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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리 보기

중앙일보 2016.10.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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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그간의 진통을 일단락 짓고 10월 6일 제21회 영화제의 닻을 올린다. 행사는 대폭 축소됐지만, 부산영화제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고른 69개국 301편의 상영작이 영화 팬을 기다린다.

비바람 그치니 가을이 왔다,
다시 부산이다

개막작은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꿈과 영화, 현실의 관계를 그린 장률 감독의 ‘춘몽’, 폐막작은 이라크 뉴웨이브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후세인 하싼 감독의 ‘검은 바람’이다. magazine M이 올해 상영작 중에서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을 미리 골라 봤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발견’될 한국 신인 감독 두 명의 인터뷰도 함께 싣는다.
 
은판 위의 여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타하르 라힘, 콘스탄스 루소, 올리비에 구르메, 마티유 아말릭│130분│프랑스·벨기에·일본
‘심리 공포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프랑스에서 찍은 신작. ‘은판사진기법(은판에 단 하나의 사진을 남기는 19세기의 초창기 사진술로, 한 번 찍는 데 몇 십 분의 노출이 필요할 정도로 오래 걸린다)’을 고수하는 사진작가 스테판(올리비에 구르메)의 조수가 된 청년 장(타하르 라힘). 스테판은 주로 외딴 저택에서, 딸 마리(콘스탄스 루소)를 카메라 앞에 길게는 두 시간씩 꼼짝 못하게 세워 놓고 실물 크기의 거대한 은판 사진을 찍는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하나같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라”고 충고하지만, 스테판은 은판 사진만이 ‘존재의 정수’를 담는 ‘진짜 예술’이라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새로운 직장을 얻어 아버지의 곁을 떠나려 하는 마리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장과 사랑에 빠진다. 그즈음 저택에서 기묘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저택을 감싸고 있는 신비한 분위기를 우아하게 그려 보인다. 갑자기 스르륵 열리는 문, 뭔가의 기운을 느끼고 저택을 둘러보는 장, 그의 눈에 비친 푸른 드레스 입은 여인의 뒷모습…. 그 기묘한 기운으로 극의 긴장을 몰아가는 연출력이 역시 구로사와 감독답다.

스테판이 은판사진기법을 고집하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은유다. 살아 있는 존재를, 은판 위에 고정시키려는 행위를 통해 스테판은 자살한 아내와 연결된다. 스테판의 저택은 그렇게 삶과 죽음, 곧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다. 삶(현실)과 죽음(환상)을 연결하는 그 신비한 기운은 장과 마리의 관계로 옮겨 간다. 그 오묘하면서도 구슬픈 연인의 사랑을 통해 이 영화는 묻는다. 끔찍한 현실과 신비한 환상 중에 무엇을 믿겠느냐고. 그것이 꼭 구로사와 감독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 줘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음 너머의 존재에 혼을 빼앗기는 스테판과 장 역을 각각 맡은 프랑스의 두 연기파 배우 올리비에 구르메와 타하르 라힘의 절절한 표정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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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펜스
야마시타 노부히로│오다기리 죠, 아오이 유우, 마츠다 쇼타, 미츠시마 신노스케│112분│일본
일본의 차세대 거장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여러 색깔의 영화를 만든다. 그중 하나는 ‘길 잃은 어른을 위한 영화’다. 취업 못한 대학 졸업생의 이야기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2013)와 이 영화가 그렇다. 도쿄에서 작은 고향 마을로 돌아와 직업 학교에 다니며 삶의 숨을 고르고 있는 시라이와(오다기리 죠). 그는 술집에서 별난 여자 사토시(아오이 유우)를 만나 점차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야마시타의 감독은 이번에도 시라이와의 마음에 어떤 용기가 피어나기까지 기다릴 줄 아는 아량을 베푼다. 이 영화는 도중에 길을 잃어도 조급할 것 없다고, 세상엔 생각보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이야기가 고요하게 흘러감에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미묘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아라우카이마 맨션
카를로스 마욜로│아드리아나 에란, 비키 에르난데스, 루이스 페르난도 몬토야│86분│콜롬비아
콜롬비아 시골 마을에서 촬영하던 신인 모델 앙헬라(아드리아나 에란). 감독과의 마찰로 촬영장에서 이탈한 그는, 마치체 부인(비키 에르난데스)과 다섯 남자가 함께 살고 있는 고즈넉한 저택 아라우카이마 맨션에 발을 딛는다. 이곳에서 앙헬라는 남자들과 엮이게 되고, 이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기이하고 관능적인 화면에 인간 내면의 어둠을 담아낸 드라마. 콜롬비아의 시골 풍광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두용 감독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회고전
2016년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은 한국 장르영화의 길을 개척한 이두용(75) 감독이다. 액션영화와 토속물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멜로·호러·미스터리·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영화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그는 한국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샤머니즘 등 토속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담하고 속도감 넘치는 편집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 그간 이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음에도, 박찬욱·류승완·오승욱 감독 등이 그에 대한 애정을 여러 번 드러낸 바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액션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용호대련’(1974)을 비롯해 제3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던 ‘피막’(1980), 제37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등 8편을 볼 수 있다.

올해 76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란 거장이자 이번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기리는 ‘그리고 영화는 계속된다: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회고전’도 주목하자.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1970년 ‘빵과 골목길’로 데뷔한 이래 세계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부산영화제와의 인연도 깊다. ‘체리 향기’로 1997년 부산에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번 부산을 찾아 아시아 영화 학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 줬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최근작인 ‘사랑을 카피하다’(2010) 등 그의 대표작 10편이 상영된다. 또한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와 함께하는 ‘아시아작가연구’ 포럼에서 그의 영화 인생을 다룬다.
 
카페 6
닐 우│둥쯔젠, 체리 응안, 린바이홍│103분│대만·중국
고등학생 민리우(둥쯔젠)는 신뤼(체리 응안)에게 푹 빠져 있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눈부터 조그만 입까지, 신뤼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진로를 겪으며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민리우와 신뤼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난다.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대만판 ‘응답하라 1994’라 해도 좋을 만큼 아련하고 정겹다. 특히 젊고 푸릇푸릇한 첫사랑의 싱그러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구석구석 그려 낸 점이 돋보인다.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민리우와 신뤼의 애틋한 사랑은, 그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두 사람의 애틋한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들도 섬세하고 빼어나다.

다소 뻔한 이야기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몇몇 장면만으로도 야외 상영관에서 관람하기에 손색없는 작품이다. 동명 온라인 소설로 인기를 얻은 작가 닐 우의 장편 감독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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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
마렌 아데│피터 시모니슈에크, 산드라 휼러, 루시 러셀│162분│독일
올해 5월 열린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최고의 다크호스로 꼽힌 작품. 평론가들과 각종 영화 매체들의 환호를 잣대로 수상 결과가 정해졌다면, 이 작품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터. 외롭고 별 볼 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윈프리드(피터 시모니슈에크)는 ‘웃음이 삶의 묘약’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의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기업 컨설팅 회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워커홀릭으로 살아가는 딸이 걱정된 윈프리드는 느닷없이 부쿠레슈티로 날아간다.

그리고 의치와 가발로 변장하고, ‘토니’란 이름의 남자로 딸 앞에 나타난다. 계속해서 딸을 곤경에 빠뜨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 대해 환멸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딸.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는 코미디로, 때로는 가슴 따뜻한 휴먼 드라마로,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회 드라마로, 번번이 관객의 예상을 뒤집으며 흘러간다. ‘독일 영화는 웃길 줄 모른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이 영화는 독일의 여성 감독 마렌 아데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 이번 기회에 그의 이름을 확실히 외워 놓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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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다른 사람들
넬리 레게라│바바라 레니, 호세 앙헬 에히도, 로시오 레온│96분│스페인
30대 중반인 마리아(바바라 레니)는 열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은 뒤 가족을 돌보는 데 헌신하며 살아왔다. 작은 서점 겸 출판사에서 일하는 틈틈이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가 되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의 아버지가 재혼을 선언하고, 마리아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새 여자친구는 은근히 그가 집에서 나가 주길 바라는 눈치인 데다, 오빠와 남동생은 마리아를 무시하는 말들을 생각 없이 내뱉는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과 출산의 세계로 발을 딛는데, 마리아의 남자친구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넬리 레게라 감독은 잔잔한 일상 속에 펼쳐지는 아주 작은 일들을 통해,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른아이’의 속내를 세밀하게 그린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결심을 하며 한 뼘 더 성장하는 마리아의 변화를 보여 주는 결말까지 탄탄하다. 마리아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대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감정 이입할 만한 인물로 빚어낸 배우 바바라 레니의 공이 크다.
 
현재 아시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세 거장 감독이 부산영화제에서 만난다. 대만의 허우샤오시엔(69),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54), 한국의 이창동(62) 감독이 그들이다. 10월 10일 오후 5시, 부산 영화의전당에 자리한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열리는 ‘특별대담1:아시아 영화의 연대를 말하다’ 무대에서 세 감독은 아시아 영화 연대의 필요성과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아시아 최고의 거장 감독이 한자리에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와 갈등을 겪은 지난 2년 동안 아시아의 많은 영화인이 영화제에 대한 지지를 보내왔다. 그 공감과 연대를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보자는 생각으로 이번 대담을 기획했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허우 감독과 고레에다 감독이 부산영화제에 힘을 보태는 뜻으로 신작이 없음에도 ‘이번 부산영화제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표하자, 김 프로그래머가 세 감독의 대담을 제안하며 성사됐다. 진행은 허문영 영화평론가가 맡는다. 세 감독은 모두 칸국제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다. 허우 감독은 ‘자객 섭은낭’으로 지난해(제69회) 감독상을, 고레에다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2013년(제66회) 심사위원상을, 이 감독은 ‘시’로 2010년(제63회)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장성란·임주리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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