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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파라치 첫 현장출동 따라가봤더니…

중앙일보 2016.10.02 16:23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맞은 첫 주말인 지난 1일 오후 6시쯤. 기자는 서울 서초구 G공익신고학원에 찾아갔다. 김영란법 위반자를 적발해 포상금을 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명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양성 학원이다. 교육 수강생 이모(56)씨와 박모(57)씨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최근 이 학원에서 전반적인 공익신고 제도 소개와 포상금으로 이어진 실제 사례, 손쉽게 단속할 수 있는 비법 등 이론교육(총 3시간30분)을 받은 수강생들이다. 이들은 이날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첫 현장 출동을 앞둔 상황이었다. 강의교재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간한 부정청탁 금지법 해설집도 제본돼 포함돼 있었다.

이 학원의 문성옥 대표가 몰래카메라 사용법과 현장활동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몰래카메라는 성인 손톱만한 크기의 렌즈부위가 50㎝ 길이의 전선으로 본체와 연결돼 소매 끝 안쪽에 렌즈를 달아두면 얼마든지 보이지 않게 촬영이 가능하다. 18년간 공익신고 요원을 양성해왔다는 문 대표의 학원 강의실 한 켠 장식장 안에는 안경형태부터 모자·라이터·명함지갑·시계·인형·핸드백 형태의 몰래카메라가 진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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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G공익신고요원 학원의 몰래카메라


학원 관계자들은 최근 일부 란파라치 학원들이 몰래카메라를 수강생들에게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팔았다는 비판보도를 의식한 때문인지 몰래카메라 가격은 철저히 함구했다. 몰래카메라를 구입한 수강생 이씨 역시 가격에 대해서는 “수강료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문 대표는 장례식장 안에서 적발이 의심되는 주요 상황에 대해 사전 설명을 이어갔다. 부의금을 전달하는 호상소에 조의금을 사실과 다르게 낮춰 기재한 표시가 있는 지, 부의함 외에 쇼핑백 봉투에 별도로 부의금을 보관하는 지 등을 유심히 보라고 당부했다. 30만원이 조의금이 들어올 경우 ‘경조사비 상한 10만원’이라는 김영란법 예외규정을 맞추기 위해 차액 20만원을 의미하는 ‘-2’로 적는지도 챙겨보라고 당부했다.

오후 6시40분. 문 대표가 “현장에서 절대 당황하거나 긴장해서는 안된다”고 마지막 주의사항을 전달하자 '란파라치들'이 ‘공략 대상(타겟)’이 있는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대상자는 학원 측이 미리 신문 부음란 등을 통해 사전에 파악해둔 인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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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파라치들이 김영란법관련 불법현장을 잡기위해 서울 서초동 공익신고 총괄본부 사무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몰래카메라를 장착한 수강생 이씨가 특정 빈소 입구 주변에 일렬로 놓인 화환을 쭉 촬영했고, 문 대표 역시 한 손에 쥐어지는 손가방 형태의 몰래카메라로 보충 촬영을 했다. 동행한 수강생 박씨는 눈으로 의심이 가는 화환을 살펴봤다. 화환을 보낸 사람이 조의금까지 냈는지 확인할 증거를 찾기 위해 방명록을 몰래 촬영했는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호상소에서 문 대표가 “김OO씨가 조문을 왔냐”고 물으니 상주 측에서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방명록을 한장 한장 넘기며 명부를 확인해줬다. 명부 속 이름은 몰래카메라 렌즈에 그대로 노출됐다. 상주 측에서 “조문을 오지 않았다”고 하면 문 대표는 “아직 오지 않았네”라며 옆의 수강생에게 “어서 연락해서 같이 조문드리자”고 능청맞게 연기를 했다.

이날 현장활동은 빈소 3곳에서 40분 가량 진행됐다. 상주 중에 김영란법에 직접적으로 적용받는 대상자가 포함돼 있거나 직무 관련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 빈소라는 게 문 대표의 설명이다. 화환의 리본에는 모 대학병원 관계자, 경기도내의 한 지자체 관계자, 기업 대표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장활동을 마친 문 대표는 “김영란법 위반내용을 2건 정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G공익신고학원은 이날 장례식장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분석 중이다. 분석을 마치는대로 위법사항이 드러나면 당국에 신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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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공익신고학원 관계자들이 몰래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다.

자영업자라고만 자신의 신분을 기자에게 밝힌 수강생 이씨는 란파라치로 나선 이유에 대해 “부업으로 공익신고 활동을 하게 됐다”며 “사업을 하다보면 인허가 과정에서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란파라치 활동을 통해) 사회를 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 박씨는 자신을 퇴직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퇴직 후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다) 공익신고요원 일을 알아보게 됐다.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라는 의미 때문에 란파라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법 위반사항을 적발하는 공익적 기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란파라치 활동으로 어느 정도 포상금을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했다.

문 대표는 “공익신고 요원이 어떻게 되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상당히 많이 걸려오고 있다.실정법을 어기려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각심도 심어주고 탈세자를 찾아내는 '세파라치'처럼 공익신고는 실제 세수 증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느냐. 긍정적인 기능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란파라치 활동에 대한 부작용도 나 올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400만명이나 되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자가 잠재적 범법자로 인식되다 보니 공직사회는 잔뜩 움츠러들고 법 적용대상자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사생활까지 침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공무원(5급)은 “혹시라도 내가 란파라치에게 시범 케이스로 적발될까봐 솔직히 잔뜩 위축되다보니 ‘공직자는 복지부동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토로했다. 권혁성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부정청탁을 금지한 (김영란법의) 취지는 좋지만 무분별한 란파라치 활동으로 인해 사생활 침해를 부추길 수 있다. 부작용을 줄 이도록 지금보다 더 촘촘한 대안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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