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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중국의 역사적 비원

중앙일보 2016.09.28 18:34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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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중국은 거세다. 중국 외교는 거만하다. 그 실상은 사드 갈등에서 드러났다. 주한미군의 사드는 방어용 무기체계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비판은 위압적이었다. 그 장면은 이제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우리에게 한·중 관계를 살피는 계기가 됐다. 시진핑(習近平)시대의 중국을 다시 보게 했다.

한반도의 독점적 영향력 복원
'중국몽' 청일전쟁 이전으로
마오쩌둥과 장제스도 원했다
꿈 이루는 교두보가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 제재 한계
한국의 안보 투지 절실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라는 사자는 깨어났다(睡醒的 獅子)”고 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은 경고했다.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나폴레옹은 중국의 잠재력을 간파했다. 그때 중국은 발톱 빠진 사자였다.

시진핑의 발언 시점은 2014년 3월이다. 그 이후 중국 대외정책의 자세가 달라졌다. 도광양회(韜光養晦)식 절제와 은근함은 사라졌다. 사자의 본능은 패권(覇權)이다. 국제정치는 밀림 속 투쟁이다. 사자는 현상 타파에 나섰다. 대상은 남중국해와 동북아 질서다. 지난 7월 헤이그 중재재판소는 중국의 기세에 제동을 걸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그 판정을 묵살한다.

시진핑의 야망은 ‘중국몽(夢)’이다. 그 꿈은 역사적이다. 한반도에서 조공(朝貢)과 사대(事大)의 기간은 길었다. 그런 중국이 19세기 말 한반도에서 밀려났다. 청일전쟁의 패배 때문이다. ‘중국몽’은 청일전쟁 이전에 누린 지위의 회복이다. 한반도에서 독점적인 영향력의 복원이다. 그 목표는 신중국의 건설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비원(悲願)이다. 장제스(蔣介石)의 염원이기도 하다. 장제스는 마오에게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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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원의 달성 조건은 명쾌하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약화다.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은 헝클어져야 한다. 반면에 북한의 존재는 중국에 매력적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결정적이다. 중국의 석유·식량 지원이 없으면 북한엔 치명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후원은 끊이지 않는다.

북한은 중국에도 골치 아프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몽 성취의 지정학적 교두보다. 중국은 그 가치를 포기하기 어렵다. 북한 핵무기는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킨다.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制裁)는 계속된다. 중국은 마지막 단계에선 주춤한다. 중국 랴오닝(遼寧) 훙샹(鴻祥)그룹은 북한의 핵개발 지원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은 금융제재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의 직접적인 기업 압박을 반대한다.

중국 외교는 내심 한국을 얕잡아 본다. 그 속에는 중화(中華)의 DNA가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의 책임도 크다. 북한의 핵실험 때면 한국은 중국에 매달린다. 북한에 압력을 넣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한 중국의 외교가·학계의 반응은 비슷하다. 그들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조한다.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한국 사람이 같은 민족인데 북한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 그 말 속에 비웃음이 얹혀 있다. 외교는 인간관계와 같다. 과도한 의존과 잦은 부탁은 경멸을 낳는다.

핵은 절대무기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안보 불감증은 여전하다. 자주 안보의 투지는 빈곤하다. 정치권은 독자적 대응책 마련에 게으르다. 일부에선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분리 대응을 아직도 믿는다. 그것은 한가한 발상이다. 비상시엔 유효하지 않다. 한국식 용미(用美, 미국 활용)·용중(用中) 전략은 착각이다. 강대국은 바보인가. 미·중은 그런 나눔을 기회주의 외교로 바라본다. 국제정치는 자선의 무대가 아니다. 안보는 경제다. 북한의 핵 협박 속에 두 사안은 나뉘지 않는다.

하여장(何如璋)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청나라 말기 일본 주재 공사였다. 그는 영국 외교관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인들은 어린아이 같다. 그들에게 힘을 적절히 내비치면서 친절하게 달래면 쉽게 따른다.” 이 내용은 도쿄의 임시대리공사 케네디(J. Gordon Kennedy)가 런던의 외교부에 보낸 극비 문서다. 그 말은 하여장이 한국과의 수교를 권유하면서 했다. 청나라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고 영국을 끌어들였다. 황준헌(黃遵憲)의 저서 『조선책략』은 하여장의 구상을 담았다. 황준헌은 하여장 밑의 참사관이었다.

어린아이는 기댄다. 어린아이는 고자질한다. 사드에 대한 일부 야당 의원들의 행태는 비슷하다. 어린아이는 겁을 주면 호들갑을 떤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무역보복은 중국에 부메랑이 된다. 중국도 피해를 본다.

북한 핵무기의 방어 수단이 시급하다. 대응 무기 없는 대화는 굴욕이다. 그 덕분에 얻는 평화는 썩는다. 여러 전략적 대안이 거론된다. 사드 배치 계획의 확대, 전술핵무기의 재배치, 핵 무장론, 나토 방식의 핵 공유-. 어떤 논의와 선택이든 전제가 있다. 자주적 투지(鬪志)의 당당한 분위기가 퍼져야 한다. 북한 핵은 우리 문제다. 한민족의 사활이 걸려 있다. 북핵 타파의 해법은 국민적 안보 의지에서 나온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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