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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6년만에 LPGA 우승

중앙일보 2016.10.0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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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홀 약 2m거리의 버디 퍼트.

하루 종일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하면서 6타를 줄였던 김인경(28·한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1타 차 선두였던 김인경은 이 퍼트를 넣으면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인경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2012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피레이션) 마지막날 18번홀에서 30cm 거리의 짧은 퍼트를 넣지 못해 우승을 놓쳤던 사건이다.

김인경은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유럽여자투어에서 두 차례 우승을 하긴 했지만 LPGA 투어에선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러는 새 세계랭킹 10위권에 있었던 김인경은 50위 밖으로 떨어졌다. 올해 상금랭킹은 한때 79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퍼트를 남긴 김인경은 심호흡을 한 뒤 침착하게 스트로크를 했다. 공은 부드럽게 그린 위를 구르더니 홀 가운데로 빨려 들었다. 김인경은 오랜 만에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인경이 2일 중국 베이징의 레인우드 골프장에서 벌어진 LPGA투어 레인우드 클래식 마지막날 7타를 줄이면서 합계 24언더파로 우승했다. 허미정(27·하나금융그룹)이 1타 뒤진 23언더파로 준우승, 이미림(26·NH투자증권)이 22언더파로 단독 3위에 올랐다. 김인경이 LPGA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이후 6년만이다. 우승상금은 31만5000달러(약 3억5000만원).

2007년 19세 신인이었던 김인경은 ‘울지 않는 소녀’로 불렸다. 웨그먼스 LPGA 대회에서 두 홀을 남기고 3타 차로 앞서다 로레나 오초아(35·멕시코)에게 역전패했다. 김인경은 당시 “지금 울 수 있지만 나는 울지 않겠다. 나는 랭킹 1위 선수를 상대로 잘 싸웠고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나의 많은 우승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키 1m60cm의 김인경은 그렇게 작지만 당찬 선수였다. 2008년부터 3년 연속 해마다 1승 씩을 거뒀다. 2009년 상금 랭킹 8위, 2010년 랭킹 7위에 오르면서 LPGA 투어에서 한걸음씩 위로 올라갔다. 김인경은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뒤 자신에게 3년 전 패배를 안겼던 오초아의 자선 재단에 상금 중 절반을 기부하는 통 큰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우승 문턱에서 몇 차례나 물러났다. 연장전에 5번 나가 모두 패했다. 특히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의 상처는 아주 컸다. 잊을 만도 했지만 나비스코 챔피언십 대회가 열릴 때마다 김인경의 짧은 퍼트 실수 장면이 반복해서 나왔다. 불교에 심취한 김인경은 스티브 잡스처럼 인도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단식원에 머물며 13일간 곡기를 끊기도 했다. 세계랭킹 1위를 꿈꾸던 김인경은 부모님에게 “전쟁처럼 잔인한 스포츠를 꼭 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다. 김인경은 다시 일어섰다. 그렇지만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체격도 건장한 선수들이 LPGA 투어를 점령한 상황에서 작은 체구인 그가 다시 우승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날 선두 허미정에 3타 차 공동 3위로 출발한 김인경은 마지막날 정교한 아이언샷으로 스코어를 줄여나갔다.

지난 8월 아버지 김철진(63)씨가 "잘 맞을 것 같으니 한번 써보라"며 전해 준 아이언이었다. 김인경은 피팅도 하지 않고 받아든 기성품 아이언을 들고서도 페이드와 드로샷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러면서 마지막날 이글 1, 버디 6개에 보기는 단 1개만 범했다. 김인경은 아버지가 보내준 이 아이언을 들고 지난 달 유럽여자투어에서 우승한데 이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는 6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날 6년 만에 LPGA투어 정상에 섰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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