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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김재수가 지금 해야 할 일

중앙일보 2016.09.28 18:29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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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자칭 ‘흙수저’ 김재수는 어떻게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됐을까. 그의 평판과 행적을 수소문했다. 그에 대한 주변의 일치된 평은 마당발이다. 과장 좀 보태면 김영란법 대상자의 절반쯤은 알고 지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면식 없어도 주요 인사에게 먼저 찾아가 안면을 트는 데 능하다. 해야 할 일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안면 몰수형, 해바라기형이란 악평도 있다. 5년여 민간 부문에서 일하면서 식품 쪽에 특화했던 게 장관 낙점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설도 있다.

정치는 정치인에 맡기고
나라 먹거리에 올인하라

그는 지금 빚을 진 심정일 것이다. 원치 않게 국정 마비의 빌미가 됐다. 대통령에게도, 국민에게도 면목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장관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왕 하겠다니 나는 그에게 딱 하나만 주문하련다. 식품 한류, 식품 한국의 틀을 제대로 닦아달라는 것이다.

68년 역사의 농림부가 식품을 맡게 된 건 8년 전이다. 2008년 식품산업본부가 처음 생겼다. 2007년 한·미 FTA 협상 타결로 농식품 대책이 필요했다. 농식품부가 내놓은 해답이 국가식품클러스터였다. 생산·가공·유통·연구·포장·판매까지 거대한 식품제국, 식품판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2008년 익산이 선정됐다. 2020년까지 매출 15조원, 수출 30억 달러, 일자리 2만2000개 창출이 목표다. 식품기업 150여 개, 연구기관 10여 곳을 유치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지지부진하다. 공정은 3년여 늦어졌고, 지난 6월 현재 실제 투자는 국내 중소기업 8곳이 고작이다.

익산의 롤 모델은 외레순이다. 스웨덴과 덴마크가 반씩 차지하고 있는 해협이다. 우리에겐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스웨덴 말뫼와 붙어 있다. 덴마크는 1989년 ‘전략 1992 네트워크 플랜’을 추진했다. 영세한 식품기업들을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소와 묶었다. 연 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여기에 스웨덴이 가세했다. 조선업이 떠난 말뫼에서 외레순을 잇는 대교를 놓고 식품산업 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10년에 걸쳐 연 250만 유로를 지원했다. 두 정부의 강력한 합작 리더십이 가동됐다. 외레순 지역에 흩어져 있던 두 나라의 14개 대학을 하나로 묶었다. 식품 관련이면 원스톱으로 강의와 연구가 가능하게 했다. 크리스찬 한센, 칼스버그, 데니스코, 랜트만넨 등 80여 개의 대기업이 입주했다. 네덜란드의 유니레버, 스위스의 네슬레 등 다국적 식품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가 몰려들었다. 그렇게 30여 년. 외레순은 세계 3대 식품클러스터가 됐다. 연매출 680억 달러(덴마크 GDP의 약 4분의 1), 일자리 25만 개가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농식품부가 익산클러스터 계획을 만들 때 김재수는 기획조정실장이었다. 담당은 아니었지만 꽤 깊이 간여했다고 한다. 장관이 된 지금이 실력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다. 익산에 올인하라. 특유의 마당발로 대학을 연결하고 기업을 끌어오라. 세계 식품 시장(5.3조 달러)은 자동차(1.7조 달러)의 3배가 넘는다. 중국의 식품 시장만 약 1000조원. 식품만 잘해도 나라가 먹고살고, 농식품부가 산업통상자원부보다 커질 수 있다.

첫 번째 할 일은 LG CNS 같은 사태가 다시 없게 하는 것이다. LG는 새만금 땅 23만 평에 대규모 스마트농장을 지으려 했다. 3800억원의 외국 자금도 끌어왔다. 2년 전 농민 반대로 무산된 동부한농팜의 전철을 안 밟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대화도 하고 지원도 약속했다. 3년 전 정부·기업·농민이 함께 만든 ‘기업의 농업 참여 가이드라인’을 성실히 지켰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일부 극렬 농민의 반대와 시위에 결국 LG는 지난주 손을 들었다.

농림부는 몸조심에 급급했다. “우리가 나서면 ‘정부가 대기업 하수인이냐’며 농민 반발이 더 거세진다”며 기자에게도 “몸 조심, 글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이래서야 한국의 식품 실리콘 밸리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일에는 몸을 던지는 장관이 꼭 필요하다. 농민과 기업을 잇는 상생의 성공 모델부터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 김재수가 해내면 길이 칭찬받을 것이다. 그게 나라와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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