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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아파트 지진 견디게 보강하려면 3.3㎡ 당 15만~20만원 더 들어

중앙일보 2016.10.01 00:19 종합 15면 지면보기
건물 내진설계 어떻게 하나

‘국내 전체 건물 중 내진설계가 된 비율은 6.8%(동 기준)에 불과하다.’

붕괴 방지하는 내진
굵은 철근 넣고 벽·바닥을 두껍게
초고층 건물 외벽엔 X자형 구조물
충격 완화하는 면진
건물·땅 사이에 고무패드 등 완충장치
주택보다 교량·철도·댐·공항에 쓰여
진동 상쇄시키는 제진
건물에 강철공 매달아 흔들림 억제
설치비 10억 들어 소형주택엔 부적합


최근 경북 경주 인근에서 최대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자 내진설계된 건물의 비율에 관심이 쏠렸다. 전체 건물 수 기준으로 봤을 때 극히 낮다는 통계가 나오자 국민의 걱정은 커졌다.

지진 피해를 예방하려면 내진설계는 필수다. 정작 내진설계의 원리와 실제 적용이 어떻게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흔히 말하는 ‘내진설계’는 세부적으로는 내진(耐震)·면진(免震)·제진(制震)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각각 건물의 환경·층수·용도·구조·비용 등에 맞춰 적용된다. 특정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강제 사항은 없다.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든 규정 강도 이상의 지진을 버틸 수 있게 설계하면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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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초적인 방식의 ‘내진’은 지진이 발생해 흔들리더라도 금이 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건물 자체를 튼튼하게 짓는 방법이다. 더 굵은 철근을 넣고 벽과 바닥을 두껍게 만들어 웬만한 진동도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벽식 구조가 대부분인 아파트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 내력벽에 주로 내진과 관련한 보강이 들어간다. 기둥 구조의 오피스 빌딩 등에서는 중앙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실 등을 둘러싼 벽을 특별히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 심(코어) 역할을 하도록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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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부에 X자 내진 보강재를 설치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최고층 첨탑부 조감도. [사진 롯데건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나 부산 해운대더샵 등 초고층 건물에 설치되는 아웃리거·벨트트러스 같은 특수 구조물도 내진설계에 포함된다. 아웃리거는 코어와 건물 바깥 기둥을, 벨트트러스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좌우로 흔들리는 진동을 분산시키는 구조물이다. 벽에 ‘X’자 보강재를 반복적으로 설치해 건물이 받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방법도 내진 장치의 일종으로 쓰인다.

내진설계는 강진이 발생했을 때 건축물의 완전 붕괴를 방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건물에 금이 가거나 일정 수준 이상 파손되면 철거가 불가피하다. 또 건물 내부의 설비들까지 보호하기는 어렵다. 특히 현대 건물 내부에는 전기·통신·가스·수도 등 각종 설비가 많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지진에 건물이 붕괴되지 않더라도 이들 설비 파손으로 인한 손실이 크고,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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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게 면진이다. 내진이 충격을 견디는 방식이라면 면진은 진동을 흘려버리는 구조다. 땅과 건물을 분리시키고 건축물과 땅 사이에 고무 패드 같은 진동 충격 완충장치를 설치해 진동을 줄인다. 좌우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땅이 심하게 흔들리더라도 건물이 받게 되는 진동은 적기 때문에 손상을 줄일 수 있다.

면진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건 일본이다. 1921년 일본 도쿄 제국호텔 건축 부지는 무른 땅이었다. 당시 일본 건축 관계자들은 지진에 안전하지 않다고 반대했지만, 설계를 맡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물이 반드시 단단한 땅에 고정돼 있을 이유는 없다”며 배가 물에 떠 있는 형태로 건물 기초를 만들었다. 실제로 1923년 도쿄에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다른 건물과 달리 제국호텔은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아 유명해졌다. 면진 설계에는 고유 진동 주기와 공진(共振)의 원리도 숨어 있다. 건물마다 바람이나 지진 등 외부에서 힘을 받았을 때 한번 흔들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특정 주기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흔들리는 건물에 같은 주기로 외부의 힘을 가하게 되면 그 힘이 크지 않아도 건물의 진동이 커지는 공진 현상이 발생한다. 앞뒤로 움직이는 박자에 맞춰 발을 찼을 때 그네가 더 높게 올라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공진이 발생하면 건물이 무너질 확률이 높아진다. 규모가 큰 지진은 진동 주기가 짧고 면진 장치를 설치한 건물은 진동 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공진을 피할 수 있다.

면진 설계는 국내 아파트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완충장치를 기둥과 땅 사이에 설치해야 하는데 국내 아파트의 대부분은 벽식 구조라서다. 간혹 매립지를 개발한 곳이나 송도·세종 같이 무른 지반 위에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에서 내진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건물을 기둥식으로 짓고 면진 장치를 설치하곤 한다. 또 지진에 약한 필로티 건물에서 면진 설계를 적용하기도 한다.

면진은 시공이 까다로운 편이다. 땅부터 건물 위로 연결되는 배관이나 엘리베이터 등 내부 설비 때문이다. 유봉현 GS건설 건축설계팀 부장은 “지반이 움직여도 건물은 그 자리에 서 있는 특성상 진동이 오면 땅과 건물은 원래 자리에서 1~3m 어긋나게 된다”며 “배관·송전선 등도 이런 구조에 연계해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비용도 15% 정도 더 든다. 이에 따라 면진 설계는 주택보다는 건물·교량·철도·댐·공항 등 특수구조물에 주로 쓰인다. 최근에는 데이터 서버를 보관하는 데이터센터에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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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진 설계는 건물로 들어오는 진동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줘 진동 자체를 상쇄시키는 방법이다. 예컨대 옥상에 건물과 고유 진동 주기가 같은 추를 매달아 놓는다. 지진이 발생하고 건물이 흔들리면 추는 건물과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추가 무거울수록 반대 방향으로 가해지는 힘도 강하고 결국 이 힘이 건물의 흔들림을 억제하게 된다. 앞으로 올라가는 그네에서 뒤로, 뒤로 가는 그네에서 앞으로 힘을 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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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101 빌딩 고층부에 설치된 제진 장치. 진동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건물이 덜 흔들린다. [사진 위키피디아]

가장 유명한 제진 설계 사례는 대만의 타이베이101 빌딩이다. 508m 높이의 이 빌딩에는 88층과 92층 사이에 지름 6m, 무게 660t의 강철공이 4개의 줄에 매달려 있다. 동조질량감쇄기(TMD)라 불리는 이 장치는 건물이 흔들릴 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건물이 덜 흔들리도록 한다.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능동적 형태의 제진 방법도 개발됐다. 지진이 났을 때 주변 계측기를 통해 들어온 지진 데이터가 컴퓨터에 전달되고, 컴퓨터는 진동 주기와 건물의 흔들림을 계산한다. 이를 토대로 건물에 부착된 무거운 물체를 진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인위적으로 움직여 건물의 흔들림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제진 설계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해 대형 컴퓨터와 계측기 같은 설비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유지·보수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건물에 따라 다르지만 약 10억원 정도의 설치 비용도 든다. 김지영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부장은 “내진설계에 들어갈 골재를 아낄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소형 건축물에는 경제적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아파트 중에서는 지진하중이 큰 5곳 정도만 제진 설계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지어진 건물에서 지진 성능을 보강한다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내진설계 방식이다. 벽을 더 두껍게 보강하거나 철판으로 된 벽체를 추가로 세우는 것이다. 아웃리거, 벨트트러스, X자 브레이스 등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내진 보강 사례는 주로 리모델링을 하는 아파트에서 많이 나온다. 리모델링 아파트도 내진설계 의무규정 대상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리모델링 과정에서 지금 기준의 내진 설비를 갖추는 데 3.3㎡당 15만~2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나온다.

면진 방식으로 기존 건축물에 내진 보강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반과 건물을 분리해야 하는 작업이 어렵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병욱 현대건설 건축연구개발실 대리는 “간혹 미관상 훼손을 최소화해야 하는 주요 문화유산 등에 내진 보강을 할 때 건물을 통째로 들어 면진 장치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사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나 관공서, 특수건축물, 초고층 빌딩 등에서 내진 보강을 할 때는 제진 설계를 적용하는 게 더 일반적이다.
 
3층 이상, 연면적 500㎡ 넘는 건물 내진설계 … 내년엔 2층 이상으로 확대
국내에서 내진설계 의무규정이 처음 도입된 건 1988년이다. 당시 건축법에는 층수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 대형 건물만 내진설계 대상에 포함됐다. 내진설계 의무규정이 강화된 건 2005년 7월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부터다. 3층 이상, 연면적 1000㎡ 이상 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하도록 시행령이 개정됐다. 2009년부터는 ‘처마 높이 9m’ ‘기둥 거리 10m’ 이상이라는 기준이 추가됐고 지난해에는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m²로 대상이 확대됐다.

어느 정도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할지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이 각종 조사를 통해 정한다. 2400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대 규모 지진을 예측한 뒤 해당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적용된 내진설계 강도는 규모 6.0~6.5다.

울산·경주 지역 지진으로 우려가 커지면서 내진설계 의무규정도 강화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22일 건축물 내진설계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건축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국토부의 계획대로 내년 1월 20일부터 건축법이 개정 시행되면 내진설계 대상이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 건물로 확대된다. 단 이번 개정안에는 건물이 견딜 수 있는 지진 강도의 기준치를 확대 조정하겠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학계 일부에서는 규모 6.5를 넘는 지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지진 강도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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