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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되기 싫다면 …

중앙선데이 2016.10.02 00:54 499호 2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이번 일요일에 할아버지 산소에 간다.”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그래요? 이번에는 콩비지를 먹어야지.”



중학생인 아들에게 성묘 계획을 말하며 오고간 대화다. 산소와 콩비지? 이상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우리집 성묘 스케줄은 이렇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전에 출발해 차례를 지낸다. 점심때가 되면 별 일이 없는 한 인근에 손두부를 잘하는 식당에 간다. 매년 같은 코스로 가니 아이에게 성묘는 두부 먹는 날로 인식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새로운 맛집이 있는지 검색해보기도 했다. 너무 이상한 식당을 골라 불쾌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그냥 일년에 두 번 정도 같은 식당을 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엄청나게 편해졌다. 이렇게 일상사의 루틴을 정해놓는 것은 이득이 되는 측면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을 때마다 매일 칫솔을 고르고, 치약을 짜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덕분에 엄청 졸리고 멍한 상태에도 세수와 양치질은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디폴트 네트워크(default network) 기능의 일부다. 뇌의 전전두엽 부위와 연관되어 있는데, 매 단계마다 복잡하게 선택할 필요를 없애 에너지를 덜 쓰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이 부분이 활성화되면 우리의 선택들을 세트로 묶어 일련의 흐름을 만든다. 매번 여러 경우를 선택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들은 가장 최적의 선택들을 세트로 만들어서 시행하도록 세팅해놓는 것이다.



겨우 1.4㎏에 불과한 뇌는 몸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총 20%를 사용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기관이다. 현실사회에서 많은 예산을 쓰는 곳일수록 낭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듯이 뇌도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려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 백일몽을 꾸거나 멍때리는 것도 같은 기능이다. 깨어있는 동안 별 할 일이 없다면 최소의 에너지만 쓰는 공회전을 시키는 것이다. 뇌의 또 다른 조치는 세트메뉴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마치 패키지 여행이 개별로 선택해 구성한 여행보다 저렴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메뉴가 단품을 사는 것보다 싼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면 이런 세트만들기에 의존하는 비율이 늘어난다.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정해진 세트메뉴가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정신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들다 보니 경제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기 때문이다. 중년 이후 변화를 두려워하고, 하던 것만 하고 가던 곳만 가려 하는 것은 일상의 판단과 선택이 세트메뉴로 몽땅 단단히 묶여 버린 부작용이다. 게다가 한번 묶은 세트는 쉽사리 해체되지도 않는다. 예측하지 못했던 급격한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큰 혼란에 빠질 위험도 있다.



삶의 패턴을 루틴에 의존하는 것은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변화가 싫고,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릴 수준까지 간다면 편리함에 의존하려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고 해체작업을 해야한다. 마음의 운용을 오직 경제논리에만 의존하다가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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