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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초능력 아닌 책임감이 만든 208초의 기적

중앙일보 2016.10.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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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원제 SULLY, 9월 28일 개봉,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이하 ‘설리’)은 인간이 이뤄 낸 경외로운 기적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실화 다룬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지난 2009년 1월 15일. 승무원을 포함한 155명을 태운 US에어웨이 소속 비행기가 이륙 직후 새 떼와 충돌했고, 양쪽 엔진 두 개가 손상됐다.

비행기는 곧장 허드슨강 수면 위로 비상 착륙했고, 사건 발생 24분 만에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모두 구출됐다. 리더의 결단력과 책임감 그리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진 구조 작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이뤄진 정부의 치밀한 조사와 청문회.

한국 사회가 겪은 큰 비극인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며, 극과 극으로 비교되는 이야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과연 ‘허드슨강의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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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책임감 있는 리더,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에어웨이 1549편 여객기에 문제가 생긴 건 이륙 후 3분 30초가 지나서였다.

새 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에 문제가 생겼고, 850m 상공에서 추진력을 잃었다. 그때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설리’는 전투기 조종사 때부터 사용해 온 호출명이자 애칭, 이하 설리 기장)은 ‘208초’라는 짧은 순간에 판단을 내리고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했다.

관제탑에선 근처 공항으로 회항을 지시했지만, 설리 기장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비행기가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순간부터 전원 구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4분.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 중 누구 하나 목숨을 잃지 않았다. ‘설리’는 전례 없던 기적 같은 사건을 재현한다. 그리고 사고 이후 벌어진, 아무도 몰랐던 뒷이야기를 전한다.

설리 기장은 짧은 순간, 혹시라도 남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게 되지 않았을까. 그는 단호한 어조로 “208초 동안 단 한 번도 나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승객들을 오래 보살피고, 전부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원이 사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을 기적 같은 결과로 이끈 것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이들이었다. 극 중에서 설리 기장(톰 행크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훌륭한 리더 곁에는 ‘어벤져스’급의 팀원들이 있었다.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아론 에크하트)는 끝까지 설리 기장을 보좌하며 승객을 챙기고, 여성 승무원인 도나 덴트(앤 쿠삭)·쉴라 데일(제인 가버트)·도린 웰시(몰리 하건)는 흔들리는 기내에서 두려움에 떠는 승객들을 안전하게 이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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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기적은 누가 만드는가

‘설리’는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뻔한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기적에 가까운 사건 이후 설리 기장은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라 유명세를 치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NTSB(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 청문회에 소환된다. 이 영화는 설리 기장의 심리를 좇으며, 그가 자신을 향한 의혹에 스스로 맞서는 과정을 보여 준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시뮬레이션 결과 충분히 인근 공항으로 회항이 가능했다” “왼쪽 엔진도 가동 중이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설리 기장의 선택이 실수일 수도 있었다며 압박을 가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두에게 영웅으로 평가받던 설리 기장도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자책과 고뇌에 휩싸인다.

대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에서 전원 생존의 기적이 일어난 후, 극은 설리 기장이 ‘영웅’이냐 ‘죄인’이냐 하는 뜻밖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일반적인 영웅 스토리의 공식에 기대지 않고, 뛰어난 균형 감각으로 노련하게 극을 이끈 거장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한 개인이 도덕적 딜레마에 맞닥뜨리는 상황을 다루며, 현대 사회가 소비하는 영웅과 영웅주의에 대해 질문을 던져 온 그의 관심사는 이 영화에서도 변함없이 드러난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지난 9월 8일 “영웅주의는 이스트우드 감독이 천착해 온 주제 중의 하나”라며 “이 영화에서는 아주 평범한 것들로 단단하게 속을 채운 비범한 영웅을 보여 줬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고 평했다.
 
▶관련기사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 톰 행크스 인터뷰

단 한순간도 날 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실존 인물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


열네 살에 처음 항공기 조종을 시작했을 때부터 공군사관학교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던 5년 그리고 전문 비행사로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기까지. 설리 기장은 비행에 대한 사명감으로 살아왔다. 자신이 조종하던 비행기가 허드슨강으로 곤두박질치던 그 순간에도 말이다.
 

이 사건으로 주목받았고, 드디어 당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소감은.

놀랍고 기쁘다. 평생에 한 번 일어나기도 어렵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내게 벌어진 것 아닌가. 내 이야기로 만든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이 영화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됐나.

“회고록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작업부터 참여했다. ‘기장은 어떤 시계를 차야 하는지, 조종실에서 넥타이를 매는지, 조종사들은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검수했고, 청문회에 대해서도 제작진과 많이 상의했다.”
 

청문회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사고가 일어나면 회사에서는 당연히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한다.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니까. 과거 나도 조종사조합에서 사건 조사관이 된 적 있다. 양쪽 입장을 다 겪어 본 거지. 그래서 청문회의 목적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 선택에 대해 자신 있었고, 그들도 약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고가 일어난 순간, 당신의 안위를 생각하지는 않았나.


“208초 동안 단 한순간도 나를 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탑승객들을 더 오래 보살피고 살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다.”
 

콧수염은 언제 밀었나.

“2년 반 전에 모두 밀었다. 아내가 늘 ‘젊고 멋지게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 엔드 크레딧에 등장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내가 콧수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들 깜짝 놀라더라. 그래서 극 중에서 톰 행크스가 사용한 콧수염을 붙였다. 설리가 설리 같아 보여야 한다면서(웃음).”

이지영 기자, 웨스트 할리우드=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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