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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BIFF, 성장통 딛고 다시 도약을 꿈꾸다

중앙일보 2016.10.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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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씨받이`로 198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월드스타`가 된 강수연 집행위원장. 96년 출범 초부터 BIFF의 대소사에 발 벗고 나서며 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사진 STUDIO 706 전소윤]

스물한 번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열린다. 여느 해였다면 당연했을 이 문장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 고단한 일이 너무 많았다. BIFF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5, 이상호·안해룡 감독) 상영을 두고 부산시와 갈등한 지 2년째.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시(市)의 압박을 받아 지난 2월, 20년 넘게 가꿔 온 영화제를 끝내 떠나야 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한 대가였다. 이에 반발한 영화인들은 “올해 BIFF를 전면 보이콧하겠다”고 나섰다. 대폭 삭감된 국고 지원금은 2년 연속 회복되지 않았다. 숨통이 트인 건 지난 5월부터다. 초대 수장이었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이사장(조직위원장의 바뀐 명칭)으로 복귀하고,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대대적인 정관 개정 작업이 이뤄졌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

좌초 위기에 놓인 BIFF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킨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강수연(50) 집행위원장이다. 40여 년간 ‘은막의 스타’로 배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BIFF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된 건 지난해의 일. 그는 “BIFF를 지키고자 앞뒤 잴 것 없이 뛰어들었다”고 했다. 10월 6일 개막을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강수연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일부 영화인이 여전히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영화제를 못 치르면 어쩌나, 많이 불안하고 힘들었다”는 그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영화와 부산,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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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진 STUDIO 706 전소윤]

내 평생의 꿈이 ‘연기 잘하는 할머니 배우가 되는 거’예요.”

언젠가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말문이 갓 트일 무렵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연기만 좇아 온” 세월이 40여 년. “정말, 진심”이라 덧붙이지 않았어도 “지금도 연기만 하며 심플하게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그대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한 배우가 왜 지난해 파행으로 치닫던 BIFF 한복판에 뛰어들었을까. 더구나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둘러싼 온갖 고초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공동 운영 체제였지만, 그에게 지워진 책임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 보자. 배우 강수연이 ‘월드 스타’란 칭호를 얻은 건, 올해 BIFF 나이와 같은 스물한 살 때다. 양반집 씨받이로 팔려 간 소녀의 수난사를 표현한 ‘씨받이’(1987, 임권택 감독)로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아시아 배우 최초 수상이었다. 이후 그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송영수 감독)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임권택 감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장길수 감독) ‘경마장 가는 길’(1991, 장선우 감독) 등으로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됐다. “아주 어릴 때 해외 영화제에 가면 ‘북한에서 왔니, 남한에서 왔니?’ ‘한국에는 1년에 자국 영화가 몇 편이나 나오니?’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해외 영화계에 한국영화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었죠.”

영화인끼리 연대해 자국 영화를 소개하고 해외 영화계와 교류하던 그 생기 넘치는 현장이, 강수연은 너무도 부러웠다. 1996년 부산에 국제 영화제가 생긴다고 했을 때, 그래서 누구보다 반겼다. “처음에는 못 믿었어요. ‘국제 영화제’란 것이 돈으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엄청난 시간과 노력, 세계적 네트워크와 신뢰가 필요하죠. 그런데 당시 김동호 집행위원장을 필두로 BIFF를 너무나 훌륭하게 치러 냈고, 영화인과 관객도 열렬히 환호하며 힘을 보탰어요. ‘이런 영화제를 원한 게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모두의 열망이 절실했구나’. 한국영화의 저력과 가능성을 실감했죠.”

제1회 때부터 그는 BIFF의 대소사를 발 벗고 거들었다. 1998년부터는 BIFF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함께 가꿔 온 영화제가 지난해 존립의 기로에 섰을 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강수연이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제20회 BIFF에 합류한 것은, 말하자면 “응급 처치”였다.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함께 한 해 영화제를 잘 치르면 다 해결될 것”이라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는 철이 없었죠.” 1년 만에 다시 만난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가만히 웃으며 꺼낸 첫마디. 인터뷰 전날인 9월 6일 열린 제21회 BIFF 개최 기자회견의 여파일까. 다소 피로해 보였지만, 그의 심지는 그 사이 더 단단해진 듯했다.
 

보이콧이 하루아침에 해결되리라고 꿈꾸지는 않았다. 각 단체와 영화인의 결정을 십분 존중한다. BIFF 역시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싸우고 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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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2013년 부산영상센터(현 영화의전당) 건립기공식에 참석한 강수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개최 기자회견이 예년보다 늦었다.
 “사실 5월까지 BIFF가 열릴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제73회 베니스영화제에 다녀왔고, 기자회견 이틀 전까지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영화제 개최가 코앞인데, 보이콧을 선언한 BIFF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아홉 개 단체와 완전하게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해외 프로그램 준비에 완벽을 기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영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BIFF를 아끼는 분들의 도움 덕분에 기적적으로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기자회견 당일까지도 굉장히 긴장했다.”
보이콧이 완전히 철회되지 않은 채로 개막하게 됐다. 국내 감독과 배우의 참여가 저조하리라는 우려가 큰데.
 “하루아침에 해결되리라고 꿈꾸지는 않았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포함한 네 개 단체만 보이콧을 철회했고, 한 곳은 유보했다. 철회를 반대한 건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네 곳이다. 하지만 단체의 뜻과 별개로, 영화인 개인의 상영작 출품이나 참여에 관해서는 각자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BIFF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 주길 바라지만, 각 단체와 영화인의 결정을 십분 존중한다. 영화제 역시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싸우고 있잖나. 앞으로도 국내 영화계와 계속 대화하며 노력할 것이다.”
집행위원장으로 보낸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지난해에는 영화제에 급하게 뛰어들었다. 한 해 고비만 잘 넘기면 사태가 거의 해결될 거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제20회 BIFF를 무사히 마치자마자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용관 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집행위원장, 전·현직 사무국장이 부산시의 고발로 재판에 기소됐다. 위급한 상황이 시시각각 닥치니 밤에 잠도 안 왔다. 하지만 고민만 하며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지난 2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던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이양키로 했는데, 첫 민간 조직위원장을 선임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5월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첫 민간 조직위원장(현 이사장)으로 극적 합류한 후에는 정관 개정이 시급했다. 국내 영화계는 보이콧 철회 조건으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정관을 요구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만에 하나 BIFF를 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심적 부담이 컸다.”
김동호 이사장과 업무는 어떻게 나눴나.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조직위원장 업무를 수행하던 시절에는 BIFF 실무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네 일 내 일이 따로 없다. 집행위원장과 이사장의 일을 나눌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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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김동호 위원장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강수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어떤 상황에서도 BIFF의 본질을 지킨다
이번에 개정한 정관 내용 중 가장 고무적인 건, 초청 작품 및 작가 선정에 관한 사항을 BIFF 고유 권한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제2의 ‘다이빙벨’ 사태를 방지했다는 점이다. 또 이전에는 부산 지역 인사로 구성됐던 조직위원회 임원회의 명칭을 ‘이사회’라 변경하고, 지역 인사와 영화인이 각각 아홉 명씩 참여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영화계 일각에서는 ‘영화인 중심의 영화제를 꾸리기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BIFF는 국비와 시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문화 행사다. 영화인끼리 여는 행사가 아닌 이상 영화인들만 만족하는 결과를 바라긴 힘들다. (종전 조직위원회 임원회에서 영화계의 발언 기회가) 하나도 없던 것을 반반으로 만들었다. 부산 지역 인사들이 당연직으로 맡던 임원 관련 조항도 삭제했다. 남아 있는 분들도 영화의전당 대표, 부산시 교육감 등 실제 영화제 운영과 행정에 꼭 필요한 관계자들이다. 이번 정관 개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항목은 이사장 선출 방식의 변화다. 이사회 추천 후 BIFF 공식 의결 기구인 총회에서 선출하기로 정했다. 누가 운영하든 영화제의 본질을 지킬 수 있도록, BIFF를 꾸려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틀을 세운 것이다. 당분간 정관을 추가로 개정할 계획은 없다.”
지난달 28일 검찰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1년 형을 구형했다. 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와 함께 불구속 기소된 BIFF 관계자들을 직위 해제한 것이 성급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올해 영화제를 치르기 위해 내부 규정에 따라 처리한 것이다. 그동안 BIFF를 위해 애써 온 이들을 외면한 게 아니다. BIFF 프로그래머들이 재판 과정마다 방청하고 있으며, 판결에 따라 충분히 논의 후 조치할 예정이다.”
-여전히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은 영화인 대부분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태를 영화제의 시각으로만 해석하기는 힘들다. 대한민국 정치계의 정서도 있으니까. 우리야 BIFF에 목숨 걸지만, 그들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그럼에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지난 2년간 벌어지지 않았나. 재발 방지를 위해 미래 지향적인 방책 마련이 더 중요하다.”
올해 BIFF를 한 차례 개최하지 않더라도, 영화제를 둘러싼 외압을 논란 없이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내 상황만 고려할 수는 없었다. BIFF가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 영화를 한데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세계 영화계의 기대와 신뢰를 쌓아 왔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한 해 거르는 순간, 그런 것들이 흔들린다. 중국·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영화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해외 영화인에게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BIFF를 여느냐’였다. 그동안 불안감을 안긴 만큼 더욱 확신을 줘야 했다. 제21회 BIFF를 어느 때보다 잘 치러야 한다.”
국비 지원 예산이 2년째 예년에 비해 삭감됐다. BIFF의 재정적 독립을 고려하지는 않았나.
“수익 사업에 매달리고 외부에서 돈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면, 영화제는 상업적으로 변질된다. 그러면 누가 지금처럼 지지하고 아껴 주겠나. BIFF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영화 작가 발굴·연대·육성에 충실하고, 그 미래와 비전을 제시하며 인정받아 왔다. 지금의 기조라면 지원받아 마땅하다. 경제적 지원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제21회 BIFF 개최 준비가 늦어지면서, 스폰서 기업 유치에도 차질이 생겼을 텐데.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영화제 프로그램은 차질 없이 내실을 기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자면, 플랜 A부터 플랜 C까지 짰다. 부산시와 타협이 어려울 경우, 국내 영화계의 보이콧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등 말하기 민망할 만큼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런데 아무리 영화제 규모가 축소되고 외부에 휘둘려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영화’다. 해운대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영화제를 여는 한이 있어도, 영화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올해 BIFF가 복이 많다. 좋은 신작들이 참 많이 나왔거든. 하늘이 도왔다. 힘겨운 여건에서 프로그래머들이 열심히 일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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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제6회 BIFF 개막식에서, 배우 김지미와 강수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관객에 대한 믿음으로, 영화제에 대한 책임감으로
올해 BIFF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중남미 영화 중에서도 콜롬비아 영화사를 다룬 특별 기획 프로그램.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반면 아시아필름마켓(AFM·Asian Film Market) 규모는 대폭 줄었는데.
 “지난해의 절반 규모다.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유명 배우들을 초청했던 부대 행사도 전면 없애거나 축소했다. 하지만 필름 마켓 본연의 기능은 더 탄탄해졌다. 스페셜 스크리닝과 참여 부스 수는 오히려 늘었다.”
현재 단독 집행위원장으로서 구심점 역할을 해내고 있다. 힘겨운 순간을 버틴 원동력이라면.
 “많이 흔들렸다. 아직도 ‘괜히 (집행위원장을) 한다고 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웃음). 농담이 아니다. 정말 힘들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BIFF가 망가지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화인과 관객이 입는다. 한국영화에 대한 책임,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의 책임, 세계 영화인이 보여 준 신뢰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무엇보다 20년간 BIFF를 만들어 온 내부 식구들에게 미안했다. 맨바닥부터 영화제의 기틀을 다지고 최선을 다했는데, 좋은 소리 하나 못 듣고 있잖나. 부산시와의 갈등뿐 아니라 국내외 영화계에서 야단맞으며 모두들 의기소침해져 있다. 칭찬받아도 모자랄 대한민국 최고의 스태프들인데 말이다. ‘집행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떠나 40여 년간 대한민국 영화계에 몸담은 영화인으로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대중 앞에 서 왔다. 집행위원장으로 보낸 1년간 달라진 마음가짐이라면.
“평생 배우로서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살았다. 싫어하는 사람은 안 만나고, 내 주관대로 행동했다. ‘내가 나를 속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BIFF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처음 느꼈다. 사실 지금도 힘들다. 조직이나 행정에 대해 알아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BIFF에 대한 긍지·책임감·애정 그리고 영화제 식구들에게 받는 힘이 그 이상으로 크다.”
BIFF는 앞으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영화제는 영화인과 관객의 믿음을 저버리는 순간 무너진다. 무조건 ‘BIFF에 가면 좋은 영화가 있다’는 신뢰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앞으로 100년 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세계 어디를 가든, BIFF처럼 일반 관객과 영화인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영화제는 드물다. 부산을 찾는 해외 영화인은 젊은 관객들이 던지는 수준 높은 질문에 감탄하고 돌아간다. 이 역시 BIFF를 지탱하는 엄청난 자부심이다.”
배우로서의 다음 계획은.
 “지금은 BIFF 일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연기만 하며 나이 드는 것이 여전히 내 꿈이다. 좋은 영화를 만나고 싶다.”

장성란·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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