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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방크 폭탄’ 글로벌 증시가 떤다

중앙일보 2016.09.28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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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도이체방크의 주가 급락 여파로 미국과 유럽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은행주도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다. 도이체방크 주가는 올 들어 50% 넘게 하락했다. 사진은 26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 [AP=뉴시스]

글로벌 빅 뱅크(Big Bank)가 흔들리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 은행의 생명인 신용마저 흔들리며 추락 중이다. 일부 전문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한 베어스턴스나 리먼 브라더스의 악몽을 떠올린다.

벌금낼 돈 절반도 준비 못해
정부선 지원 거절 보도 나와
주가 7.5%↓ 33년 만에 최저

위기의 진원지는 독일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도이체방크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도이체방크 주가는 하루 새 7.5% 폭락하며 1983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14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이체방크의 위신이 꺾인 건 한 줄의 보도 때문이었다. 독일 주간지 포쿠스는 “도이체방크가 앙겔라 메르켈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가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도이체방크는 즉각 “단 한 번도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반박 성명을 냈지만 시장은 신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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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CEO

도이체방크가 정부 지원 요청설에 휘둘릴 정도가 된 것은 안팎의 우환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실한 주택저당증권(MBS)을 판매한 혐의로 최근 미국 법무부로부터 벌금 140억 달러(약 15조3300억원)를 부과받았다. 이 은행이 충당금으로 쌓아놓은 돈(62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자, 도이체방크의 몸집(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여기에 도이체방크 자산(약 1조8000억 유로) 대부분이 파생상품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파산설까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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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은 컸다. 26일 독일(-2.19%), 영국(-1.32%), 프랑스(-1.8%) 등 유럽 주요국 증시는 도이체방크의 구제금융설에 일제히 하락했다. 은행주도 직격탄을 맞았다. 코메르츠방크·우니크레디트·BNP파리바 등 유럽 대형 은행의 주가는 이날 4% 안팎의 급락세를 나타냈다. JP모건체이스(-2.1%), 뱅크오브아메리카(-2.8%), 씨티그룹(-2.7%), 웰스파고(-1.88%) 등 미국 주요 은행 주가도 모두 떨어졌다. 케빈 켈리 레콘캐피털 수석투자책임자는 “도이체방크가 자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로 ‘신용을 잃은 은행에 대한 불안감’이 민감한 움직임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일부 전문가는 도이체방크가 제2의 리먼 브라더스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듯이 도이체방크의 붕괴가 ‘리먼 모먼트(Lehman moment)’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6월 “세계 주요 은행 중 금융시장의 구조적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라고 지적했다. 피터 부크바 린지그룹 수석 시장분석가도 도이체방크의 상황을 “느리게 움직이는 열차에 사고가 난 격”이라고 비유했다.

은행의 추락은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파고가 대표적이다. 웰스파고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켜간 몇 안 되는 은행이다. 그러나 그 성장의 비결이 ‘유령 거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뭇매를 맞고 있다. 미국 연방소비자금융국(CFPB)에 따르면 웰스파고는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200만 개에 달하는 유령계좌를 개설하고 유령 신용카드 56만 개를 만들어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웰스파고의 주가는 이달 초 50달러에서 26일(현지시간) 44.88달러로 10% 하락했고, 연초 대비 시가총액은 약 300억 달러가 줄었다. 미국 공화당 소속 리처드 셸비 상원 은행위원장은 “은행은 신뢰에 기초하는데 그 신뢰가 웰스파고에서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스위스 최대은행 UBS도 ‘신뢰 리스크’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달 초 고객 계좌정보를 독일 주 정부에 팔아넘긴 UBS은행 전 직원이 기소되면서다. 이 직원은 2012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독일 고객의 정보를 돈을 받고 넘겨 돈세탁, 스파이 혐의와 함께 비밀주의를 어긴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UBS가 팔아넘긴 정보는 독일 내 772개 재단과 개인 550명의 계좌 정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UBS는 독일에서 3억 유로(약 3678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대형은행들이 휘청거리는 것은 장기간 초저금리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세계 경기 회복 둔화, 주요국의 금융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파생상품에 기대고 모럴 헤저드에 빠져드는 악순환도 한몫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때만 되면 불거지는 유럽·미국 은행권에 대한 불안감은 주요 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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