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인의 작가전] 환상 편의점 #6. 미래 안약 (4)

중앙일보 2016.10.01 00:01
기사 이미지
일요일이 다 갔다. 남자는 그때까지도 당첨번호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그 흔하던 로또 판매점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겨우 찾아낸 곳은 뭔가 문제가 있었다. 매점을 겸하는 인도변의 가판대는 일요일이라 태반이 문을 닫았고 편의점은 두려워서 들어가지 못하는 식이었다. 한 마트 옆에는 하필 순찰차가 서 있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가운데, 남자는 점차 피폐해져 갔다. 돈은 있으나 여전히 쓸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순찰차도 많이 보였다. 혹시 이미 수배령이 내려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다 남자는, 옆을 스쳐 지나가는 행인 둘이서 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분명 ‘슈퍼’와 ‘살인’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하긴, 지금쯤이면 시체가 발견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남자는 어제 슈퍼마켓을 나오자마자 자그마치 여섯 시간을 꼬박 걸어서 이 동네까지 왔다. 해당 슈퍼마켓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벌써 소문이 퍼진 건 의외였다.

사실, 행인 둘은 가을인데도 한낮에는 더위가 ‘살인’적이라며,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자고 얘기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진 남자의 신경은, 모든 현상이 자신이 저지른 죄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드레날린과 분노에 취해 저질렀던 살인의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었다. 로또 일등 당첨금을 생각하면 조금 설렜지만 그것도 잠시, 바뀐 미래 탓에 번호가 달라졌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과 그런 상황임에도 번호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이 그를 반쯤 미치게 만들었다.
 
“으, 으, 아아!”
 
남자는 양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신음했다. 그러다 엉뚱한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지나치게 못 먹은 데서 온 혈당 부족, 살인한 데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 로또와 관련된 기대와 초조함 등등. 이런 상황들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줬다. 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 분명 슈퍼 주인과 화장실의 사내를 본 것만 같아서 기함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이미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든 상태였다.
 
‘내가 왜 이렇게 혼자서 불안해하지?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면 그만 아닌가? 감옥에 있는지 아니면 좋은 집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지, 혹은 강원랜드에서 다시 베팅을 하고 있는지……. 그러고 나서 거기에 맞게 행동하면 되잖아. 감옥에 있다면 이 개고생하지 말고 일찌감치 자수해버리고. 돈 펑펑 쓰면서 잘 살고 있다면 로또 일 등 당첨금을 찾았다는 뜻이니까, 어차피 내 수중에 들어오게 예정되어 있는 돈 때문에 이렇게 미친놈처럼 초조해 날뛸 필요가 있느냔 말이야.’
 
남자는 빨리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혔다. 그 바람에 중요한 사실을 깜박했다. 가끔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랬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고 어리둥절한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가 한 짓이 바로 그랬다.

그는, 자신이 알기 원하는 미래의 시간만큼을 강제로 봐야 한다는 사실과, 한 시간 안에 안약을 기준 사용량보다 초과해서 넣었을 경우에는, 보여지는 미래의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경고를 까맣게 잊었다. 그저 앞날을 알 수 있다는 데만 생각이 미쳤다. 어서 이 불안감과 초조함을 떨쳐버리고 편해지고만 싶었다.
 
‘그래, 다시 미래를 보는 거다.’
 
역시, 안심하고 미래 안약을 눈에 넣기에는 화장실이 최고였다. 남자는 맨 처음 마주친 지하철역으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 중 한 칸을 골라 들어앉았다. 들어가기 전에 거울을 잠시 보았다. 자기 자신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이제 몽롱해질 지경이 된 머리로 어설프게 계산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건물 화장실에서 들켰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밖에서 발이 안 보이도록 뚜껑 닫은 좌변기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지금 두 방울 넣으면, 대충 지금부터 두 시간 뒤의 미래가 두 시간 동안 보이는 거였지. 아아, 피곤하다. 그러고 보니 그저께부터 잠도 거의 못 잤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여섯 시간 정도 영화 본다는 기분으로 미래를 보면서 좀 졸아볼까? 아니지, 자면 눈을 감아야 하니까 볼 수가 없나? 귀한 안약을 허비하는 꼴이 될지도 몰라. 그래도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확인하는 수준이 되려면 월요일 이후 - 당첨금을 찾고 난 뒤의 시점 정도는 봐줘야 하는데. 어디, 지금이 대충 일요일 밤 10시 정도니까, 월요일 밤 이 시간정도를 확인해보면 되겠지? 그러면 앞으로 24시간 뒤……. 스물네 방울이나 넣어야 하나?’
 
남자는 두서없이 생각하면서 안약을 꺼냈다. 그리고 양쪽 눈에 번갈아 넣었다. 왼쪽 두 방울, 오른쪽 두 방울. 다시 왼쪽 두 방울, 오른쪽 두 방울. 그러다 열 몇 방울 정도에서 어디까지 셌는지 잊어버렸다.
 
“에이 씨.”
 
남자는 다시 처음부터 세기 시작했다. 왼쪽에 두 방울, 오른쪽 눈에 두 방울. 결국 그가 안약 넣길 멈춘 때는, 약이 다 떨어진 후였다. 남은 안약을 한꺼번에 모조리 눈에 넣어버린 것이다.
 
안약 넣기를 마치고 나자, 남자의 눈앞에 미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보던 그의 입이 점점 벌어지고 안색은 창백해졌다. 그것은 내일 이 시간에 벌어질 일이 아니었다. 그저 기괴하고 처절했으며 아득하도록 끔찍했다. 얼마나 먼 미래의 일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남자는 생각했다.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이미 남자 자신은, 그가 보고 있는 허상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남자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도 없었다. 이게 누구의 시점에서 보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제가 보는 미래를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경악하고 부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래의 영상은 그의 눈앞에 착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
 
남자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제발, 그만…….”
 
눈을 감아봤지만, 미래의 모습은 눈꺼풀 안쪽으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남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망연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남자는 화장실 칸이 계속 닫혀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청소원의 신고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는 비쩍 말랐으며, 이상하게 번득이는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었고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뭔가를 작게 중얼거렸다. “불 비가 내린다.”, “태양이 코앞에 있다.”,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끓어 넘친다.”는 등의 헛소리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노숙자로 여겨져,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에 쉼터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상황이 급변했다.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을 찍었는데, 며칠 전 벌어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밝혀진 것이다. 남자의 지문은, 시체가 발견된 상가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겨진 오천 원짜리 지폐에서 나온 것과 동일했다. 또 주인이 살해당한 슈퍼마켓의 금전 출납기에 남은 지문과도 같았다.

남자는 두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용의자로 긴급 체포됐다. 그러나 제대로 심문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는 묻는 말에 하나도 답하지 못했으며 끊임없이 이상한 말들을 내뱉었다. 듣고 있노라면 어쩐지 소름이 오싹 끼치는 얘기들이었다. 외부의 자극에는 짧게 반응했지만 곧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봐, 이게 당신 이름 맞지? 그 사람들은 왜 죽인 거야?”
 
“저, 저것 좀 봐. 엄청나게 거대한 구름이…… 구름이 피어올라. 세상에, 저게 다 시체야? 수만 명의 시체가 쌓여서 썩어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수천 명도 채 안 되는 것 같아…….”
 
형사는 그를 취조하다 지쳐,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이거 완전히 미쳤구먼.”
 
옆에 있던 후배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야 도저히 기소할 수가 없겠는데요?”
 
“할 수 없지. 그래도 미결 사건으로 안 남은 게 어디야. 가뜩이나 분위기 안 좋은 재개발 지역 안에서 살인이 벌어져서 매스컴들이 난리였는데. 뭐, 치료 감호소로 보내는 쪽으로 되지 않겠어?”
기사 이미지
남자는 결국 치료감호소에 수감되었다. 예전에는 공주 감호소라고 불렸고 최근에도 곧잘 그렇게 불리는 장소였다. 그는 거기서도 곧 유명인사가 되었다. 딱히 난폭한 행동이나 발작을 하진 않았지만, 이상한 말들을 끊임없이 웅얼거리는 데다가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이제 남자는 걷지도, 눕지도, 제대로 잠을 자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계속 말하기만 했다. 음식도 스스로 먹지 못하여, 관을 연결해 유동식을 주입하게 됐다. 용변처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곧 기저귀가 채워졌다. 그는 앉은 채로 쌌고 누가 처리해주기 전까지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감호소 직원과 의료진들은 점차 남자를 기피하게 되었다. 용변 처리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미루고 급기야 먹을 것을 주는 일에도 소홀해졌다. 감호소는 특성상 식단대로 일괄 배식인데, 따로 유동식을 준비하는 게 성가셨을 뿐 아니라 매번 주머니에 넣어 튜브를 뺐다가 꽂아줘야 하는 것도 일이었다. 유동식 주머니를 갈아주는 빈도가 뜸해지고 세척도 대충이었다. 심지어 상한 유동식을 튜브로 넣어줘서, 하루 종일 설사를 줄줄 흘린 적도 있었다.
 
이는 예견된 결과였다. 감호소는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원하려는 의사가 없어서, 늘 평균 인원에서 서너 명씩 모자랐다. 그런 형편에, 남자처럼 손이 많이 가는 환자에게 서넛씩 달라붙을 여유가 없었다. 자연히 남자는 계속 쇠약해져 갔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이제 남자는 얼굴에서 두 눈밖에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의 눈은 더욱 커지고 이상한 빛이 번득였다. 알 수 없는 심연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를 마주하노라면, 더운 한여름에도 등골에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모처럼 남자를 목욕시키기로 결정된 어느 날이었다. 남자는 제 몸을 어떻게 다루든 저항은커녕 반응도 거의 없었기에, 목욕은 비교적 수월했다. 예전에는 축 늘어져서 어려웠지만 이제는 뼈밖에 남지 않아 다루기도 쉬웠다. 그중, 남자에게 동정심을 느껴 비교적 친절한 수간호사가 있었다. 그나마 수간호사가 그에게 우호적이었기에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호자도, 외부의 지인도 없는 남자가 여기서 죽어 나간다고 해도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 오랜만에 상쾌하게 씻으셔야죠.”
 
수간호사가 남자의 옷을 벗기려고 손댔을 때였다. 별안간 남자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그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무서운 힘으로, 수간호사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도망쳐.”
 
특성상 조현병 환자가 많은 데다, 그녀는 경험 많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수간호사였다. 이럴 때 비명을 지르거나 억지로 뿌리치려고 하면 환자가 더욱 난폭해지기 일쑤였다. 수간호사는 아픔을 참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이거 놓으세요. 갑자기 왜 도망치라는 건데요?”
 
“어서, 어서 도망쳐. 그들이 와.”
 
“그들이 누군데요?”
 
“얼마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존재들. 아, 너무, 너무 끔찍하게 생겼어. 그 존재들은 사람을 먹어. 얼마 안 남은 생존자들을 끌고 가서 잡아먹는다고. 팔다리를 뜯어내고 몸통만 남긴 다음, 주둥이를 처박고 내장을 파먹는 거야. 아아, 또, 또 잡아간다! 저들이 오기 전에 어서 당신이라도 도망쳐!”

 
남자는 이제 자신이 보는 게 현실인지 미래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몇 달을 꼬박,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후의 기괴한 광경만 본 탓이었다.
 
“온다, 와!”
 
“진정하세요!”
 
“온……. 컥!”

 
목청껏 외치던 남자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의 몸은, 극심한 공포로 인한 급격한 혈압 상승을 견뎌내지 못했다. 남자는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이제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커진 두 눈을 부릅뜬 채로.
 
환상 편의점의 점원은 카운터에 앉아서 포스 기기의 화면으로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가 죽는 순간, 카운터에 놓인 빈 유리병에 저절로 뭔가가 담겼다. 그것은 짙은 회색의, 음울하면서도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점성 물질이었다. 검은 옷차림의 아름다운 점원은, 라벨을 꺼내 거기다 ‘탐욕’이라는 단어를 써서 병에다 붙였다.
 
“그래도 심성은 선해 보이던 인간이었는데 말이야. 그놈의 돈이 대체 뭔지……. 하긴, 돈 덕분에 우리도 인간을 조종하기가 훨씬 쉬워졌지만. 그러고 보니, 이 탐욕이라는 회색 덩어리는 당신에게도 있었지? 이제 좀 더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겠군.”
 

이로써 수수께끼의 점원이 가진 유리병은 두 개가 되었다. 집착과 탐욕이 담긴 병이 그것이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고객에게서 어떤 감정의 조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점원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기사 이미지

 작가 소개  
    명지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졸업
    단행본 <문답 무용>, <파이널 에볼루션> 출간
    <도전!웹 소설 쓰기> 공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