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인사이드]문재인은 '국제시장' 안철수는 '내부자들', 영화관람의 정치학

중앙일보 2016.10.05 16:20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의 모든 언사와 행동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가 수단인 영화 관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특정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영화 관람은 일종의 정치 행위가 돼 버린다.
 
기분 전환을 위해 혼자 만의 공간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이상,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관람하는 영화는 단순한 문화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영화 관람을 통해 가장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 이는 누구일까.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했다.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꿔놓은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제작자가 밝혔다시피 '반공' '안보' 영화다.
기사 이미지

영화 `인천상륙작전`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인천상륙작전' 관람이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의 정신을 한번 더 되새기고, 최근 북한의 핵 위협 등 안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분열하지 않고 단합된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폭염의 절정인 이번 주말 여러분들도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해보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홍보성 문구가 청와대 공식트위터에 오르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 관람 후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북한의 핵실험 등에 맞서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북한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를 관람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국제시장'의 특정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영화를 직접 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박 대통령은 '국제시장'에서 부부 싸움을 하던 황정민과 김윤진이 그 와중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두고,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서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사실 이 장면은 그 시절 팽배했던 국가주의를 풍자하는 의미가 컸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애국가 가사처럼 해석해, 자신의 확고한 국가관을 설파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에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본 적도 있고, 할리우드에서 개봉한 국산 애니메이션 '넛잡'을 보며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전의 대통령들은 어땠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쥬라기 공원'과 현대자동차의 매출을 비교하면서, 문화콘텐츠의 산업적 가치를 강조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편제' 관람으로 알게 된 배우 오정해의 결혼식 주례를 맡는 등 영화 애호가에 가까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영화관 나들이를 가장 많이 한 지도자로 꼽힌다. 

그는 자신이 발탁한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이 연출한 '밀양'을 비롯, '왕의 남자' '길' '맨발의 기봉이' 등을 관람했다. 2007년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9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려,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사 이미지

영화 `밀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왼쪽)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핸드볼 여자국가대표팀의 활약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당선인 시절)과 '워낭소리' '도가니' 등을 재임 기간 중에 관람했지만, 정치적 메시지와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었다.
 
대선 후보들도 대중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영화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다.
 
그는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이상적인 개혁정치를 그린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뒤, "인간적인 왕(광해)의 모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5분 넘게 눈물을 쏟았다. 이 장면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야권 표심을 결집시켰다.
 
기사 이미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을 관람하고선,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들어 역사가 거꾸로 가면서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당시는 문 전 대표가 대선 패배의 아픔을 딛고, 정치적 재기를 시도하던 때였기에, 그가 '변호인' 관람을 정계 복귀의 계기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대형마트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카트'도 보았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 및 지지층의 성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영화였다.
 
하지만 이후 보수적인 성향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은 '국제시장' '연평해전'도 관람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 '박정희 시대를 미화한 영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 영화'로 치부된 '국제시장'을 본 뒤 "부모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평가했는데, 이는 자신의 취약 지지층인 중장년 보수층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또한 영화를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투쟁을 그린 '암살'을 본 뒤 "대한독립 만세!" 삼창을 했는데, 이는 부친의 친일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을 낳았다.
 
기사 이미지

영화 `암살`을 본 뒤 만세삼창을 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평소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과 리더십을 강조해왔던 그가 '명량'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명량'을 본 뒤 "역사에서 이기는 사람이 지도자다. 지도자는 이겨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민생 탐방도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벤치마킹했다는 후문이다.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과 고(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실화를 다룬 '남영동 1985'를 관람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재벌·정치권·언론계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부패와 비리를 파헤치는 내용의 영화 '내부자들'을 보고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정치,경제 많은 부분에 있는 기득권 카르텔을 잘 보여준 영화다. 우리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고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나라 아니겠는가. 영화에 족보없는 검사가 나오는데, 이처럼 학맥과 인맥, 지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풀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뚜렷한 정치적 연고가 없는 자신의 입장과, 정계 입문 후 줄곧 주창하고 있는 '새정치'의 개념을 영화평을 빌어 재차 강조한 것이다. 

기사 이미지

영화 `남영동 1985` 시사회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18대 대선 후 귀국 소감에서 영화 '링컨'과 '레미제라블'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여야 갈등으로 얼룩진 정치적 양극화, 프랑스 혁명기 극심했던 계층간 양극화를 그린 영화를 통해 정치적인 메타포(은유)를 던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위안부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영화 '귀향'을 본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견뎌낸 고통의 무게와 그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부끄러움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이 영화는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자기 고백이자 다짐"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개봉관 확보를 위해 서울시가 적극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했던 박 시장이 영화 '귀향'의 흥행 도우미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현 정권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며 야권 유력 대선후보로서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먼지알지 런칭 이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