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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은 흑인,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투표율이 승부처

중앙선데이 2016.10.02 01:18 499호 10면 지면보기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열린 대통령 선거 1차 토론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왼쪽)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 1차 토론 후 지지율 격차가 약간 벌어졌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오는 9일(현지시간) 펼쳐질 미국 대선 2차 TV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더욱 거세게 밀어붙일 준비를 하고 있다. CNN은 트럼프 캠프가 2차 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성 추문을 꺼내 드는 강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1차 토론(지난달 26일) 이후 주요 언론이 잇따라 클린턴의 승리를 선언하고 지지율 격차도 벌어지자 트럼프 측이 다급해진 모양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폭스뉴스 전국 여론조사에선 토론 전 1%포인트 차이였던 두 후보의 지지율이 3%포인트 차(클린턴 43%, 트럼프 40%)로 벌어졌다.


막바지 치닫는 미 대선, 9일 토론의 승자는

세기의 대결로 불렸던 지난 1차 토론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중반부터 평정심을 잃은 트럼프에 비해 지독하게 훈련된 여유로움과 자신감으로 토론을 이끈 클린턴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조금 더 갖췄음을 드러냈다. 클린턴 지지를 천명한 뉴욕타임스, 트럼프와 트위터 전쟁을 벌였던 제프 베저스의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의 압승일 뿐 아니라 트럼프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 후보인지 드러났다고 난타했다. 현재 나오고 있는 토론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분명히 클린턴이 2~3% 정도 토론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격차 벌어지자 트럼프 측 다급7월 전당대회 이후 두 후보의 지지율은 한마디로 ‘다이내믹 아메리카’ 그 자체였다. 클린턴은 대성공으로 막을 내린 민주당 전당대회 덕을 톡톡히 봤다. 8월 중순까지 계속되던 상승세는 전당대회 효과가 사그라질 무렵 덮친 클린턴 재단 문제, 건강이상설 등의 악재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9월 들어서부터는 그야말로 박빙의 양상이 이어져 왔다. 그래서인지 1차 토론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거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토론의 승패 여부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 자리는 토론을 잘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인기투표를 앞두고 ‘내가 더 매력적인 지도자’라고 어필하는 무대와 다를 바 없다.



또 토론을 시청한다는 것은 이미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유권자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지지후보를 마음속에 정해놓고 있다. 문제는 지지하는 열정의 수위가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실제 투표로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휴일도 아니고 평일에, 그것도 사전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장에 가야 할까? 토론회의 영향력은 이 열정의 데시벨을 어느 정도 높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클린턴의 지지율이 살짝 상승한 것은 TV토론 일주일 전부터 감지됐던 클린턴의 반등세를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준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TV토론을 보고 클린턴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솔직히 그럴 정도로 클린턴이 압도적이지도 않았다.



많은 이가 이번 대선을 두고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의 대결이라고 한다. 특히 수퍼마켓 계산대에 진열된 싸구려 연예뉴스 잡지에나 나올 법한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에게 지금껏 쩔쩔매는 클린턴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낸다. 비호감율이 50%를 넘는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만큼 젊은 층이나 유색인종 유권자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도 않다. 그래도 명색이 양당체제인 미국에서 왼쪽에 위치한 진보정당의 후보라면 개혁적인 이미지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막말꾼 트럼프보다도 더 부패한 정치기득권 세력의 일원으로 보인다. 어쩌다 민주당은 이렇게 경쟁력 없는 후보를 내세웠을까.



그런 힐러리를 위한 변명을 좀 해보자. 민주당에서 다른 누가 나왔더라도 결코 쉬운 게임은 아니었을 것이다. 두 번의 임기를 끝내는 현직 대통령과 같은 당의 후보로 대선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리한 위치에 선 것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임한 집권당의 후보가 당선된 사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George H. W. Bush)뿐이다. 당시 상대는 잘난 척하기로 유명한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마이클 듀커키스였다. 또 퇴임을 앞둔 레이건 대통령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했으니 현직 대통령 효과를 누리고도 남았을 법하다. 임기 막판을 홈런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오바마 현 대통령의 지지율도 50%를 겨우 넘을 뿐이다.



경합주에서 본격적인 박빙 대결 시작 그렇다고 해도 ‘막말의 제왕’ 트럼프가 막판 선전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통 대통령 선거는 정당 선거로 귀결된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나 두 명을 뽑으니 한 명쯤은 다른 당에 줄 여유가 있는 상원의원 선거와는 달리 유권자의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 강하게 작용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선거일이 다가오면 더욱 두드러진다. 돌풍을 일으켰던 제3당 후보들도 막상 11월이 가까워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국민에게도 익숙한 경합주(swing states)에서 본격적인 박빙 대결이 시작된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선전하는 이유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미국 대선이 늘 가는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초박빙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플로리다주는 항상 초박빙이었다. 2000년에는 500표 차이로 부시 후보를 백악관으로 입성시켰고, 2008년. 2012년 대선 때에도 불과 2.8%포인트와 0.8%포인트의 표차를 기록했다. 오하이오주가 붉은색으로 변모하는 것은 트럼프 열풍보다도 주 전체 성향이 2010년 이후 공화당으로 전환한 것에 더 기인한다. 현 연방 상원의원인 민주당의 셰러드 브라운을 제외하고 주지사부터 연방 상·하원 및 주의회에 이르기까지 온통 붉은 기운이 오하이오를 감싸고 있다. 뉴햄프셔주에서의 클린턴의 예상 밖 고전은 옆 동네 버몬트주의 버니 샌더스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클린턴이 정말 이상적인 후보였다면 트럼프 정도의 상대는 이미 멀찍이 따돌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투표율에 달렸다. 선거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찍을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유권자를 돌려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보수당을 찍으라고 아무리 윽박질러도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달아나버린 아들 이야기는 미국에도 적용된다. 제아무리 부동층이라 해도 한 정당이나 후보에게 기울기 마련이다. 진정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투표를 안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보니 이번처럼 두 후보 모두 딱히 끌리지 않는 선거에서는 각자의 정당 지지층을 결집시켜 투표장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이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투표율이 높은 편이다. 공화당원들은 신실한 종교적 믿음에서건, 이 나라를 이끄는 주류 엘리트라는 자부심에서건 열심히 투표를 해 왔다. 이에 반해 저소득층에 학력이 짧은, 특히 유색인종과 이민자층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항상 투표율에 고전해 왔다.



그러한 양상이 최근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전체 투표율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지만 내용면에선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 때 흑인의 투표율은 66.2%로 센서스 사상 최초로 백인 유권자의 투표율(64.1%)을 넘어섰다. 실제로 2012년 선거에 참여했던 백인 유권자 수는 2008년의 그것보다 200여만 명 줄었다. 유권자 분포에서도 백인 비율이 줄어들고 있고 유색인종 유권자의 투표율은 조금씩이나마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클린턴이 이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 상황이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 백인 유권자 중 저학력·저소득 집단은 투표율이 낮은 편이다. 특히 흑인 대통령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던 2008년과 2012년에는 더더욱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열광하는 후보가 바로 트럼프다. 다시 말하면 2008년과 2012년 대선 당시 단체로 불참했던 저학력·저소득 백인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 기존의 공화당 지지자들과 함께 동원한다면 트럼프에게도 승산이 있다.



유권자 등록,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아 그러면 이들이 오는 11월 8일 투표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성인이 되면 무조건 투표하라고 선거 홍보물이 각 가정에 배달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자발적으로 사전에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간혹 선거 당일 유권자 등록을 받는 주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거일로부터 4주 정도 이전까지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투표를 할 수 있다. 2008년 오바마 캠프가 주력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전까지 투표소에 가보지 않았던 유권자들로 하여금 유권자 등록을 하게 했고 ‘유권자 등록 급증(surge)’ 현상은 오바마의 승리를 예측하게 했다.



공화당 유권자 등록이 증가했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2015년 여름부터 최근까지 새로 등록한 유권자를 분석했을 때 결코 트럼프 진영에 유리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예측전문가로 유명한 네이트 실버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트럼프에게 유리한 유권자군(저학력 백인)이 대거 등록하는 추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에 반대할 가능성이 큰 유권자군(고학력 유색인종)의 새로운 유권자 등록률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유권자 등록을 권장하는 노력은 클린턴 캠프에서 더 도드라져 보인다. 유권자 등록의 날(National Voter Registration Day)이었던 지난달 27일 클린턴 캠프는 미 전역에서 1400여 개의 크고 작은 행사를 개최했다. 반면 트럼프 캠프 측에서는 큰 움직임이 없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마저 꺼내 들려는 것을 보니 2차 토론을 앞두고 트럼프는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토론에서 클린턴 부부가 얼마나 징글징글한 사기꾼 정치인들인지를 몰아붙이는 카타르시스를 즐길 때가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트럼프가 더 많은 표를 얻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바닥 다지기(groundwork)를 해야 할 때다. 여론조사의 지지율이 실제 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 시발점은 유권자 등록이다. 여기서 이기는 후보가 내년 1월 20일 백악관에 입성할 것이다.



 



 



김지윤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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