층까지 숨막히게 만들었다. 핵·미사일 도발과 호전적 대남 위협으로 남한 내 대북 여론은 얼어붙었다. 수백 명이 숨진 북부 지역 수해를 보고받고도 지난달 9일 5차 핵실험 버튼을 눌렀다.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움직임에 최고 지도자가 스스로 차단 벽을 치는 모습을 목도한 엘리트층은 마지막 희망을 접었을 수 있다.

3년 전 평양을 방문한 몽골의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김일성대에서 연설을 했다. 인권과 법치주의를 강조한 그의 발언에 북한 당국은 당혹해했고 몽골 대통령궁이 인터넷에 올리기 전까지 비공개에 부쳐졌다. 하지만 김일성대 학생들의 뇌리 속에는 공산 독재를 종식시키고 몽골의 민주화를 이끈 리더 가운데 한 명인 엘베그도르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남았을 것이다. 그는 “인민은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며 이는 영원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폭정도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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