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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비싸도 내가 행복하면 되죠” 디저트·소형 수입차·피규어 시장 뜬다

중앙선데이 2016.10.02 01:30 499호 18면 지면보기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은 미국식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 주말이면 하루 평균 500여 명의 고객이 컵케이크를 맛보기 위해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찾는다. 김경빈 기자



지난달 중순 찾은 경기도 분당의 현대백화점 판교점 지하 1층 식품관. 디저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일단 식품관 규모에 놀란다. 축구장 2배 크기(1만3860m²)에 높이는 일반 백화점보다 1m 이상 높다. 넓은 공간을 활용해 매장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디저트 쇼핑에 그치지 않고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정통 미국식 베이커리 컵케이크를 파는 ‘매그놀리아’다.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10여 명의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다운 매그놀리아 판교점장은 “개장 초기에는 2~3시간씩 기다려야 컵케이크를 살 수 있었다”며 “지금도 주말엔 평균 500여 명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이 매장의 인기 메뉴는 와인색이 감도는 컵케이크에 하얀 크림을 듬뿍 올린 ‘레드벨벳’이다. 아이 주먹만한 크기지만 가격대는 4000원이 넘는다. 직장인 이성은(33)씨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그놀리아를 찾는다”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불황에 주목받는 스몰 럭셔리족

20~30대 작은 사치족 잡기 경쟁이곳엔 매그놀리아뿐 아니라 ‘마카롱계의 샤넬’로 불리는 ‘피에르에르메’, 일본에서 유명한 생크림 롤케이크 ‘몽슈슈’ 등 80여 개 디저트 매장이 있다. 홍정란 현대백화점 식품사업부장은 “식품관을 찾는 고객이 늘면서 백화점 전체 매출을 끌어올리는 분수효과로 개점 1년 만에 7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어도 지갑이 열리는 시장은 있다. 20~30대 ‘작은 사치(Small luxury)족’이 몰리는 곳이 그 중 하나다. 작은 사치란 소비자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본인의 만족도가 높은 소비재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 트렌드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무엇을 소유했느냐’보다는 ‘얼마나 잘 쓰고 잘 즐기느냐’가 중요한 가치로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가치지향적 소비와 유사하다”면서 “젊은이들이 얄팍해진 지갑으로 과거처럼 집 구매 등과 같은 큰 소비에서 행복감을 얻는 게 어렵다 보니 작은 사치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성장 시대에는 부모 세대와 달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을 잘 살자는 의식이 강해져 사용가치를 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작은 사치족 등장으로 기존에 없던 시장(산업)이 열리자 앞다퉈 뛰어들거나 마케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곳이 고급 디저트 시장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3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5000억원으로 5배 커졌다. 백화점의 디저트 매장 경쟁도 뜨겁다. 서울 중구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 초 지하 식품관 내 반찬 매장을 줄이고 디저트 매장을 늘렸다. 새 단장 이후 본점의 디저트 매장 면적은 약 2350㎡(700여 평)로 기존보다 20% 이상 커졌고, 브랜드 수(38개)도 17개 더 늘렸다. 프랑스 파리에서 인기가 많은 디저트 브랜드 ‘위고에빅토르’도 들여왔다. 위고에빅토르는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식당인 ‘기사부아’의 총괄 셰프였던 위그 푸제가 2010년 만든 브랜드다. 팝업스토어 형태로 일본, 두바이, 미국 등지에서 제품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카페 형식으로 해외에 매장을 연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곳에선 과일 타르트, 마카롱, 초콜릿 등 다양한 디저트를 선보인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달 23일 강남점에 마카롱 카페인 ‘라뒤레 살롱 드 떼’를 열었다. 디저트가 인기를 끌자 마카롱 같은 디저트와 함께 브런치 메뉴를 곁들인 새로운 형태의 디저트 카페다. 최봉균 신세계백화점 디저트 바이어는 “디저트 매장이 수익에 영향을 주면서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를 독점으로 들여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젊은층 겨냥한 수입차 경쟁소형 수입차 시장도 들썩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자동차 신규 등록대수(24만3900대)는 처음으로 20만대를 넘어섰다. 이중 2000cc 미만 소형차는 13만6107대로 전체 등록대수의 약 56%를 차지한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7% 증가했다. 반면 3000cc이상 대형차는 2만1875대로 10%도 안 된다. 수입 소형차 판매 비중이 증가한 것은 젊은층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소형 수입차 구매 고객의 40% 이상이 20~30대다. 황혜정 연구위원은 “사치품으로 여겼던 수입차 시장에서도 3000만원대 소형 수입차가 등장하면서 작은 사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산차보다 약간 높은 가격만 지급하면 수입차를 몰면서 과시할 수 있다는 가치가 젊은층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 수입차 수요가 늘면서 수입차 브랜드들 역시 2~3년 새 소형차 모델을 적극 출시하고 있다. 지난 8월 폴크스바겐과 아우디가 배출가스량 위조 파문으로 판매가 정지되면서 BMW와 벤츠가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BMW의 배기량 2L 이하 엔트리급 모델(입문용 차량)은 ‘118d’다. BMW가 생산하는 차량 중 가장 작은 소형 해치백 세단이다. 차체는 작지만 후륜 구동인데다 최고 150마력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8.1초다. 가격은 최소 3520만원(부가세 포함)으로 상위 차종인 BMW 3시리즈보다 1000만원 이상 저렴하다. BMW 관계자는 “1시리즈는 올 들어 8월까지 약 2000대가 팔렸다”며 “세련된 디자인에 가격대비 성능도 뛰어나 20~30대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대형 프리미엄 세단’ 이미지가 강했던 벤츠도 소형차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벤츠의 엔트리급 모델인 A클래스는 올 상반기 859대가 팔렸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3%나 늘었다.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자 벤츠는 올 5월 한국 시장만을 위해 고성능 4륜 구동 모델인 ‘A45 AMG 4매틱 코리아에디션’을 내놓을 정도다. A클래스의 주력 모델인 A200의 가격은 3690만원(부가세 포함)이다.



“90만원짜리 피규어 전량 매진”작은 사치는 취미 고급화에도 영향을 줬다. 소수의 마니아 대상이었던 수백만원대 산악자전거(MTB), 고가의 헤드셋 등이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키덜트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키덜트란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이나 게임, 애니메이션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성인을 말한다. 키덜트 문화 역시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성인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직장인 남학현(34)씨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한정판으로 나온 40만원 상당의 피규어를 주로 모은다”며 “해외 직구 사이트 등을 통해서 원하는 피규어를 살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키덜트족이 늘면서 캐릭터 산업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올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콘텐트 산업전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내 캐릭터 산업 매출액은 9조8000억원으로 4년 전보다 35% 이상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시장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지난해보다 4.3% 늘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올해는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캐릭터 사업에 나서고 있다. 올 6월엔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지하 1층에 마블 캐릭터 판매점인 마블 콜렉션 엔터식스가 문을 열었다. 올 초 한양대점을 연데 이어 두 번째다. 엔터식스 자회사인 이앤비가 운영하는 곳으로 디즈니와 정식 계약한 세계 최초의 공식 마블 매장이다. 김솔아 이앤비 주임은 “40개 마블 캐릭터를 디자인한 1400여 종의 제품을 판매하는 데 개장 첫 주말 8000만원어치가 팔릴 만큼 인기가 높다”며 “주요 고객의 40% 이상이 20~30대 젊은 남자”라고 말했다. 특히 실물 4분의 1 크기의 아이언맨 피규어는 고가(90만원)에도 100여 개가 다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덧붙였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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