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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나물·버섯·장맛의 숲 속 별궁…먹으며 힐링하는 한식집 ‘두루담아’

중앙일보 2016.10.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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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담아’의 단일메뉴인 정식 2인상. 모든 테이블은 창가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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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덥던 지난 여름 어느 날 음식점으로 편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업 관리를 잘못하여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0000(번호) OOO(이름)입니다. 편지를 드린 이유는 9월 00일 어머님 생신인데 좀 맛있고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성인 4명이 방문할 것입니다. 답장에 메뉴와 가격 그리고 입금 받으실 계좌 보내주시면 먼저 입금하겠습니다.(하략)”

내막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슴 저린 사연이다. 소백산 한우고기 구이 전문점 ‘마당넓은집’(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광여로 29/전화 031-797-7771)에서 있었던 일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사업이 잘되던 시절에 이 집 음식을 먹어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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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전골에는 12가지 재료를 넣고 우린 국물에 우설, 전복과 철 따라 10가지 안팎의 버섯이 들어간다.

이 집은 고깃집이지만 고기보다 나물로 유명하다. 한우 구이를 시키면 반찬으로 15~17가지의 나물이 차려진다. 보통 나물이 아니다. 울릉도나 지리산에서 채취한 자연산이 주류다. 부득이 재배한 것을 써도 가락시장 최상품들을 골라온다.

음식점 주변으로는 골프장이 많다. 곤지암~양평 오가는 연도에 곤지암·중부·남촌·그린힐·블루버드·이스트밸리·렉스필드·이포CC 등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했다. 몇 년 새 곤지암리조트와 화담숲도 명소로 떠올라 주말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근처를 찾는 발길이 붐빈다. 지난달 24일에는 경강선(판교~여주 57km, 소요시간 45분) 전철이 개통되면서 곤지암역도 가동해 판교에서 22~23분이면 갈 수 있게 됐다. 역 바로 옆에 음식점이 있다.

나들이 길에 우연히 ‘마당넓은집’에 들렀던 사람들이 나물을 먹어 보고 맛에 감탄한다. 주인 겸 총주방장 장영순(59·여)씨가 좋은 나물을 까다롭게 골라서 직원들과 다듬고 직접 짜온 기름과 담근 장으로 맛을 내기 때문이다. 간이 아주 음전하다. 절임도 과일로 담근 청이나 식초로 직접 만든다. 이러니 맛이 저절로 따라온다. 간단하지만 음식점에서 그 많은 음식을 모두 그렇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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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은 갓 지은 냄비밥, 버섯전골, 된장찌개, 김치, 냉채와 샐러드, 전 2~3종, 장아찌 3~4종, 고기 2종, 생선구이와 해물, 나물 7~9종에 디저트로 구성된다.

고기보다 나물을 좋아하거나, 1인 최소 5만원은 드는 한우구이 가격이 부담스러운 손님들은 자주 묻는다. 이 나물로 차린 밥상은 먹을 수 없겠냐고. 이보다 앞서 장씨에게는 각별한 소망이 있었다. 자신의 음식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음식점을 해보는 것이다. 그는 요리에 대한 호기심·탐구심·경쟁심이 워낙 강하다. 음식점을 하면서도 음식 명인이나 명소를 끊임없이 찾아 다니며 배우고 먹어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18년을 갈고 닦으니 자신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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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쌀과 흑미에 찹쌀을 30% 섞고, 선비콩·병아리콩·연자를 두어 지은 냄비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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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명이, 천도복숭아, 방울토마토, 마늘 장아찌. 상큼한 신맛이 혀의 맛봉오리를 한껏 예민하게 벼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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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산마 메밀가루 전과 녹두전(왼쪽부터 시계방향). 배추 전에는 대추를 다져 얹었다. 메밀의 냉한 기운을 대추가 누그러뜨리도록 배합한 것이다. 집간장으로 만든 양념장도 맛이 깊다.

그래서 올 4월 새로운 음식점 ‘두루담아’(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양자산길215 /전화 031-882-8255)를 차렸다. 지번 주소는 ‘명품리 2-30번지’다.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운 산골이다. 곤지암↔양평 버스 ‘양자산계곡 입구’ 정류장에 내려서 2km를 걸어야 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아름답다. 미리 전화하면 차가 내려와 태워 가기도 한다.

음식점이 자리한 곳은 양자산(710.2m) 중턱 민가 맨 끝 집이다. 드넓었던 살림집 마당 한쪽에 3층으로 새 건물을 지어 통째로 음식점으로 쓰고 있다. 2~3층에는 널찍널찍 배열된 좌석이 층마다 50~60석에 이른다. 옥상에 올라가면 전망이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호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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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잘못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어떤 사람이 어머니 생일상을 부탁하며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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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담아’의 안주인 겸 주방장 장영순씨는 조리는 최소화하고 원재료의 맛을 극대화하는 음식을 만드는 게 필생의 꿈이다. 맛을 내는 손은 쉴새 없이 일을 해 손톱 깎을 일 없이 닳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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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내는 데 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 장영순씨의 10년 묵은 된장.


사방을 둘러보면 명당 혈의 기본을 충실하게 갖춘 자리임을 보통 사람 눈으로도 쉬 알 수 있다.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 보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이 골짜기를 드나든 지 10년쯤 됐는데, 풍광이 사철 좋지만 특히 가을이 찬란하다. 단풍이 물들어 산 위에서 골짜기 아래로 흘러가는 금물결은, 거기 온 정신을 내던지거나 그저 넋 놓고 바라볼 뿐, 어찌 설명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식당 건물에 비해 앙증맞도록 작은 간판을 보고 들어서면 두터운 숲에 둘러싸인 음식점은 산중 공원이다. 추석 다음날 찾아갔을 때 후원에는 알밤이 발에 밟힐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집 둘레를 돌아보니 주인 부부가 나물과 천연 식재료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단박에 알겠다. 정문부터 마당 둘레와 후원까지 심어놓은 식용 작물들이 내가 아는 것만 27가지다.

생강·파프리카·부추·자소·방아·장뇌삼·도라지·음나무(개두릅)·두릅나무·오가피나무·다래넝쿨·참(가)죽나무·밤나무·들깨·고추·가지·머위·토란·매실나무·산초나무·개복숭아·딸기·호박·더덕·당귀·산마늘(울릉도 명이)·눈개승마(울릉도 삼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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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식용작물을 시험 재배하는 후원을 보면 식재료에 대한 주인의 탐구심이 엿보인다. 식별이 가능한 것만도 27가지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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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둘레에 자라고 있는 식용작물 음나무(개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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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둘레에 자라고 있는 식용작물 울릉도 명이(산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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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둘레에 자라고 있는 식용작물 다래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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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둘레에 자라고 있는 식용작물 울릉도 삼나물(눈개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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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둘레에 자라고 있는 식용작물 장뇌삼.

한식·나물·발효음식을 특색으로 내세운 ‘두루담아’의 메뉴는 그야말로 두루 담아서 한 상에 차리는 정식(1인 2만5000원) 한 가지뿐이다. 차림은 밥, 버섯전골, 된장찌개, 김치, 냉채와 샐러드, 전 2~3종, 장아찌 3~4종, 고기 2종, 생선구이와 해물, 나물 7~9종에 디저트가 기본이지만 세부내용은 철 따라, 날마다 장봐 오는 재료에 맞춰 바뀐다. 말하자면 퀴진 뒤 마르셰(Cuisine du Marché) 스타일이다.

내가 먹은 한 상을 자세히 톺아 보면 이렇다.

밥은 고슬고슬 갓 지은 냄비밥. 이천쌀에 찹쌀 30%와 흑미가 약간 들어가고, 선비콩·병아리콩·연자를 두어 지었다. 누룽지가 적당히 눌어 물에 불려 먹기에 좋았다.

버섯전골은 12가지 한약재와 감초를 넣고 달여 조선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백두산 백능이, 목이, 팽이, 황금팽이, 붉은만가닥, 흰만가닥, 느타리, 말린 노루궁뎅이버섯을 넣고 우설·애호박·당근· 배추·대파로 균형을 맞췄다. 버섯은 계절 따라 바뀌지만 10가지 내외가 들어간다고 한다. 먹는 내내 약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샐러드는 양상추·파프리카·치커리 위에 아몬드, 해바라기씨, 호박씨, 아마씨, 말린 구기자를 얹었다. 소스는 몇 년 묵은 매실 청인데 단맛·신맛이 힘찬 구조감을 보여준다. 자극적이지는 않다. 천연 과즙이 맛의 중심을 잡고 긴 시간 설탕과 숙성되면서 깊어진 맛이 아닐까 싶다. 

냉채는 강황 가루를 소스 주재료로 썼다. 잘 불린 해파리와 채 친 오이·배가 고소하고 향긋하면서 상큼하게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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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는 알밤이 발에 밟힐 만큼 떨어져 있으나 줍는 사람은 없었다(9월 16일).

묵말이는 도토리묵을 채 쳐 담고, 잘 익은 김치와 오이채·김가루를 올렸다. 고깃집인 ‘마당넓은집’ 냉면에 쓰는, 고기로 뽑은 육수에 말아 맛이 제법 고급스럽다.

전은 세 가지가 나왔다. 메밀가루 반죽을 입힌 배추와 산마 전, 녹두전. 집간장 양념장이 함께다. 배추 전에는 대추 과육을 숭숭 다져 뿌렸다. 서로 궁합이 맞는다고 여주인 장씨는 설명했다. 메밀이 냉한 음식이니 몸을 따뜻하게 하는 대추를 가미해 균형을 잡은 것이다.

보쌈도 손이 많이 갔다. 잘 삶은 삼겹살과 생배추는 다를 게 없다. 보쌈 속이 핵심이다. 2cm 내외 길이로 막대 썰기 한 무를 사흘 동안 소금에 절이고 건져 말리기를 몇 번 거듭한 후 무쳤다. 아삭하면서 졸깃한 식감이 함께 살아있다.

울릉도 명이, 천도복숭아, 금귤, 마늘 4색 장아찌는 단맛은 은은하고 신맛은 아주 상큼하다. 재료도 좋은 걸 썼지만 비법은 이 집 간장과 직접 담가 쓰는 각종 과일식초가 쥐고 있다.

나물 8가지가 차려졌다. 제철 나물이 대부분이고 묵나물도 있다. 뿌리까지 데쳐 무친 열무·고들빼기, 데친 깻잎·고춧잎·고구마잎줄기·여주 무침. 땅두릅 묵나물, 생쪽파 무침. 나물에 따라 집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직접 짜 온 기름과 들깨·검은깨를 살짝 쳐서 맛을 냈다. 쓰면 쓴 대로 향이 세면 센 대로 재료의 성질을 달래가며 배합을 했다. 맛이 빠지는 나물이 하나도 없다.

김치도 양이 아쉬울 만큼 입에 붙는 맛이었다. 속은 거의 넣지 않고 깔끔하게 담갔다. 3년 묵은 참조기젓국을 썼다는데, 잘 익어서 간은 심심하면서 맛은 시원하다.

이밖에 생선(옥돔)구이, 훈제 오리고기와 솔부추무침, 청국장, 피조개살 무침 등 번듯한 접시가 있었지만 다른 찬에 비해서는 밀리는 느낌이었다.

식사 막판 디저트가 ‘나도 있다’며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다. 레몬을 발효한 식초를 시원한 물에 탄 음료를 마시자 휴식을 준비하던 미각이 화들짝 활기를 찾는다. 한 여름 땡볕 아래서 우물물 한 두레박 뒤집어쓰는 듯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다(내가 신맛을 좋아하니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레몬 향에 취해 겹겹 산줄기가 멀리 흘러가는 창 밖 풍경을 굽어보자니 사업이 삐끗해 영어의 몸이 된 아들이 어머니 생신상을 왜 이 집 여주인에게 의탁했는지,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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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산 중턱의 마지막 민가인 음식점 ‘두루담아’의 간판은 자그마한데 음식점 규모는 무척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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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남편(이갑주씨)이 짓고, 음식을 만드는 장씨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 음식점의 테이블 배치는 띄엄띄엄 하고, 창 너머 풍경은 산수화 열두 폭 병풍 같다.

궁극적으로 어떤 음식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대답이 일사천리(一瀉千里)다. 자신의 철학에 맞는 음식을 향한 의욕이 넘치는 것이다.

“진심의 음식, 내 마음을 전하는 음식을 추구한다. 내 마음이 곧 음식이고 싶다. 최대한 양념을 뺀 음식, 멋 부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하고 싶다. 무간(간을 하지 않음)이 간이다, 자연이 주는 대로 먹는 생식이 가장 좋은 음식이겠지만, 그대로는 맛이 없으니 최소한의 조리로 원재료의 맛을 극대화한 음식이 궁극적 바람이다. 장(醬)이 좋아야 한다. 좋은 장을 만들 환경을 찾아 이 산속으로 들어왔다. 완전한 장을 만들고 거기에 좋은 식재료가 어우러진 음식, 맛있으면서 인공이 가장 적게 들어간 음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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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산 주봉 아래 자리잡은 음식점은 주차장과 잔디마당이 공원처럼 널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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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라서 보면 펼쳐지는 대작 산수화 같은 전망. 단풍철과 눈 내릴 때 특히 아름답다.


※사족: ‘두루담아’ 음식점이 있는 동네 이름 ‘명품리’에는 사연이 있다. 산북면 상품리·주어리·명품리 일대의 예전 지명은 ‘품실’이었다. 옛날 이 마을에 원·서·이 3정승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품실에서 아래쪽(서울과 먼)을 아래품실 또는 하품곡(下品谷)이라 불렀다. ‘품실’을 한자 ‘品室’로 표기한 경우도 있지만 와전이다. ‘실’은 순우리말 고어로 ‘골짜기’를 뜻한다. 인터넷 지도를 검색하면 많이 나오는 시골 지명 가운데 ‘듬실·두므실’[杜谷], ‘버드실’[柳谷], ‘고래실’ 같은 데 흔적이 남아있다. 옛 옥편에 곡(谷)자의 훈은 ‘실’로 돼있다.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하품곡은 하품리가 됐다. 이름은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하품하는 동네라느니, 품질 낮은[下品] 동네라느니. 결국 2013년 여주시 출범에 따른 행정구역 개편 때 하품리가 폐지되고, 종전 하품1리는 명품리, 하품2리는 주어리로 이름을 바꿨다. 정품리로 하려다 명품리로 수정했다. 새 이름은 자연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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