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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매출 303만원 늘 때마다 장애인 한 명 추가 고용”

중앙선데이 2016.10.02 01:18 499호 8면 지면보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터 ‘베어베터’를 만든 김정호 전 한게임 대표는 북한 어린이에겐 ‘곰 아저씨’로 유명하다. 북한 어린이가 보내온 감사편지는 그의 애장품 중 하나다. 이원근 객원기자



서울 성수동 아파트형 공장 8층에 자리 잡은 베어베터(BEAR.BETTER). 전체 직원(229명)의 84%인 192명이 지적장애와 자폐를 포함한 발달장애인이다. 사회적기업인 이곳엔 인쇄·제빵·화환 사업부가 있고 뚝섬역 근처에는 커피 로스팅 공장이 있다. 회사 입구에는 베어베터의 상징인 곰 캐릭터가 곳곳에 그려져 있다. 세련된 테이블과 소파는 마치 커피숍 같다. ?한 층 더 내려가자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위생 문제로 두꺼운 통유리창을 통해서만 제빵 과정을 볼 수 있다. 위생모자부터 마스크, 앞치마, 발을 보호해 주는 특수 신발까지 작업복을 갖춰 입은 10여 명의 직원이 커피전문점 커피빈에 납품하는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로 인생 2막 연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업무 과정은 단순하지만 체계적이었다. 전문 제과·제빵기능사가 반죽을 배합하면 3명의 발달장애인 직원은 반죽을 떼다가 탁구공 모양으로 빚는다. 오븐팀은 빵과 쿠키 종류에 따라 온도를 맞춰 굽는다. 오븐에 구운 쿠키를 개별 포장한 후 박스에 넣는 작업도 4명이 한 팀이 돼 진행한다. 이 중 유일하게 혼자 일하는 직원이 있다. 3년 넘게 이 회사를 다니면서 주문 목록을 보고 포장하는 업무에 익숙해진 지승철(23·가명)씨다. 지난해 7월 선임으로 승진했다. 그는 “요즘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다”며 “열심히 돈을 모아 집도 살 것”이라고 말했다.



베어베터는 김정호(49) 전 한게임 대표가 2012년 25억원을 투자해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베어베터는 ‘곰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Bear makes the world better)’를 줄인 말이다. 발달장애인의 국내 취업률은 21%로 전체 장애인 평균 취업률(35%)에 한참 못 미친다. 발달장애인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할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게 베어베터의 목표다. 사실 김 대표에게도 사회적기업은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정보기술(IT) 전문가다. 1990년에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삼성SDS에 근무하던 시절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오승환 네이버문화재단 이사장,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등과 99년 네이버를 창업했다.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도 친분이 두터워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 때 다리 역할을 했다. 두 회사가 NHN으로 합병한 뒤 김 대표는 중국법인장, 한게임 대표 등을 역임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2009년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을 끝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직접 만든 쿠키를 포장하는 베어베터 직원들. 이곳 직원의 84%(192명)가 발달장애인이다. 김경빈 기자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쳤다. 회사를 그만둔 뒤 1년간은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휴식기를 깨운 건 이진희(현 베어베터 공동대표) 전 NHN 이사가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이 대표의 둘째 아이도 자폐성 장애가 있다. 일반고등학교를 다녔던 아들이 친구들 장난에 4층 높이의 건물에서 뛰어내릴 뻔한 일을 겪었다. 그 충격에 이 대표는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2010년부터 자폐인사랑협회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자폐아를 보호할 뿐이지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이 대표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했다.”



-방법을 찾았나. “회사 경영자 입장에서 발달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봤다. 한 달 가까이 고민하다 떠오른 게 장애인 연계고용 제도다. 연계고용은 장애인 고용의무가 있는 기업이 장애인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면 고용부담금을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는 제도다.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르면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자는 전체 근로자의 2.7%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1인당 최대 126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상당수 기업은 의사소통이나 업무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냈다. 만약 기업이 장애인 표준사업장에 인쇄, 명함 제작 등 일을 맡기면 벌금은 절반으로 줄고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벌어들인 이익만큼 더 많은 장애인을 채용하는 윈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바로 베어베터의 사업모델이다.”



베어베터 닮은 사회적 기업 이어져 김 대표는 신중하게 사업 품목을 뽑았다. 직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돈 쓸 분야를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업은 명함·인쇄물을 시작으로 제과·제빵, 커피 원두, 화환 사업으로 넓혔다. 김 대표의 예측은 정확했다. 네이버·휴맥스·로레알·IBM 등 150여 개 기업과 고용연계 계약을 했다. 김 대표는 계약 업체가 크게 늘어난 것이 선의나 동정심이 아니라 품질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직원 교육에 공을 들인다. 이곳의 발달장애인은 오전·오후로 나눠 하루 4시간씩 일한다. 최저임금이지만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받는 정규직이다. 혼자서 출퇴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가 제시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신입사원은 한 달간 예절 교육을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크게 소리 지르지 않기, 지하철에서 끼어들지 않기, 언니나 형이란 호칭 대신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기 등 직장 생활이나 동료 간에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교육한다.



창업한 지 5년째인 베어베터는 새 기록을 쓰고 있다. 재작년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지난해엔 약 3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부터는 월 매출 303만원이 늘 때마다 발달장애인을 한 명 더 채용할 계획이다. 이뿐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베어베터를 벤치마킹한 사회적기업이 생기고 있다. 올 6월 대구 수성구 수성동에 커피숍 ‘브레드인스마일’이 문을 열었다. 전체 직원의 30%가 발달장애인이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만들어주는 바리스타부터 초코쿠키·케이크 등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든다. 이 커피숍은 대구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 5명이 주주로 참여한 사회적기업이다. 주주 중 상가 개발로 성공한 윤수용(40) 창호비젼코리아 대표는 “그동안 번 돈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고민하다 베어베터 얘기를 접한 뒤 용기 내 시작했다”며 “내년까지 발달장애인을 50명 더 채용하고 앞으로 부산·경주 등지로 직영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북한선 곰보빵 기부하는 ‘곰 아저씨’로 유명 회사명 베어베터는 곰처럼 우직하게 일을 해내는 발달장애 청년을 뜻한다. 가만 보면 동글동글한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김 대표 인상과도 닮았다. 사실 김 대표의 별명도 곰이다. 북한 어린이들에겐 ‘곰 아저씨’로 유명하다. 2008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하루 평균 5000개의 곰보빵을 북한 어린이에게 보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본부의 도움을 받아 함경도 나진의 빵 공장을 빌려 곰보빵을 굽기 시작했다. 건포도가 든 곰보빵이 가격 대비 영양가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곰보빵에 쏟은 금액만 10억원이 넘는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곰보빵을 주는 아저씨’, 줄여서 곰 아저씨다. 그의 애장품 중 하나가 곰보빵을 후원받는 평안남도 안주시 소학교 학생이 보내온 십자수와 편지다. 5년 전 기아대책을 통해 전달받았다. 그의 얼굴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놓은 십자수 옆엔 ‘커다랗고 맛 좋은 빵을 매일 먹을 수 있어 기쁩니다. 빵을 먹고 키가 많이 컸습니다’고 적혀 있다.



-언제부터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04년 NHN 차이나 대표로 중국 시장을 개척할 때 희망공정을 소개받았다.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가 89년 시작한 민간구조 방식의 공익사업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빈곤지역에 학교를 짓는다. 처음엔 중국 사업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아 5000만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1년 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어얼둬쓰에 내 이름을 딴 정호희망학교가 생겼다. 개교식 날 아이들에게 축구공과 점퍼를 나눠줬는데 무척이나 좋아했다. TV에서만 보던 축구공을 처음 본 것이다. 300여 명의 아이들이 새 학교에 기뻐하며 뛰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아프리카 케냐에 물탱크 짓는 일을 후원하거나 모교인 고려대에 장학금을 기탁했을 때도 느끼지 못한 감동이었다.”



-부모의 영향도 받았다고 들었다. “고향이 북한이다. 할아버지는 황해도 개성에서 손꼽는 상인으로 항상 마을 사람들을 보살펴 존경을 받았다. 외할아버지는 사재를 털어 평안북도에 가동학원을 세웠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모두 망했다. 개성에서 명문고를 나온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며 집안을 이끌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아버지는 남에게 베푸는 일을 좋아했다.”



-나눔의 즐거움은 뭔가. “제대로 돈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줬다.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번 것보다 번 돈을 잘 쓸 줄 아는 게 진짜 성공인 거 같다.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베어베터를 세운 일이다. 이곳이 더 많은 발달장애인의 평생 직장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게 하나 더 있다. 산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곳곳의 명산을 오르고 3년 전부터는 매년 한 번씩 네팔로 향한다. 짧게는 20일부터 길게는 40일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다. 해발 5000m가 넘는 구간에서 고산병과 싸우며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는 “2막 인생엔 산을 오르고 나누는 가장 행복한 일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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