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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sns에 갇힌 이 시대의 미아에 관하여

중앙일보 2016.10.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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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TUDIO 706 라희찬]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신작 ‘립반윙클의 신부’(원제 リップヴァンウィンクルの花嫁, 9월 28일 개봉)를 발표하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다. ‘러브레터’(1995)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등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여 온 이와이 슌지(53) 감독이 일본에서 연출한 실사 극영화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그렇다. 물론 그 사이 그가 감독으로서 완전히 쉰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 극영화 ‘뱀파이어’(2011)를 연출하고,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다큐멘터리 ‘3·11:이와이 슌지와 친구들’(2011)과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살인사건’(2015)을 만들었다.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감독

“한동안 일본 사회를 담은 극영화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던 그가 ‘립반윙클의 신부’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일본 사회, 아니 현대 사회에 대해 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오직 소셜 미디어에만 속마음을 고백하는 나나미(쿠로키 하루)가 그로 인한 불행과 행복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통과하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립반윙클의 신부’ 개봉에 맞춰 내한한 이와이 감독을 만나,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던진 화두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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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TUDIO 706 라희찬]

러브레터’의 연인들은 편지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10대 청소년들은 인터넷 팬 사이트로 소통한다. 이번엔 소셜 미디어다. 소통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소통 방식이야말로 그 사회를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다. 기존의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이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지금의 소셜 미디어는 현실의 실무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소셜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눈앞의 일을 처리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택시를 부르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지 않나. ‘립반윙클의 신부’의 나나미는 모든 것을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을 통해 해결한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결혼식 하객을 마련하고,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까지 모두.”
현실에서 감정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나나미가 오로지 소셜 미디어에만 솔직히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셜 미디어에서는 내가 던진 말에 누군가 반응하게 돼 있다. 그것이 소셜 미디어의 속성이다. 현실에서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웬만해선 응답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한 소통이 점점 줄면서 우리는 각자 고립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의사소통의 욕망을 채운다. 그렇다고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소셜 미디어의 양면성을 두루 그리고 있다.”
어떤 작품에서든 희망과 절망,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시선이눈에 띈다.
“균형을 염두에 뒀다기보다, 삶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 같다. 삶에 대해 내가 하려는 이야기,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한다.”
나나미가 현실 세계에서 겪는 좌절을 고통스럽게 그리더니, 그 뒤로 나나미와 마시로(코코)가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 상황이 꼭 판타지처럼 느껴진다(극 중 마시로의 소셜 미디어 아이디가 바로 ‘립반윙클’이다).
“의도한 바다. 전반과 후반에서 나나미는 똑같이 누군가를 만나고, 새 집에 들어가고, 결혼식을 올린다. 한데 그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전반부를 현실적으로, 후반부를 판타지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공간이다. 촬영 장소 헌팅에 정말 많이 공들였다. 특히 극 후반에 나나미와 마시로가 함께 사는 저택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규모의 저택을 골라야 특별하면서도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표현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나미와 마시로의 관계는, 두 여성의 우정과 동성애적 뉘앙스를 넘나드는 느낌이다.
“나나미와 마시로의 관계는, 나나미가 남편 테츠야(지비키 고)와 맺는 관계와 대조된다. 그 관계를 통해, 인간이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누구도 그 정답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금껏 주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왔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아(迷兒)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마도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집에서 점점 멀어질 때 느낀 불안과 흥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창작자라면 어린 시절 체험을 자신만의 예술로 재창조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길을 잃은 아이는 소설·음악·영화·그림 등 어떤 형태의 예술로든 표현하기에 좋은 소재다.”
당신의 영화나 소설은,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의 구조나 극적인 사건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그보다 등장인물의 아주 세세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그 반대다. 날 ‘기승전결주의자’라 불러도 좋다.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기승전결보다, 내가 그것을 이야기에 응용하는 단위가 훨씬 미세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이 샌드위치를 ‘빵-햄-채소-빵’으로 나누는 식이라면, 나는 사람의 몸을 그리면서 세포 하나하나의 기승전결을 추구하는 식이다. 그만큼 복합적인 구조로 이야기를 짠다. 그 방법에 대해 말하라면 책 한 권도 쓸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그렇게 미세한 단위로 자신만의 감각과 비결을 익히고 체계화하지 않으면, 매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내놓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립반윙클의 신부’은 전작보다 한층 관조적인 시선으로 나나미의 여정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 사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등은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인 데 반해, 이 영화는 20대 이상의 인물들을 다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등장인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동안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지난 12년간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 걸까?”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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