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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일기] (17) 인생이라는 기차 여행

중앙일보 2016.10.01 00:17 종합 16면 지면보기
오늘 아침 공덕동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어떤 남자가 내게 버럭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너무 요란하게 목욕탕을 누비고 다녀 바닥 여기저기를 물바다로 만든다며 고함을 쳤다. 순간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이방인이기에 조금만 잘못해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방인에게 버럭 화낸 남자, 증오·시기심 훌훌 털어버리세요

그런데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슬슬 화가 나는 거였다. ‘도대체 웬 시비야? 내가 자기한테 뭐라고 했나? 외국인에게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야?’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스님 한 분이 내게 해준 말씀이 생각났다. “삶이란 거대한 우주의 정거장과도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만남 하나하나가 놀라운 기적이지요.”

하긴 확률로 따질 때 우리가 진정 마음에 드는 사람과 마주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울화통 속에 처박혀 시간을 낭비하느니 한번이라도 더 가슴을 열고 내게 부딪쳐 오는 모든 인연과 기회를 적극 품어 안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늘 아침 내게 퍼부어진 고함 소리조차도 말이다.

그래, 내게 소리친 그 사람도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게지. 나는 마음을 달래려고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아무도 고의로 못돼먹은 사람은 없나니.” 우리의 심술·몰이해·치졸함·외로움·질병이 존재의 비극을 조장할 따름이다.

결국은 우리 모두 행선지가 정해진 KTX에 몸을 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속에서 기차의 조종장치를 자꾸 머릿속에 떠올려 애매한 시간을 낭비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승객 입장에서는 달리는 열차의 운행이 나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안정을 이루는 기본 요건이다. 그것이 갖춰지지 않고서 다른 승객들을 친구로 받아들여 함께 여행을 즐기기란 불가능하다.

달리는 인생의 기차 안에서도 존재의 비극과 사이코드라마쯤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문제를 만들어내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머리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그것은 끝없이 토를 달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제멋대로 기차를 세우라 요구한다. 그렇게 삶의 흐름에 딴지 거는 장본인은 항상 에고다.

존재의 비극은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무엇이다. 그것은 죽음·고독·사고·질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상사다.

사이코드라마는 시기심·비교욕구·미움·탐욕·헛된 기대와 같은 심리적 혼돈이다. 그 사이의 공간에서 우리의 자유가 숨을 쉰다. 피트니스센터에서 나는 하마터면 아무것도 아닌 말 몇 마디에 신경이 곤두서 멘털의 경련에 사로잡히는 우를 범할 뻔했다. 내게 고함친 그 사람 역시 기차에 몸을 실은 한 승객이며 기쁨과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건강은 만인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선물이 아닐 수 있다. 대신 니체는 질병과 사고, 충동과 욕망의 혼돈마저 포용할 만큼 광활한 건강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오히려 몸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마음의 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무엇이다. 진짜 치명적인 병인(病因)은 육체를 괴롭히는 질병보다 존재를 휘어잡는 증오와 탐욕, 시기심 같은 어두운 감정들 속에 있다. 즐거운 기차여행은 그런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림으로써만 가능하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피트니스센터를 나선다. 니체를 따라 걸으며 광활한 건강의 진로를 선택한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삶에 긍정을 표한다. 존재의 비극을 사이코드라마로 왜곡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삶의 기차에 오른다. 창문 밖으로 지나는 변화무쌍한 풍광에 감사하며 기적의 순간들을 음미한다.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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