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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의 ‘전기차 배터리 꿈’…글로벌 4대 거점 완성

중앙일보 2016.10.07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1992년 3월 구본무 LG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은 영국에서 ‘신기한 물건’을 만났다. 영국 원자력연구원(AEA) 방문 중에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닌 여러 번 반복해 충전하는 2차 전지를 접한 것이다. 샘플을 얻어 돌아온 구 회장은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현 LS니꼬동제련)에 이를 맡기며 ‘미래 먹거리’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96년 럭키금속 전지 연구조직은 LG화학으로 소속이 바뀌며 연구를 계속했지만 성과는 나지 않았다. 97년 소형전지 파일럿 생산에 성공하긴 했지만 품질이 형편없어 양산할 수 없었다. 10년 앞서가는 ‘2차 전지 종주국’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돈 먹는 하마’였다. 2005년엔 2000억원대의 적자가 났다. 여기저기서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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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열린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구본무 LG 회장이 첫 삽을 뜨고 있다. 왼쪽부터 박진수 LG화학 CEO 부회장, 홍지인 주폴란드 한국대사, 구 회장,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부총리, 파베우 흐레니아크 주지사. 2018년 말부터 가동되는 이 공장은 축구장 5배 크기다. [사진 LG화학]

# 5일(현지시간) LG화학은 폴란드 남서부 브로츠와프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했다. 배터리 전극부터 팩까지 생산하는 완결형 생산기지다. 축구장 5배 크기 공장(4만1300㎡)에서 2018년 말부터 연간 고성능 순수 전기차(EV) 10만 대분의 배터리를 만들게 된다. 기공식에 참석한 구 회장은 “LG화학의 폴란드 배터리 공장을 유럽의 핵심 거점이자 자동차부품 분야의 전진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앞서 “2020년 자동차 전지 부문에서만 매출 7조원”을 목표로 제시했다.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보였던 선도 업체들을 따돌리고 지난해에는 전기차 배터리 평판도 1위(내비건트 리서치)를 기록했다.

LG, 한국·미국·중국에 이어
축구장 5배 폴란드 공장 기공
2020년 차 전지 매출 7조 목표
지난해엔 평판도 1위에 올라

24년을 맞은 LG의 ‘배터리 도전’이 해피 엔딩을 맛볼 수 있을까. 이날 준공한 브로츠와프 공장은 LG의 오랜 꿈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한국 오창, 미국 홀랜드, 중국 난징에 이어 세계 전기차 시장의 20% 이상이 소비될 유럽에 생산 거점을 세운 것이다. LG화학은 미국·중국·유럽 등 3개 지역에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거점을 지닌 유일한 업체가 됐다. 공장 4곳에서 연간 28만 대분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2020년부터 적용되는 ‘파리 협약’에 따라 유럽 각국 정부는 전기차를 보급하기에 한창이다. 이들은 보조금 지급부터 등록비 감면까지 경쟁적으로 전기차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어 현재 11만 대인 전기차가 2030년께에 277만 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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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성과는 LG화학이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 공격적으로 도전해 온 결과다. 중대형 배터리는 기술 장벽과 사업화에 대한 위험 부담이 커 일본 선도 업체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던 분야다. 소형전지 부문에서 선도 업체를 뒤쫓던 입장이었던 LG화학은 2000년 미국에 연구법인(LGCPI)을 설립하면서 도전을 시작했다. 이후 2004년 미국 에너지성과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업체의 컨소시엄으로부터 460만 달러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이 분야에서 서서히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엔 전지사업부문(전체)이 흑자로 돌아섰고, 현재는 세계 29개 자동차 업체에서 83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실적을 쌓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의 흑자 전환이다. 이는 전적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에 달려 있어 비관론도 있다. 하지만 LG화학 관계자는 “초기 전기차 배터리 프로젝트의 경우 시장 여건이 미비해 수주 금액의 60~70%만이 매출로 실현됐다”며 “최근 전기차 시장 여건이 개선되면서 이 비율이 80~90%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낙관했다.

LG화학은 앞으로 차별화된 선제적 연구개발(R&D)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주행거리보다 두 배 이상 갈 수 있고 충전도 20분 만에 되는 기술 등으로 가격·성능·안전성에서 경쟁 우위를 지속하는 게 목표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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