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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4000만년 끈질긴 생명력 위기 때 산란관 버리는 ‘혁신’

중앙선데이 2016.10.02 00:33 499호 27면 지면보기

호박 속에 사로잡힌 바퀴벌레로 부터 털처럼 가느다란 모양선충(毛樣線蟲, 화살표)이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다. 도미니카에서 발견된 고생대 석탄기 호박.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 소꿉놀이 어린이들 뛰어와서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 병정들도 싱글벙글/ 빨래터의 아낙네도 우물가의 처녀도/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희한하다 그 모습/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달이 떠올라 오면/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그립다 그 얼굴.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바퀴벌레

요즘은 듣기 어렵지만 1970~80년대에만 해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스페인 민요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후렴을 명랑하게 장식하는 라쿠카라차(La Cucaracha)는 놀랍게도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라는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정관사이니 쿠카라차가 바퀴벌레다. 영어의 코크로치(cockroach)도 여기에서 나왔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은 무엇입니까?” 1981년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FWS)이 3107명의 성인에게 물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 3~6위는 쥐·말벌·방울뱀·박쥐가 차지했다. 그렇다면 1위와 2위를 차지한 동물은 무엇일까? 독자가 짐작한 바로 그 동물이다. 모기와 바퀴벌레다. 그런데 밤마다 잠도 자지 못하게 성가시게 굴고 매년 7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모기보다도 바퀴벌레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모기보다도 싫은 동물이 있다니…. 조금 놀랍지 않은가.



 



5가지 종류 바퀴벌레 해충으로 분류우리가 알고 있는 바퀴벌레 다섯 종, 그러니까 독일바퀴벌레, 미국바퀴벌레, 동양바퀴벌레, 회색바퀴벌레, 갈색줄무늬바퀴벌레는 모두 해충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구에는 해충으로 분류되지 않은 바퀴벌레가 4500종이나 더 있다. 이들 야생 바퀴벌레는 열대의 숲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바퀴벌레는 곤충이다. 뼈대 없는 가문에 속한다. 대신 단단한 껍질이 있다. 몸은 머리·가슴·배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가슴에 여섯 개의 다리가 있다. 알을 낳으며 체온은 외부 온도에 따라 변하지만 뜨거운 사막에서 얼어붙은 협곡에 이르기까지 어디든 존재한다. 이렇게 강인한 생명력은 그들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해준다. 곤충은 무려 4억 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이제는 사라질 때도 됐을 것 같지만 여전히 지구 생명체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사람이 곤충을 유독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먹이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하마, 기린, 펭귄, 사슴이나 고등어, 고래는 사람과 먹이를 놓고 다투지 않는다. 그런데 곤충은 식량자원을 놓고 사람과 경쟁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곤충들 가운데는 질병을 옮기는 것들이 많다.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모기다. 매년 45만 명이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데 비해 모기에 물려 죽는 사람은 매년 75만 명에 이른다.



곤충은 지구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인 호모사피엔스에게 그렇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지구의 지배자로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근육도 그 가운데 하나다. 곤충에는 근육이 많다. 사람의 근육은 792개다. 그런데 메뚜기에는 900개의 근육이 있다. 단단한 껍질(외골격)이 몸 안쪽의 근육을 끌어당기는 지레 역할을 해서 자기 체중보다 20배 이상 무거운 것도 지탱할 수 있다. 체중 70㎏인 사람이 1.4t의 자동차를 들 수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곤충을 지구에서 가장 우월한 생명체라고 불러줄 만하다. 바퀴벌레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곤충의 가장 오래된 멤버다.



 



바퀴벌레에 기생한 생물 20만 종 넘어고생대 석탄기(3억6000만~3억 년 전)로 불리는 지금부터 약 3억4000만 년 전의 지구 풍경은 이랬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보다 열 배쯤 높았다. 이산화탄소는 중요한 온실가스다. 당연히 기온도 높았다.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이 높으니 광합성이 활발했다. 양치류와 이끼로 덮여 있는 숲에 키가 20~30m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들이 등장했다. 그 아래는 소철이나 은행나무의 조상들이 살았다. 하지만 나무를 옮겨 다니면서 괴성을 지르는 원숭이들은 볼 수 없었다. 심지어 달콤한 과일과 화려한 꽃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첫 공룡이 등장하려면 1억5000만 년을 기다려야 하고 첫 영장류는 적어도 3억 년은 더 있어야 하는 때였다.



그런데 이때 이미 지구에는 600종 이상의 바퀴벌레가 살고 있었다. 한 곳에서 1900마리 이상의 바퀴벌레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4000만 년이 지난 후에는 800종으로 늘었다. 3억 년 전 지층에서는 길이가 9㎝에 달하는 초거대 바퀴벌레 화석이 발굴됐다. 영국 부스(Booth) 자연사박물관의 에드 자젬보스키는 영국 남부지방에서 약 50×50㎝의 공간에 385종의 초기 석탄기 바퀴벌레 종이 군집된 화석을 발견했다. 이 화석에서는 날개의 색깔, 줄무늬, 눈의 렌즈 같은 세부적인 사항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아열대 지방의 나무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끈적끈적한 수액을 생성한다. 호박(琥珀)은 이것이 굳은 것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발트해에서 발견된 호박에는 몸을 찌그러뜨리지 않은 바퀴벌레들이 보존돼 있다. 여기서는 고생대 바퀴벌레의 알 모양과 바퀴벌레를 숙주로 삼았던 미생물의 형태까지 볼 수 있다.



미국의 곤충학자 조지 포이나르는 도미니카에서 발견된 수천 점의 호박에서 꽃가루, 규조류를 비롯한 미생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석탄기의 도미니카 숲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여기서 발견된 미생물들은 바퀴벌레를 숙주로 삼았다. 모상성충과 나나니벌도 바퀴벌레 몸에 살면서 바퀴벌레를 포식했다. 바퀴벌레에 기생한 생물은 20만 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바퀴벌레는 끊임없이 진화했다. 지금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바퀴벌레를 만든 생물들은 바퀴벌레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기생생물들이다.



호박은 벌레의 몸 형태뿐만 아니라 DNA도 오랫동안 보존한다. 포이나르는 호박에서 추출한 DNA를 이용하여 옛 생명체를 환생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퍼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로베르타와 아들 핸드릭과 함께 연구팀을 꾸려서 호박에 갇힌 곤충의 DNA를 추출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SF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1991년 『쥬라기 공원』이라는 걸작을 탄생시켰으며 이듬해인 92년에는 포이나르가 마침내 1억2500만 년 전 호박에 갇힌 바구미의 DNA를 성공적으로 추출했다고 발표했다. 이 실험에 대해서는 실험 샘플의 연대와 실제 결과에 대해 의심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석탄기는 바퀴벌레의 시대였다. 과학자들은 석탄기에는 당시 살고 있는 곤충 개체수의 40%가 바퀴벌레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퀴벌레가 살기 좋았던 시절이다. 먹을 것은 풍족했고 아직 곤충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에 기생하는 생물들이 귀찮기는 했지만 거기에 적응했다. 그 누구도 바퀴벌레의 번창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바퀴벌레에 위기가 닥쳤다.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으로 붙어있던 판게아가 쪼개져서 지구를 떠돌아다녔다. 환경이 범지구적으로 급격히 변했다. 대부분의 생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멸종의 위기라면 누군가에게는 혁신의 기회다.



 



백악기 이후 혁신 멈추고 현대의 모습 갖춰다른 곤충들이 사라질 때 바퀴벌레는 혁신을 선택했다. 고대의 바퀴벌레는 현대의 바퀴벌레처럼 몸이 편평했다. 그런데 거의 몸길이에 육박하는 산란관이 있었다. 바퀴벌레는 나무껍질 아래 기다란 산란관을 박고 한 번에 알을 하나씩 낳았다. 2억20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의 바퀴벌레는 옛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다. 산란관을 버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거대한 공룡의 세상이었던 백악기가 되자 현대 바퀴벌레의 모습이 등장했다. 그리고는 혁신이 멈추었다. 오늘날 바퀴벌레는 현존하는 곤충류의 1%에 불과하다. 최근 1억 년 동안 바퀴벌레는 ‘한 번 바퀴벌레는 영원한 바퀴벌레’라는 신조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바퀴벌레는 인간이 가장 미워하는 곤충이다. 바퀴벌레가 포유류에 의해 박멸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혁신의 끝은 멸종이다.



생물은 ‘계-문-강-목-과-속-종’이라는 체계로 분류한다. 절지동물 문(門) 곤충 강(綱)에는 26개의 목(目)이 있는데, 모든 바퀴벌레는 망시(網翅)목에 속한다. 날개맥이 그물처럼 되어 있다는 뜻이다. 망시목의 학명은 블라타리아(Blattaria)다. 고대 그리스에서 집해충을 뜻하던 blattae에서 온 말이다. 맙소사, 목 이름 자체가 집해충이라니. 그런데 망시목에 속한 아목(亞目)을 보면 이해가 된다. 망시목에는 바퀴아목, 흰개미아목, 사마귀아목이 있다.



이 가운데 최고의 해충은 누가 뭐라고 해도 흰개미다. 그런데 흰개미는 개미와 상관이 없다. 생긴 것도 완전히 다르다. 개미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누구 몸매와 닮았는가? 날개 떨어진 말벌처럼 생겼다. 그렇다. 개미는 벌목에 속한다. 흰개미는 바퀴벌레와 가장 가까운 곤충이다.



바퀴벌레와 흰개미 그리고 사마귀는 생김새가 영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을 왜 하나의 목으로 묶어 놓았을까? 이들에게 매우 특별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알주머니’다. 말 그대로 암컷이 알을 낳는 주머니인데 작고 딱딱한 껍질이 있다.



그런데 바퀴벌레는 왜 바퀴벌레일까? 여러 가지 속설이 있으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퀴벌레가 하도 빨라 마치 바퀴가 달린 것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다. 바퀴를 강구라고 하는 곳에서는 바퀴벌레를 강구벌레라고 하고 바퀴를 박회라고 하는 곳에서는 바퀴벌레를 박회벌레라고 불렸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라쿠카라차’는 멕시코 혁명(1910~20) 당시 농민혁명군의 노래였다. 이 노래는 멕시코 인민들의 피맺힌 역사를 담고 있다. 농민혁명군들은 자신들이 비록 바퀴벌레처럼 멸시받지만 아무리 죽여도 나타나는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노래하지 않았을까?



 



이정모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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