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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낀 약관 때문에 자살보험금 논란

중앙일보 2016.09.30 18:17
“약관을 통한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30일 대법원 판결에도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보험사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에 대한 행정제재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민사3부(대법관 박병대)는 교보생명이 계약자 한모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자살보험금 논란을 둘러싸고 관심이 쏠린 판결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한씨의 부인은 2004년 5월 교보생명의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이 상품에는 ‘보험 가입 2년이후 자살하면 재해사망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특약이 포함됐다. 한씨의 부인은 가입 2년2개월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씨는 보험금을 청구했다. 교보생명은 주계약에 따른 보험금만 주고 특약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한씨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2014년 8월 특약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에 교보생명은 “보험청구권 소멸시효(2년ㆍ2015년 3월 이후 3년)가 지났다”며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로 교보생명을 포함한 생명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한 법적 의무를 벗었다. 하지만 보험사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금감원의 생각이 다르다는 게 변수다. 애초에 보험사가 약관을 제대로 지켰다면 자살보험금 논란이 빚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다.

이 문제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동아생명(현 KDB생명)은 재해사망특약이 담긴 상품을 처음 판매했다. 다른 보험사는 이를 베낀 상품을 속속 내놨다.

이후 보험 가입자가 자살하자 보험사들은 “자살은 재해가 아니고 약관은 실수”라며 재해사망보험금의 2분의 1~3분의 1에 불과한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했다. 자살한 가입자의 유족들은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금감원은 지난 5월 “보험금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고 시간을 끈 경우가 많아 소멸시효 문제에 대한 귀책 사유도 보험사에 있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소멸시효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이 남았다”며 지급을 유보했다. 이에 금감원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삼성생명ㆍ교보생명 등 7개사에 대해 차례로 현장검사를 하고 있다.

향후 이런 압박 강도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NG생명ㆍ신한생명 등 7개사는 이날 판결 이전에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런만큼 보험사들도 ‘눈치보기’ 모드다. 소송 당사자인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제 막 판결이 나온만큼 향후 보험금 지부 여부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으로 14개 보험사가 덜 지급한 자살보험금은 2465억원(지연이자 포함)이다.

정치권 및 여론의 향배는 변수가 될 수 있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재해사망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생보사들이 알면서도 지급하지 않거나 설명조차 하지 않은 불법행위를 묵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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