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하늘로 돌아간 ‘축구바보’ 이광종

중앙일보 2016.10.01 00:07 종합 17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이광종 감독을 만난 건 2013년 7월 10일이었다.

터키 U-20 월드컵 8강 쾌거를 이루고 귀국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스튜디오로 온 이 감독은 어색해했다.

낯선 장소, 처음 본 기자에다 오자마자 사진을 찍혀야 하는 상황이니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전까지 이 감독은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 신문 기사엔 ‘무명 감독이 무명 선수를 이끌고 축구가 희생·헌신·투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상황이 오죽 낯설었을까? 그렇다고 이 어색한 표정을 신문에 게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른바 개선장군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야 했다.

결국 축구 이야기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축구 외엔 아무것도 모르시죠?”

“그렇죠.”

“그럼 축구바보네요.”

‘축구바보’란 말에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비쳤다.

“축구밖에 모르는 남자로 사진을 찍어 드릴까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로 답했다.

“가슴에서 축구공이 뿜어져 나오는 사진을 찍어드리죠.”

“알아서 해주십시오.”

어렵사리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며 ‘좋은 사진을 부탁한다’는 빈말조차 없었다.

영락없는 ‘축구바보’였다.

그 후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뤘다.

1986년 이후 28년간 이어졌던 ‘노 골드’의 한을 푼 쾌거였다.

그러니 2016 리우 올림픽 감독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2015년 2월 청천벽력 같은 보도를 접했다.

‘일어나시오, 이순신’이란 헤드라인의 스포츠면 기사였다.

각급 대표팀 감독으로 한·일전 10경기(8승 2무) 무패 행진.

그래서 ‘축구계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이 감독이 급성 백혈병과 싸우고 있다는 기사였다.

이 일을 계기로 2013년 당시 그를 인터뷰했던 취재기자에게 후일담을 들었다.

“이 감독은 한마디로 덤덤했어요. 기자에게 화려하게 꾸며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축구정치는 아예 관심 없는 듯했습니다.”

인터뷰도 사진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덤덤했다는 이야기였다.
기사 이미지
“우리나라 축구계의 산파 역할을 했죠. 축구협회에서 유소년과 청소년 지도를 십수 년 했습니다. 어림잡아도 그의 손을 거쳐 간 선수가 1000명은 족히 넘습니다.

기성용·이청용·지동원·손흥민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이 감독의 손을 한 번씩은 거쳐 간 선수들입니다.”

각종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이유였다.

“이제야 당신의 축구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데…. 의지가 강하고 축구 사랑도 남다른 분이니 잘 이겨내서 축구장에 꼭 돌아오실 겁니다.”

취재기자의 기대처럼 나 또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9월 26일, 그라운드가 아니라 하늘로 돌아갔다.

축구가 희생·헌신·투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준 ‘축구바보’ 이광종 감독이 내내 그리울 것 같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