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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下不別 -상하불별-

중앙선데이 2016.10.02 00:18 499호 29면 지면보기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법(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사상가들을 돌아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法)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치(法治)사상은 상앙(商?·?~ BC338)에 이르러 본격 시행된다. 그는 진(秦)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법치를 구현해 대륙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게 화근이었다. 자신을 뽑았던 효공(孝公)이 죽고 혜왕(惠王)이 뒤를 잇자 기득권 세력(귀족)들의 모함을 받게 된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쫓기던 상앙은 어느 객사에 들러 주인에게 숙박을 청한다. 그러나 주인은 “상앙이 제정한 연좌제를 범하게 돼 처벌받는다”며 거절했다. 이에 상앙은 “법을 만든 폐해가 나에게까지 미치는구나(作法自斃)”라고 탄식했단다. 그는 결국 거열형(車裂刑)을 받고 죽었다.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실려있는 얘기다. 상앙 스스로가 법의 엄격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상앙이 법가의 큰 길을 열었다면 한비자(韓非子·BC280~233년)는 이를 완성한 사람이다. 한비자에게 법은 ‘드러날수록 좋은 것(法莫如顯)’이었다. 그는 “법은 잣대가 같고 변함이 없어야 하며(法莫如一而固), 백성들이 그것을 널리 알도록 해야 한다(使民知之)”고 했다. ‘동일한 잣대(一)’ ‘흔들리지 않는 정당성(固)’ ‘투명성(顯)’이 법의 생명이라는 얘기다. 공평(公平)·공정(公正)·공개(公開)라는 현대적 의미의 법 정신과 다르지 않다.



“먹줄이 휜 나무를 따라 굽지 않듯, 법은 귀인에게 아첨하지 않아야 한다. 법을 시행함에 있어 똑똑한 사람이라도 이를 피할 수 없고, 용감한 자도 감히 저항할 수 없다. 대신이라고 해서 법을 피할 수 없고, 필부라고 해서 상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한비자는 또 리더 스스로가 법을 먼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백성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법을 무시하고 사심을 갖는다면, 위아래 구별이 없어질 뿐이다(人主釋法用私, 則上下不別矣).”



상앙과 한비자가 성립한 법가의 정신은 일단 성립된 법이라면 귀천의 구별 없이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한우덕중국연구소장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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