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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인류] 패션 광고사진 미술관을 탐하다

중앙일보 2016.09.28 00:01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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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파우더, 존 갈리아노를 입고 있는 릴리 도널드슨`, 2008, 닉 나이트.

#지난 7월 영국 런던 외곽의 작은 마을 카범(Cobham)의 한 저택 수영장.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모델 등으로 새벽부터 북적였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델들이 핸드백을 들고 하나 둘 물 속으로 들어갔고, 수중 카메라를 메고 함께 물 속에 뛰어든 사진 작가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몽환적인 수중 사진으로 유명한 포토그래퍼 제나 할러웨이의 쿠론(국내 핸드백 브랜드) 가을·겨울(FW) 시즌 광고 촬영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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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론 광고를 촬영 중인 제나 할러웨이.

#서울 대림미술관에선 다음달 6일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를 개막한다. 닉 나이트는 1980년대 중반부터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톰 포드, 존 갈리아노, 요지 야마모토 등과 작업해온 패션 포토그래퍼로, 이번 전시에서는 3D 스캐너로 얻어낸 디지털 데이터를 프린트한 케이트 모스의 ‘사진 조각상’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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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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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테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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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리츠

닉 나이트와 제나 할러웨이, 이 둘은 올 가을 각각 전시와 지면광고로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크리스찬 디올이나 몽클레어 등 유명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위한 광고 작업도 물론 많이 했지만 런던 테이트 모던과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사치 갤러리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사진 작가라는 점 말이다. 사실 이 둘 뿐만이 아니라 이미 패션 사진은 예술의 반열에 올라섰다. 과거엔 패션 포토그래퍼가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업계에서 명성을 얻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거꾸로 패션 브랜드들이 이 사진가들의 이름에 기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시도를 할 정도가 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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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론 2016년 가을·겨울 시즌 광고, 제나 할러웨이.

바레인 태생의 영국인 제나 할러웨이와 작업한 쿠론이 대표적인 예다. 할러웨이는 물 속에서의 중력과 빛의 굴절을 활용해 몽환적인 이미지를 내는 작품들로 유명한 수중 촬영 전문 사진가. 쿠론 작업에서도 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드러지는 머릿결 등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오영미 쿠론 디자인실장은 “우리 핸드백 제품을 한 폭의 그림이나 예술 작품처럼 표현하기 위해 할러웨이를 선택했다”며 “확고한 작품세계를 가진 포토그래퍼와의 작업은 우리 브랜드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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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체 드레스, 1990, 허브 리츠.

사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일찌감치 패션 사진에 공을 들여왔다. 시즌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유명 포토그래퍼가 협업해 예술성 짙은 작업을 내놓는 식이다. 베르사체는 1990년 마돈나와 믹 재거 등과 작업해 명성을 떨쳤던 허브 리츠(1952~2002)와 협업해 검정 드레스 사진을 내놓았고, 이 사진 작품들로 인해 베르사체의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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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 1979~1980, 닉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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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앤 화이트를 입은 진 패쳇, 1950, 어빙 펜.

이처럼 오늘날 패션 사진은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광고주가 의뢰한 광고 사진이기 때문에 상업성이 짙은 게 사실이지만 창의성과 작품성에 있어서는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봐도 손색없다는 평도 있다. 유명 포토그래퍼인 피터 린드버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패션 포토그래퍼는 이 시대의 화가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닉 나이트 사진전을 기획한 이정열 큐레이터는 “패션 사진은 소비를 위한 사진도 있지만 닉 나이트와 같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사람들을 독려하거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아름다움을 시각화하는 예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패션 사진은 주요 예술품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는 등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지난 4월 크리스티의 뉴욕 사진 경매에서는 1950년대 보그 모델로 이름을 날렸던 진 패쳇(Jean Patchett, 1926~2002)의 흑백 표지사진이 16만 1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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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1997. 마리오 테스티노.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생전 마지막 사진을 찍은 걸로 유명한 마리오 테스티노 등 생존하는 많은 작가들 역시 주요 미술관에서 심심치않게 초대 전시를 연다. 페루 출신의 테스티노는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지 1년이 되던 해인 1997년 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의 커버로 나선 다이애너비를 찍었다. 다이애너비가 자신을 찍을 작가로 테스티노를 직접 낙점했고, 테스티노는 여전히 세련되고 매력적이며 행복해 보이는 다이애나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포착했다. 그는 이후로도 영국 왕실의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왕세손비의 딸인 샬럿 공주의 탄생을 기념한 왕실 가족 사진도 테스티노의 작품이다.

미술관들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패션 전시를 활용한다. 이정열 큐레이터는 “패션은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친숙한 매체”라며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한 시대의 흐름, 유행, 문화 전반을 포착한 패션 사진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패션 사진 작가가 다수 있지만, 주요 미술관에서 기획 전시회를 열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사람은 드물다. 예술성이 부족하다기보다 근본적으로는 패션 시장과 광고 산업의 역사가 짧은 탓이 크다. 국내에선 19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기에, 역사가 100년을 넘은 미국·유럽과는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진평론가 신수진 씨는 “지금까지 없던 사진 기술적 표현 방법이나 감수성,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세계적 사진작가라고 한다면 아직 이만한 영향력을 가진 국내 패션작가는 찾기 어렵다”면서 “패션 사진은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제안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적 토양이 두터워짐에 따라 발전할 여지는 많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이번 8월 10일을 시작으로 격주 수요일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강남인류(江南人流)'가 옵니다.
평소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 창작 수업 내용을 시 형식으로 정리한『이성복 시론』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시'와 '시인'이라고 쓰여진 자리에 '기사'와 '기자'를 대신 써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성복 시인은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상정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뭐 다르겠어요. "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

시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시론(詩論)에 대해 늘어놓는 건 10일 독자 여러분들에게 처음 선보일 중앙일보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江南人流(강남인류)를 만든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소속 기자들의 마음가짐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언론환경을 탓하거나, 거꾸로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신문이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고루한 접근을 하는 대신 오로지 독자가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제호 江南人流에서 江南(강남)은 지역적 의미를 넘어 차별화한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 썼습니다. 결국 江南人流란 남다른 취향과 눈높이를 가진 사람들(人)을 위해 일류(一流)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담은 신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10일부터 기존의 江南通新과 번갈아가며 격주로 발행하는 江南人流,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안혜리 부장·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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