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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재난보다 정부의 무능이 더 무섭다

중앙일보 2016.10.01 00:01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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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2학년

경주에서 역대급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은 진원지 가까이에 있는 여동생을 걱정했다. 여동생은 사진을 배우기 위해 지방에 홀로 떨어져 살고 있다. 평소 타지 생활을 한다고 걱정하는 것과 지진이라는 예상 밖의 재난에서 안전한지를 걱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우리는 학교와 국가의 재난 대처를 믿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에 대한 인식과 대응 매뉴얼이 진일보했을 것이란 희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 전해진 소식은 우리의 믿음과는 반대였다. 지진 당시 동생은 암실 수업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수업을 진행한 교수는 흔들림이 멈추자 다시 수업을 이어나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당황한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더 큰 지진이 다가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지시나 대응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만 국한된 사례가 아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지인들을 통해 인근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얘기를 접했다. 지진이 났는데도 ‘야간 자습에 집중하라’ ‘침착히 대기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역사적인 재난을 잇따라 겪은 나라가 맞는지 의심케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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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재난의 컨트롤타워를 자청하는 국민안전처의 대응도 허술했다. 긴급 상황의 소통 창구인 홈페이지는 점검 중이었으며 재난 문자는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발송됐다. 그마저도 대피요령이 누락된 통보식 내용을 일부 국민에게만 전달했다. 지진이 멈추고 난 뒤에는 SNS를 통한 괴담 확산을 막는 데 관심을 보였다. 안전처 장관은 매뉴얼이 부실하다고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것”이란 어이없는 대답을 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을 포함한 국민은 스스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번 지진에서도 국민은 자발적으로 지진 상황을 전파하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국가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존재했다면 우리 가족부터 그렇게 불안해하고 괴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재난은 항상 일어난다. 인간이 자연을 예측하거나 길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러라고 국가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안전 불감증이라는 단어는 국가의 기능과 신뢰도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다 통제와 복종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재난 그 자체보다 정부의 무능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게 나 하나뿐일까.


이 정 환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2학년


◆대학생 칼럼 보낼 곳=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www.facebook.com/icolumnist) 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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