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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3무·1존·3예…대학생활 사서 고생한다고 ‘바보티씨’ 별명

중앙일보 2016.10.01 00:36 종합 13면 지면보기
창립 55주년 맞은 RO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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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후보생들은 대학 3·4학년 동안 전공 수업과 군사학을 공부한다. 서로 다른 학교 후보생들이 모여 캠퍼스를 걷고 있다. [사진 ROTC 중앙회]

해병 전우회, 고대 동문회, 호남 향우회.

한국사회에서 결집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대표적인 친목단체들이다. 이들에 못지않은 조직이 하나 더 있다. 전우애로 뭉친 학군사관 후보생 출신들의 모임 ROTC 중앙회다. ROTC는 대학 3, 4학년 때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에 소속돼 군사학 교육과 훈련을 받고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다. 장기복무를 제외하곤 28개월간 군 생활 후 중위로 전역해 사회생활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알오티시안(ROTCian)’이라 부른다. 사전에 없는 그들만의 단어다. ‘학연, 지연, 정치와 종파 초월’(3무), ‘오직 기수’(1존), ‘선배에게 존경을, 후배에게 사랑을, 동기에게 우정을’(3예)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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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ROCT중앙회장

1961년 6월 1일 초급장교 양성을 위해 ROTC제도가 생겼으니 올해로 창립 5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18만9052명의 알오티시안이 나왔다. 구타가 만연하고 배고팠던 시절에 군대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그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들 했다. 낭만을 즐기는 대학생활 기간 바보처럼 사서 고생을 한다고 해서 ‘바보티씨’라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알오티시안들은 군 생활을 마친 후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동기회나 대학 동문회, 시·도 지구회, 해외 지회, 직능 모임 등 중앙회 산하에 497개의 조직이 있다. 이렇다 보니 ‘알미남(알오티시에 미친 남자)’이 된 사람도 생겼다.

75년 13기로 임관한 손종국 중앙회장은 ROTC를 “전우애와 리더십의 상징, 대한민국 안보의 버팀목이자 경제성장의 근간”이라고 정의했다. “뭔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권유로 입단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며 “경기대 총장 시절 ROTC 단과대를 신설하려고 했다”고도 말했다. 그 역시 알미남인 셈이다.
육군사관학교나 다른 출신들도 전우애가 강하다.
“ROTC는 육사나 3사와 좀 다른 면이 있다. 다양한 과에서 모인 대학생들이 모여 군사훈련을 받고 장교가 된다. 학생도 군인도 아닌 신분에서 생기는 전우애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같은 학교 여대생들 앞에서 선배들에게 기합 받고, 두들겨 맞고 한 것에서도 끈끈함이 생긴 것 같다. 그땐 선배들에게 빠따(엉덩이 구타)를 맞아 터지는 바람에 팬티가 엉덩이에 붙어 일주일 이상씩 갈아입지 못할 때도 많았다(웃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전역하는 병사들과 같은 입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터득한 리더십도 구심력의 요소다.”
ROTC는 단기 간부가 대부분이다.
“올해 3월 4일 소위로 임관한 인원이 6003명이다. 이 중 ROTC가 4896명이다. 전체의 81.5%다. 이들 중 대부분이 전방에서 소대장 생활을 한다. 인원수가 다른 출신에 비해 많다 보니 휴전선 지역에서 수천 명의 ROTC가 소대장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안보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안보 현실에서 ROTC가 전방 최일선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60~70년대 베트남전에 참전한 인원도 1기에서 9기까지 370명이다. 학군 12기로 8사단에서 근무한 영화배우 안성기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외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는데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싶어 장교(ROTC)를 지원했지만 임관할 때 철군을 하면서 전방(강원도 금화)에서 근무했다”며 “후보생 초기에는 학업과 군사훈련을 동시에 한다는 게 힘들었지만 ROTC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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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기간 학생중앙군사학교 훈련장에서 각개전투 훈련을 하고 있는 여성 ROTC 후보생. [사진 육군]

안씨는 “ROTC 출신들은 리더십이라는 게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며 “힘든 환경을 이겨내며 쌓인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적극성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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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회장은 인터뷰 도중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ROTC 홍보 책자를 가리켰다. 알오티시안 현황이 적혀 있는 자료였다. 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3명(신경민 13기, 성일종 23기, 김민기 26기)이 ROTC 출신이다. 전직 국회의원은 45명이다. 또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1기),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2기), 박창명 병무청장(12기), 장명진 방위사업청장(12기),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14기) 등 장차관급 인사 4명(전직 68명)도 ROTC 출신이다.

부산대와 아주대 총장을 지낸 박재윤(1기), 정석종 전 전남대 총장(1기)과 손병두(2기) 전 서강대 총장 등 교육계엔 8500여 명의 알오티시안이 포진해 있다. 이호인(8기) 전주대 총장과 유병진(13기) 명지대 총장, 장호성(16기) 단국대 총장, 김인철(18기) 한국외대 총장, 이상경(17기) 경상대 총장은 현직에서 활동 중이다. 박영주(1기) 전 예술의전당 이사장과 이기웅(2기) 도서출판 열화당 대표, 방송인 이상용·주현(이상 5기)씨와 소설가 김홍신(9기)씨 등 문화계에도 1500여 명이나 된다.

박병윤(1기) 전 한국일보 사장과 차인태(5기) 전 MBC 아나운서 등 언론계에도 1200여 명이 학군 출신임을 감안하면 ROTC를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친목단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현역 장군은 26명으로 대한민국 장군 숫자(441명)에 비하면 많지 않다. 대신 대령·중령·소령 등 영관 장교 4500여 명, 대위·중위·소위 등 위관 장교 1만6000여 명이 대학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임관한 이들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육군사관학교는 장기 복무, 3사관학교는 중기 복무, ROTC는 소대장급 초급장교 양성을 목표로 운영하다 보니 학군 출신들은 대부분 의무복무기간(28개월)을 채우고 전역한다”며 “임관 때는 학군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장성급은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재계의 알오티시안들은 그야말로 짱짱하다. 확인된 통계만 기업체 3만4500여 명, 건설계 8500여 명, 금융계 7000여 명이다. 손 회장이 한국 경제성장의 근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손길승 SK그룹 명예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1기다. 천신일(3기) 세중 회장, 최길선(7기) 현대조선해양플랜트 총괄회장, 김종섭(8기) 삼익악기 회장, 서승화(9기) 한국타이어 부회장도 학군 출신이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과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은 10기, 정수현 현대건설 대표이사, 이석구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는 11기다. 이 밖에도 정명철(14기) 현대모비스 사장, 서준희(15기) BC카드 대표, 구본걸 LF 회장, 명형섭 대상 대표이사(이상 18기), 최재호(20기) 무학그룹 회장도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ROTC들은 비싼 몸이었다고 한다. 손 회장의 동기 2400여 명 가운데 100여 명이 포항제철(포스코)에 취업했고, 중동 붐이 일었을 땐 현장 노무관리자 대부분이 ROTC였다는 게 손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ROTC는 학업과 군사훈련을 한꺼번에 해내면서 사회와 군의 가교역을 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소대장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리더십을 업체에서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2010년(2011년부터 교육) 여대생들에게도 ROTC의 문을 열었다. 여군 간부의 비율을 7%로 늘리고 우수한 여대생 자원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다. 숙명여대·성신여대에 이어 다음달 1일엔 이화여대도 학군단을 창단한다. 여성 ROTC 1기(51기)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김문경(26)씨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 지원했다”며 “ROTC는 나에 대한 도전이었고 여러 어려움을 겪고 헤쳐나가면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을 깰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예비역·현역·후보생 함께 오늘 ‘휴전선 155마일 이어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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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155마일을 달리는 알마회원들. [사진 알마회]

제68회 국군의 날을 맞아 ‘어제, 오늘, 내일’의 ROTC들이 휴전선 155마일을 달린다. ROTC 마라톤 클럽(알마회) 회원 45명이다. 휴전선에는 접근이 불가능해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도로를 코스로 잡았다. 총거리는 휴전선 155마일(248㎞)보다 늘어난 308㎞다. 하루 평균 100㎞를 주파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6개 조로 전체 구간을 34개로 나누고 한 조가 10㎞ 안팎을 이어 달리는 방식이다. 3일 동안 1인당 총 80㎞를 뛰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시작 시간은 1일 오전 3시30분으로 잡았다. 양태용(22기) 알마회장은 “국군의 날을 맞아 나라사랑, 국민건강, 평화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우리가 지켰던 155마일을 달리며 현재 155마일을 지키는 현역 장병들을 격려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주자들 중엔 이영정(3기·75), 조윤구(7기·70), 이시은(9기·69), 이영균(10기·68), 홍연표(14기·63) 등 60, 70대도 포함돼 있다. 현재 대학 재학 중인 6명의 ROTC 후보생도 함께한다. 어제·오늘·내일의 주역들이 함께하는 자리인 만큼 최고령과 최연소 참가자의 나이 차는 50세가 넘는다. 박한기(21기) 8군단장은 새벽 전방 시찰을 마치고 일부 구간을 함께 달릴 계획이다. 강호균(26기) 알마회 홍보담당은 “이번 행사는 2000년 이후 네 번째”라며 “달리는 중간중간 현역 장병들을 만나 격려하고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굳건한 안보를 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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