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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화소 vs 유기 발광…고화질TV ‘원천기술’ 대결

중앙일보 2016.09.28 01:25 종합 20면 지면보기
마치 홍해처럼 전 세계 TV 제조업체들이 두 진영으로 크게 갈라졌다. 액정표시장치(LCD) 이후 어떤 디스플레이가 차세대 TV를 주도할지를 놓고서다. 핵심 기술의 이름은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퀀텀닷’과 ‘올레드’. 이 대결이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가전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 진영의 수장으로 개발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퀀텀닷과 올레드는 각각 어떤 장점을 갖고 있을까. 그들이 들려 주는 자기 소개를 가정해 봤다.
 
삼성전자 주도 퀀텀닷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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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의 창문을 장식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아시나요. 오묘한 색상이 바래지 않는 데다 빛의 양에 따라 내뿜는 색이 달라 ‘신비의 유리’로 알려져 있지요. 이 유리가 발하는 색의 비밀을 1980년대에 러시아 화학자들이 밝혀냈습니다. “크기에 따라 다른 색을 발하는 극히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죠. 바로 나 ‘퀀텀닷(Quantum Dot·양자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죠.

퀀텀닷은 카드뮴·인듐 같은 반도체 성질을 가진 무기물을 매우 잘게 쪼개 얻어진답니다. 머리카락 한 올을 10만 가닥으로 쪼개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겠죠. 이만큼이나 작은 알갱이가 1나노미터(㎚)짜리 퀀텀닷입니다. 최근 문제가 된 초미세먼지(2.5㎛)의 1000분의 1 크기죠. 나를 2㎚, 4㎚, 6㎚짜리 알갱이로 만들어 내면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빛을 흘려 주면 2㎚ 퀀텀닷은 푸른색(B), 4㎚ 퀀텀닷은 녹색(G), 6㎚ 퀀텀닷은 붉은색(R)을 낸답니다.

현대 과학은 정밀 분해 기술을 통해 퀀텀닷을 만들어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TV의 소재로 본격 연구된 시기는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빛의 3원색 R·G·B를 만들어 내면 그 조합에 따라 TV 화면에 나타나는 온갖 색상을 구현할 수 있으니 적용해 보자고 도전하게 된 것이지요. 삼성종합기술원은 10년간의 연구 끝에 2000년대 후반 카드뮴을 원료로 퀀텀닷 물질을 만들어 냈어요. 카드뮴은 재료도 구하기 쉽고 빛을 발하는 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라는 단점이 있었어요. 삼성종합기술원은 다른 원료를 찾기 시작했고 ‘카드뮴 프리(Free) 퀀텀닷’을 만들어 냈답니다. 세계에서 삼성전자만이 갖고 있는 기술이죠.

TV 적용 원리는 어렵지 않아요. 빛을 내는 백라이트(LED 발광판)에 퀀텀닷 알갱이를 코팅한 필름을 덧붙이는 식입니다. 빛이 이 필름을 통과하면서 서로 다른 나노 입자의 크기를 통과하며 총 천연색을 내는 거지요. 이렇게 나온 빛은 그 앞에 붙어 있는 R·G·B 컬러 필터를 통과하면서 화면에 더 선명한 색상으로 구현됩니다.

퀀텀닷은 디스플레이로서 장점이 많아요. 우선 탄소가 없는 무기물이기 때문에 내구성이 뛰어나요. 색 재현율이 높아 자연색에 가까운 색을 내지요. 발광 효율이 뛰어나 에너지 소모가 적고 수명이 길면서 유기물을 원료로 쓸 때보다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지요. 다만 너무 작은 물질을 다루는 일이라 현재의 필름 증착 방식이 아닌 퀀텀닷 소재 자체를 조합해 디스플레이로 만들기까진 앞으로도 한참 걸린다는 게 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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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퀀텀닷을 다루는 기술이 중요한 건 TV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선도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서예요.

예를 들면 암세포에 달라붙는 단백질을 만든 후 퀀텀닷을 집어넣어 레이저를 쏘이면 어떻게 될까요. 빛이 발하면서 암세포의 위치와 크기를 쉽게 표시하겠지요. 빛을 흡수하는 퀀텀닷의 성질을 활용하면 태양전지의 효율도 한층 더 높일 수 있답니다. 퀀텀닷, 놀랍지 않으세요?
 
LG전자 주도 올레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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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식물 같은 생명체에서 얻어지는 물질을 ‘유기물(有機物·Organic matter)’이라고 합니다. 더 쉽게는 ‘탄소가 포함된 물질’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지요. 1950년대에 과학자들이 아주 재미난 현상을 발견했어요. 전기를 흘리면 빛을 발하는 성질을 가진 나 같은 ‘발광 유기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87년 코닥의 기술진 탕(Tang)과 반슬라이크(VanSlyke)가 합성 유기물에 양극과 음극 전류를 흘려 빛을 내는 구조를 개발했고, 이는 현재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의 근간이 됐어요. 이후 90년대부터 산업계에서는 발광하는 유기물을 디스플레이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2012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유기물을 이용한 55인치 올레드 TV를 만들어 냈어요. 박막 트랜지스터(TFT)에 유기물로 만든 R·G·B 소자를 붙여 빛을 내게 하고 이 빛이 컬러 필터를 통과하면서 보정되는 방식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거지요.

디스플레이 소재로서 올레드는 장점이 많아요. 무엇보다 ‘깊은 블랙’ 색상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유기물에 빛을 흘리지 않으면 아예 색을 발하지 않으니 완벽한 검은색이 표현됩니다. 무한대의 명암비가 가능한 거지요. 그만큼 색감이 풍부해져 자연색에 가까운 빛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올레드는 LCD보다 응답 속도가 1000배 빠르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초기 LCD TV는 축구경기를 볼 때 날아가는 축구공의 궤적이 화면에 뿌옇게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화면 응답 속도가 늦어서지요. 올레드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시야각(Viewing Angle)도 무척 넓습니다. LCD는 좌우 측면에서 볼 때 화면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이 있지만 올레드는 좌우에서 시청해도 정면과 똑같은 색상을 감상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강점은 투명(Transparent)하거나, 휘어지고(Flexible), 접을 수 있는(Foldable)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현재 LG전자가 선보이는 올레드 TV의 두께는 동전 두 개를 겹쳐 놓은 정도로 무척 얇습니다. 기술이 진화하면 이론적으로는 종이처럼 얇은 디스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유리처럼 뒤편이 보이는 투명 디스플레이도 가능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와이셔츠에 연필을 꽂고 있는 것처럼 둘둘 말린 디스플레이를 꽂고 있다가 꺼내 펼쳐서 웹서핑을 하는 일도 올레드를 통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올레드가 디스플레이의 응용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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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드에도 몇 가지 기술적 난제는 있습니다. 우선 디스플레이의 수명입니다. 유기물로 R·G·B 색상을 발현하는 구조를 만들고 나면 청색(B) 소자의 수명이 다른 색상에 비해 다소 짧은 문제가 생긴답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색상의 조합이 어그러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기술적 난제란 연구개발 앞에 극복되기 마련입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지요. 꿈의 디스플레이 올레드가 만드는 미래, 기대해 주세요.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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