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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치는 죽었어…나랑 허주, 타협 때까지 매일 협상”

중앙일보 2016.10.01 01:02 종합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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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여소야대 4당 체제 당시 통일민주당 원내총무였던 최형우 전 의원이 30일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정국에 대해 “지금이라도 국민을 위해 무엇이 이로운지를 생각하고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이 부인 원영일 여사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인터뷰 도중 웃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지금은…정치가 죽었어요.”

13대 국회 야대 4당체제 이끈 주역
최형우 전 의원, 부인과 함께 인터뷰

뇌출혈로 투병 중인 최형우(81) 전 신한국당 의원의 말이었다. 최 전 의원은 30일 화가인 부인 원영일 여사의 서양화 전시회가 열린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최 전 의원은 중간중간 손님들에게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1997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20년째 투병의 후유증으로 힘들게 입술을 움직여 한마디씩 했다. 긴 말은 힘겨워했지만 띄엄띄엄 완성했다. 전시회에 있던 한 지인은 “거동이 불편하고 언어가 자유롭진 않지만 건강은 잘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전 의원은 88년 여소야대의 13대 국회에서 통일민주당 원내총무였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듬해 치른 4월 총선 결과는 노태우 대통령이 총재를 맡았던 민정당 125석,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70석,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59석,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35석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여소야대 13대 국회가 출범했다.

원 여사의 도움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전 의원은 “정치가 죽었고, (30년 동안) 거꾸로 갔어요”라고 말했다. 기자가 “허주(虛舟·88년 민정당 원내총무였던 고 김윤환 전 의원)하고 5공청산 합의를 하셨지 않으냐”고 묻자 최 전 의원은 “누구?”라고 되물었다.

곁에 있던 원 여사가 “허주요, 허주. 김윤환 의원”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땐…우리는 매일 만났어요”라고 답했다.

원 여사는 “바깥양반이 그 시절 세 살 위인 허주와 형님, 아우 하며 여야를 떠나 엄청 친하게 지냈다”며 “허주가 2003년 말에 돌아가셨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 통곡을 했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최 전 의원은 불편한 손을 들어올려 눈시울을 훔쳤다.

인터뷰는 기자가 질문하고 원 여사가 중간에서 질문과 답변을 다시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기자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야권이 요구한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와 5공화국비리조사특위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정치보복을 초래한다’고 반대했는데 어떻게 합의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타협이) 될 때까지 계속 만났다”고 말했다. 그런 뒤 “원내총무가 매일 만나 서로 협상하고 대화했다. 정치가 살아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금 20대 국회에 대해 물었다. 기자가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를 요구하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국정감사가 파행이 됐다. 최근 국회 파행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최 전 의원은 “요즘은 서로 싸우기만 하는 게 보기 싫어 테레비(TV) 뉴스만 나오면 꺼버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치인들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동지정신이나 동료의식이 없다. 그러니 정치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최 전 의원은 “무조건 만나야지. 대화해야 풀리지. 만나지도 않고 어떻게…. 국민을 위한 일이면 대화를 해야지”라며 ‘만남’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원 여사는 “요즘은 당론만 따르라고 하니 정치인이 소신이 없다. 누가 소신 있게 한마디 했다가는 전부 달려들어 죽일 듯이 난리를 치고 그러니 다음 공천을 못 받을까봐 눈치만 보고 있고, 그래서 정치가 없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원 여사는 “대통령이나 당 총재나 윗사람 눈치만 보거나 계보나 당리당략을 앞세우면서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밀고 나가니 협상이고 타협이고 되지 않는다”며 “원내총무들이 일단 만나 진짜 어느 길이 국민에게 이로운 길인가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로 모두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요즘 정치인은 애국심도 없다”고 원 여사가 말하자 최 전 의원은 현 정치권이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인터뷰는 50여 분 걸렸다. 최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의 두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면서 손등에 입을 맞췄다.

글=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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