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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출산’ 공식에서 벗어나 교육·경제·이민 고려해야

중앙선데이 2016.10.02 01:15 499호 11면 지면보기

우상조 기자



“저출산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가장 큰 구조적 위험이며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인구 전문가 조영태 교수의 저출산 해법

지난 8월 25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호소문’의 일부다. 지난해 정부는 청년 고용 활성화와 신혼부부 주택 지원 등을 담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했다. 지난해 1.24명인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을 2020년까지 1.5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계획 적용 첫해부터 출생아 수는 되레 곤두박질했다. 올해 1~5월 출생아 수는 18만2000명. 지난해 같은 기간(19만2000명)보다 1만 명(5.3%)이나 줄었다. 청년실업 악화 등으로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급기야 정부는 8월 다시 긴급 보완대책과 함께 대국민 호소문까지 내놓은 것이다.



보완대책은 ‘출생아 2만 명+ 대책’으로 명명됐다. 난임 부부 지원 확대, 남성 육아휴직급여 인상 등을 담았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인가. 지난달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7월 출생아 수(3만3900명)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저출산 상황에 대한 위기 의식이 짙게 깔렸다. 양승조(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장은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점점 줄어 2700년에 아예 소멸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한 민족 1호가 바로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일자리·주거·육아 문제를 지적했는데 여기에 맞는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인구 점점 줄어 2700년엔 아예 소멸” 국가적인 인구 위기가 현실화하는 상황. 이 같은 저출산 문제를 일찌감치 내다보고 대책을 촉구했던 인구 전문가가 있다. 대표적인 소장파 인구학자로 꼽히는 조영태(44·사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4년 국내 유일의 인구학 전공 교수직을 맡았다. 지금도 30~40대 인구학 전공 교수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다. 저출산 현상을 분석할 학문적인 기반부터 열악한 셈이다.



지난달 2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조 교수는 정부에 대한 쓴소리부터 시작했다. 그는 “저출산 정책은 지나치게 눈앞에 보이는 출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인구=출산’ 공식을 벗어나 교육과 경제·이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장기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시행 중인 3차 대책에 대해서도 낙제점을 줬다. “정부는 혼인과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인 행동은 1년이 다 가도록 나오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난임 부부 지원 정도인 보완책도 미흡하죠. 인구정책의 방향을 확 바꾸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 교수의 제자들은 경기도·민간기업·국책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조 교수는 인구·통계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주무 부처(복지부)와 달리 기업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변동 예측은 이미 국가정책과 기업 마케팅의 필수 요소가 됐다. 하지만 민관의 대응은 온도 차가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우리 사회의 저출산 원인을 과거·현재·미래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결혼과 출산은 과거보다 지금이 좋거나 앞으로 더 좋아질 거란 생각이 있어야 결심한다’는 미국 인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의 이론을 인용했다.



20대 초반~30대 중반인 한국의 젊은 층은 어린 시절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은 윗세대를 보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도 어렵고 집값도 비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호소하고 있다. 조 교수는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부모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점점 좋아지는 세대였지만 지금의 청년층은 갈수록 나빠지는 세대다. 작은 파이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젊은이가 혼인을 늦추고 출산을 미루는 게 더 나은 미래라고 판단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저출산 문제에 천착하던 그는 지난해 9월 한국을 잠시 떠났다. 교수에게 주어지는 연구 안식년을 활용했다. 교수들은 안식년을 대개 본인이 박사 학위를 얻은 나라·대학에서 보낸다. 그러나 조 교수는 개발도상국인 베트남으로 향했다. 수도 하노이에 거주하면서 베트남 정부 내 인구·가족계획국에서 인구자문관으로 근무하다 지난 8월 귀국했다.



-왜 베트남으로 갔나.“4년 전 유엔인구기금(UNFPA)의 요청으로 베트남 정부의 인구국을 방문해 강의했다. 그 인연으로 베트남 정부가 매년 한 명씩 한국으로 인구 연수를 보냈다. 이번엔 베트남에서 나를 인구자문관으로 초청했다. 한 국가의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머지 않아 대학 통폐합, 교원 설자리 잃을 것 -구체적으로 맡았던 업무는.“베트남이 인구법을 제정하면서 산아제한 중심의 가족계획을 바꾸는 작업을 도왔다. 베트남은 출산율이 2.0을 넘고 한 해 90만 명이 태어난다. 그런데도 주변국 상황을 보고 선제적으로 출산율 유지에 나서겠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단순히 출생아 수를 조절하는 것뿐 아니라 태어난 아이들의 관리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영아 사망률이 높은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인 한국의 산전·산후 관리를 부러워한다. 한동안 정부 조직 내에 인구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한국을 예로 들어 가족계획을 바꾸더라도 인구를 다루는 부서는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정부와 일을 하면서 부러운 점은.“베트남이 한국보다 15~20년 뒤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느낀 게 많다. 베트남 정부는 미래를 장기적으로 내다보면서 정책을 미리 꾸리더라. 준비할 시간이 많으니까 내부에서 의견 교환도 활발하다. 잘 지켜지고 있는 출산율 2.0명 목표도 4년 동안 토론하고 연구해 나온 수치다. 고령화도 아직 걱정할 수준이 아닌데 고령자 건강 관리 프로그램 준비(2020년 시작)에 들어갔다. 가장 놀라운 건 인구국 공무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었다. 부서 내에 인구학 전공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처음 부서에 배치되면 두 달간 별도의 인구 교육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수하게 해 기본적인 소양은 잘 갖춰져 있다. 인구·통계 전문가가 하나도 없는 한국 복지부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베트남 사회에선 부러운 점이 없나.“아이를 좋아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 집집마다 문을 열어놓는데 다른 집 아이가 막 뛰어다니면서 들어와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더라. 식사 시간에 오면 데리고 밥을 먹일 정도다.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베트남의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인구통계는 갈수록 어두워진다. 출산율은 최근 10년간 1.1~1.3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올해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다. 총인구는 2030년 5216만 명에서 계속 줄어 2060년엔 4396만 명이 된다.



조 교수가 내다보는 미래도 다르지 않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직후 그는 인구학자로서 바라본 10년 후 한국의 모습과 대안을 정리한 책 ?정해진 미래?를 펴냈다. 정원 미달에 따른 대학 통폐합 위기, 설자리를 잃어가는 초·중·고 교원들, 전문직 포화에 따른 신규 진입자 급감. 책에선 이 같은 디스토피아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개 일본을 예를 들며 ‘한국도 일본처럼 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일본만큼만 돼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도 불구하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위치를 지켰다. 조 교수는 “인구 1억 명 이상의 내수 시장이 받쳐주는데다 한국·중국·대만 등 상대적으로 젊은 주변국에서 제품을 많이 사줬기 때문”이라고 봤다.



한국에 주어진 미래는 일본이 걸어온 길과 다를 것이라고 조 교수는 예상했다. 중국·일본처럼 우리 제품을 구매해야 할 인근 소비시장은 고령화로 위축되고 있다.



조 교수는 ‘정해진 미래’를 바꾸려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윗세대에서 40만 개였던 일자리가 아래 세대에서 60만 개로 확 늘어나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공식적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단순히 ‘중동으로 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개인이 감내할 위험성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리고 아이도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동수당 도입처럼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는 파격적 방안을 고려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는 인구학자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청·장·노년층의 비율이 일정한 원통 형태의 인구구조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꼽았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들이 지금의 젊은 층과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큰 그림을 짜주고 싶습니다. 학자·언론·전문가들이 서둘러 혜안을 나눠야만 가능한 일이죠. 그렇지 않다면 미래는 그냥 정해진 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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