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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한 달 남은 미 대선, 힐러리가 이기려면

중앙일보 2016.10.05 00:39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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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오바마 수석고문

2007년 초, 햇병아리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의료보험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처음 맞붙었다. 토론을 마친 오바마는 침울했다. “힐러리는 대통령 같았는데 나는 아니었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당시 오바마의 전략가로 일했던 나는 힐러리를 어떻게 이길까만 생각하면서 2년을 보냈다.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와 격돌한 오바마는 26차례나 이어진 토론에서 힐러리의 깔끔한 전달력을 보며 많은 걸 배웠다. 경선은 우리가 이겼지만 전투에선 힐러리가 이긴 적이 많았다.

트럼프와 정면대결은 피하고
정책적 약점을 우회 공격해야
‘비밀주의’ 대신 진정성 보이고
낙관적 비전으로 표심 잡기를


힐러리는 뛰어난 토론가다. 그와 경쟁한 덕에 오바마의 토론 수준이 높아졌을 정도다. 반면에 도널드 트럼프는 쇼맨십으로 공화당 대선후보에 올랐지만 사실에 근거한 정확성은 없다.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도를 넘는 발언으로 워싱턴 정가에 좌절감을 안겨줬다. 그러나 소외돼 온 다수 유권자들에겐 ‘진정성 있는 후보’란 인식을 줬다. 자신만의 게임 룰을 만든 것이다. 트럼프는 이에 힘입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에 어필할 수도 있다. 물론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게 트럼프의 노림수란 걸 세상은 다 안다.

공화당 경선 내내 트럼프가 공격을 퍼부으면 상대방은 더듬거리기 일쑤였고 맞불작전을 펼치다 스스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비호감도가 높고 정직성에도 의심을 받는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우회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다. 트럼프를 제3자로 취급하며 유권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편이 좋다.

반면에 트럼프가 그동안의 거칠었던 유세 방식을 버리고 차분한 모습을 선보인다면 힐러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힐러리는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트럼프의 과거 발언들과 알맹이가 전혀 없는 공약들을 무자비하게 추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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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의 현안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 일부러 무식하게 보이기로 작심한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성공한 기업가’라는 만만찮은 무기를 갖고 있다. 실제로 “경제 하나만큼은 트럼프가 힐러리보다 잘하겠지”라고 믿는 미국인이 적지 않다. 4년 전 대선에서도 공화당 후보 밋 롬니가 ‘경제’에서는 오바마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미국인이 많았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 경험을 내세워 자신만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 내역이나 납세 기록을 둘러싼 문제 제기엔 평정심을 잃고 과민반응을 보인다. 힐러리는 이 측면을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힐러리는 약점인 ‘비밀주의’를 버리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부동층을 흡수할 수 있다. 이들은 힐러리가 왜 대통령이 되려 하며, 집권하면 미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월의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 기세를 이어가려면 힐러리는 자신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강력히 어필해야 한다. 이어 “트럼프는 근로자를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 뿐이지 공약을 보면 허황된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해야 한다. 또 군 통수권자에게 필요한 판단력과 노련함을 강조하며 트럼프가 외교안보에 문외한임을 부각시켜야 한다.

힐러리는 미국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진 양 묘사하면서 ‘담대한 절망(audacity of no hope)’을 슬로건으로 내건 트럼프와 달리 미국에 대한 낙관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민자와 이슬람교도, 여성과 장애인에게 모욕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은 다양성이 미국의 힘이라고 주장하면서 트럼프와 극명히 반대되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클린턴은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모두가 뭉쳐야 한다”고 강조해야 한다. 또 집권하면 홀로 미국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허세를 폭로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트럼프의 독재적 발상에는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열린 미 대선 토론회는 지구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미국 대통령)에 누가 적임자인지 보여주는 최종 시험대였다. 두 후보가 극심한 압박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는 창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두 후보는 자신의 진짜 그릇을 유권자에게 내보이며 평가를 받았다.

클린턴은 이미 여러 무대를 통해 역경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려 11시간이나 회의를 이어가면서도 자신감과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유지해 불안해 하던 민주당 의원들을 안심시킨 바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끈질긴 적수 버니 샌더스 의원을 이기는 뚝심을 보여줬다.

이제 미 대선전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상식을 벗어난 트럼프의 막바지 공세를 무난히 막아내면 힐러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오르게 될 것이다. 트럼프처럼 거친 적수를 물리치면 보너스도 따른다. 대통령이 된 뒤 어떤 상대와도 싸워 이길 수 있음을 보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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