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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8000m 오르는 다큐감독…히말라야 등반의 이면은

중앙일보 2016.10.01 00:01
1961년 첫 탐험 이래 히말라야 5000m 이상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83명이다. 매년 한두명씩 산에서 생을 마감한 셈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러길래 왜 갔냐’고 타박하듯 묻는다. 임일진(47) 감독은 줄곧 그 논란에 있었다. 원정대의 일원으로 현장을 지키고, 산악 다큐 감독으로서 그들의 영욕을 기록했다. 동료를 산에 묻고 돌아올 때는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았다. 그리고 그간의 기록을 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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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당시 패기만만했던 4명의 산악인을 다룬다. 2009년 히운출리(6441m) 북벽 도중 사라진 고 민준영, 2011년 네팔 촐라체(6440m) 북벽에서 추락한 고 김형일·장지명, 2013년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 등정 후 캠프4(8000m)에서 잠들어 영영 깨어나지 못한 고 서성호다. 임 감독은 수직 벽을 1.5km 굴러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김형일·장지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직접 8000m까지 카메라를 메고 올라가 고 서성호의 등반을 기록했다. 가버린 이들을 대신해 그에게 ‘그들은 무엇을 찾아 산에 갔나’라고 물을 수 있을까. 임 감독은 영화 ‘알피니스트’로 대답을 갈음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월드프리미어로 지난 1일 선을 보인 '알피니스트'는 내년 1월 개봉 예정이다.
 
그간 죄인처럼 살았나
“당시엔 많이 울었다. 지금도 떠나간 동료의 부모형제들을 제대로 대하지 못한다. 솔직히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성인이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갔다. 나는 촬영감독이며, 현장을 기록할 뿐이다. 영화에서처럼 나는 내 일을 했다. ‘산악인은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이다’고 김형일 대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가고자 하는 길을 갔을 뿐이다.”
왜 한참 전 얘기를 다시 꺼내나
“2009년 처음으로 히말라야 등반을 따라갈 때부터 나는 2가지를 찍었다. 하나는 TV 프로그램용 화면이고 또 하나는 그간 히말라야 원정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이면의 이야기다. TV 화면 속 히말라야는 천편일률이다. 한 사나이가 간난고초를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는다. 만세를 부르고 기쁨에 울먹인다. 뭇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진다. 그는 영웅이 된다. 과정은 없다. 산악인의 삶에도 관심없다. 히말라야 원정대엔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공중파는 그런 것들에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순백의 자연’ 히말라야나 산악 영웅에 익숙한 이들에게 ‘알피니스트’는 불편한 영화일 수 있다”
히말라야 원정의 이면이란
“조지 말로리의 ‘거기에 산에 있어서’라는 감상적인 표현은 나와 내 영화에 등장하는 산악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아름다움과 도전이라는 순수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다. 산 꼭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 야망을 갖고 있다. 밥벌이를 위해 산에 가는 경우도 있다. 또 스폰서가 끊기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원정을 기획하는 게 산악인이다. 일부 산악인은 시시때때로 히말라야에 찬사를 보내고 경외를 표하고, 신격화한다. 그러다가 스스로 경외의 대상이 되고 싶어한다. 대중은 영웅이 된 산악인에 경배를 표한다. 우리 스스로 만든 허상이다. 예전 행위예술가 무세중 선생이 ‘너희의 산은 거짓이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나는 산을 팔고 휴머니즘을 팔아 부와 명예를 얻는 짓거리에 부아가 난다. 물론 ‘알피니스트’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서성호 사망 직전, 사경을 헤매는 동료에게 카메라를 들 때는
“8000m 마지막 캠프에 도착해 산소없이 이틀을 지냈다. 나는 등정 멤버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상에서 내려오는 동료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죽을 것 같아 외국대 산소통을 찾아 찌꺼기를 들이마셨다. 밤이 되자 서성호가 캠프로 왔다. 그는 무산소 등정을 고집했다. 나는 인공산소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강제할 수는 없었다. 의식이 흐린 상태에서도 무산소 등정을 원했기에 산소 마스크를 끼우는 일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의 뜻을 존중했지만, 자고 일어나니 싸늘이 식어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물 한잔 건네주는 일뿐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강인한 산악인이었다”
그들은 왜 산에 빠졌다고 생각하나
“영화도 담고 있지만, 출발은 항상 발랄하다. 어느 누구도 죽으러 가지는 않으며, 당연히 ‘나는 등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쳐 도전한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도 있다.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에 빠져 ‘그곳에서 잠들고 싶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아마 산으로 돌아간 산악인의 최후는 거의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아주 인간적인 모습이다. 히말라야는 여신이 살지 않는 인간적인 공간이다.”
산악인들은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먹나
“산을 보고 있으면 나를 내던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궁벽의 오지에서 동료와 함께 몇달 동안을 함께 버티는 일은 고욕이자 마약이다. 그 모든 것들이 술맛나는 경험이다. 히말라야는 나에게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주었고, 그곳을 일터로 삼은 나는 온갖 복잡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술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옛 동료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이 영화도 그들이 내 뇌리에서 잊혀져 가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히말라야는 삶과 죽음, 생멸의 연속

임일진 감독의 '알피니스트' 울주영화제서 10월 1일 선보여

민낯 산악 다큐 ‘알피니스트’
각본·연출 임일진·김민철 / 러닝타임 83분 / 제작 민치앤필름

‘알피니스트’는 불편한 영화다. 거대한 히말라야에 도전장을 던진 사나이들의 첫 걸음은 늘 호기에 차 있다. 그러나 등장 인물 대다수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괴롭다. 그간 히말라야를 도전과 열정, 환희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온 관객이라면 더할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들은 무얼 찾아 거기에 갔을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임 감독의 카메라엔 다가오는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 채 등정의 각오를 다지는 산악인, 산산이 부서진 산악인의 최후 그리고 가버린 동료를 속절없이 바라보는 남겨진 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원정 비용 몇푼을 놓고 현지인과 옥신각신 하는 ‘찌질한’ 원정대장의 모습도 기존의 산악 다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특히 감독이 직접 8000m에서 올라가 죽음을 무릎쓰고 촬영한 고 서성호 대원 영상은 가슴 짠하다.

감독은 시놉시스를 쓸 당시 ‘너의 산은 거짓이다’를 가제로 잡았다. 히말라야 원정의 이면을 파헤쳐보겠다는 게 다큐의 시작이었다. 나레이션을 직접 맡은 그는 “우리의 등반 뒤엔 스폰서와 매스컴이 지켜보고 있었다”며 “이 등반의 성공 뒤엔 어떤 보상을 따를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등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몇마디의 말로 히말라야 등반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쉽게도 감독의 독백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부족하다. 당시 함께 한 사람들은 떠나고 없으니···. 어디까지나 추정일뿐이다.

시종일관 암울한 다큐는 아니다. 어떤 산 영화 못 지 않은 장대한 히말라야가 펼쳐진다.  CG로 만든 히말라야 장면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무엇보다 산악인이자 촬영감독으로서 지난 7년여 간 히말라야를 돌아다닌 노고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내년 개봉 예정이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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