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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긴자 스시 명가의 두 계보를 잇다

중앙일보 2016.09.28 00:01 강남통신 2면 지면보기
| 35만원짜리 스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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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쥐는 손놀림은 셰프마다 다 다르다. 너무 꽉 쥐어서 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 만져서도 안되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코지마’ 박경재 셰프는 빠르게 여러 번 매만지는 반면 ‘스시조’ 한석원 셰프는 투박하게 한두번 쥐는 걸로 끝낸다. 사진은 박 셰프의 손. 김경록 기자


도쿄 긴자에 있는 미슐랭 3스타 스시야(すしや, 스시전문점)인 ‘스키야바시 지로’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91·小野二郞)는 스시를 “밥과 생선, 단 두 가지가 만나 완성되는 단순함의 미학”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스시 특유의 절제미, 그리고 초밥 쥐는 손을 보호하려고 사시사철 외출할 때면 장갑을 낄 정도로 지독한 스시 셰프들의 장인 정신 덕분인지 일본 초밥은 일인당 수십 만원을 주고 먹어도 아깝지 않은 세계적 음식 반열에 올라섰다.

한국에서도 스시는 일본에서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나 서울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케’의 저녁 오마카세(お任せ, 요리사가 알아서 내주는 메뉴) 코스는 22만원. 가장 싸게 먹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스시조에서 가장 비싼 코스는 30만원으로, 국내 호텔의 스시 코스 가운데 제일 비싸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비싼 스시집은 아니다. 청담동 분더샵 6층에 있는 스시야 ‘코지마’의 저녁 오마카세 쿄스는 이보다 5만원이 더 비싼 35만원이다.

값만 비싼 게 아니라 맛도 웬만한 일본의 스시야에 뒤지지 않는다. 이렇게 한국에서 일본 못지않은 스시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아리아케와 스시조 역할이 컸다. 아리아케는 1979년 문을 열 당시엔 삿포로 ‘스시젠’과 제휴해 대중적 스타일의 스시를 선보였다. 이후 2003년 일본 3대 스시야로 꼽히는 긴자 ‘기요다’에서 모리타 셰프를 영입하며 고급 스시 시대를 열었다.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에도 등장했던 청담동 ‘스시효’의 안효주 셰프와 청담동 ‘코지마’의 박경재 셰프, 신사동 ‘스시선수’의 최지훈 셰프 등 도산공원 일대 고급 스시집 셰프 중엔 아리아케 출신이 많다. 스시조는 아리아케보다 조금 늦은 1985년 문을 열었다. 고급화 공식도 아리아케를 뒤따랐다. 아리아케가 기요다의 모리타 셰프를 불러들였듯이 스시조는 긴자 ‘큐베이’ 마츠모토 셰프를 영입했다. 그는 2008년부터 2013년 독립하기 전까지 5년 간 스시조를 이끌면서 스시조를 단숨에 정상급 스시야로 올려놓았다. 신사동 ‘스시인’의 이진욱 셰프 등이 스시조 출신이다. 이처럼 아리아케와 스시조는 일본의 기요다와 큐베이처럼 명문 일식당의 두 계보의 꼭대기에 있다. 서울의 스시야는 모두 가봤다는 스시 미식가인 임철근 변호사(화우)는 “아리아케가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맛을 추구한다면 스시조는 대범하고 화려하다”고 말한다. 분위기도 딱 스시같다. 아리아케는 차분하고, 스시조는 활기차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계보 중에 정답은 없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상현씨는 “스시는 셰프가 보낸 수십 년의 시간, 셰프가 서 있는 공간까지 음식으로 치는 공감각적 장르”라며 “우열을 논하는 건 의미없다”고 말한다.

큐베이와 기요다 스시를 계승하는 라이벌이자 호텔 안과 밖으로 가장 비싼 두 스시야인’스시조’와 ‘코지마’, 과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직접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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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최고급 재료···단순함의 극치
| 기본에 충실한 ‘기요다’ 철학 묻어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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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 박경재
1996~1998년 일본 식당 , 1999~2011년 신라호텔 ‘아리아케’, 2004년 도쿄 ‘기요다’ 3개월 연수, 일본 공인 사케 소믈리에 수료, 2011~2014년 청담동 ‘스시초희’ , 2014년~현재 청담동 ‘코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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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 8명 앉을 수 있는 카운터와 룸 3개가 전부, 메뉴도 오마카세 코스(저녁 35만원) 딱 하나인 코지마에는 박경재 셰프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박 셰프가 2004년 3개월간 도쿄 기요다 연수를 하며 배운 가르침이다. 그는 “스시는 단순히 눈앞에 집어 든 한 점의 초밥이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는 공간까지 내포한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시간이 깃든 인테리어, 손님에게 내주는 기물, 수십 년간 스시를 만들고 바를 지키는 셰프의 카리스마, 스시 한 알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행착오에 소요된 시간 등 손님이 식당에 들어서서 온 몸으로 느끼는 요소 하나하나를 맛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지마는 셰프와 손님 사이에 최대한 말과 표현을 자제하고 집중해서 고요하게 스시 즐기기를 유도한다. 카운터 자리에 앉아 있으면 함께 동석한 이에게도 속삭이듯 말을 걸고, 분위기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대화하는 게 보인다. 박 셰프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는 셰프도, 셰프가 내주는 음식을 먹는 손님도, 스시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차분한 분위기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고객의 사진촬영을 금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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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고 차분한 코지마 스시 카운터. 일본에서 공수한 500년 된 히노키(편백나무) 바 위에 초밥을 그대로 얹어준다. 히노키 바 위에 얹어진 스시는 보라성게 스시.


스시도 분위기만큼 단순하다. 이 역시 기요다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기요다 연수 시절 그는 매일 새벽 5~8시 생선 가게, 참치 가게, 장어 가게로 출근했다. 8시쯤 시장에 나온 기요다의 기무라 셰프와 만나 같이 식자재를 사서 식당으로 돌아가 그날 일을 시작했다. 박 셰프는 이때 경험을 통해 생선 보는 안목을 길렀다. 그는 “기요다는 가장 좋은 재료만 쓴다는 철학을 가진 곳이었기에 가짓수를 맞추기 위해 적당한 재료로 타협하지 않았다”며 “같은 오마카세라도 어제 내는 가짓수와 오늘 내는 가짓수가 달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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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스시를 두고 “심심할 만큼 단순하다”고 말했다. 재료에 충실하면 변주가 필요 없다는 얘기다. 코지마의 명성에 비해 박 셰프가 추천하는 스시 리스트도 놀라울 만큼 평범하다. 다들 이맘때쯤이면 내는 전복·연어알·꽁치·전어 스시를 그도 낸다. 특히 사시사철 나오는 참치를 코지마의 간판으로 꼽는다. 박 셰프는 “90점까지는 누구나 하지만 나머지 10점은 재료와 셰프의 태도로 채워지는 것”이라며 “90점에서 1점이라도 점수를 더 높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한번 밥을 쥐면 무게를 재지 않아도 대략 80g 정도가 잡힌다. 오랫동안 스시를 만들다 보니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하는 기술이 됐다. 이 곳 스시 코스는 강약이 있다. 스시조 등 대부분의 스시집에선 흰 생선, 붉은 생선, 등푸른 생선, 성게알·연어알 순서대로 내는 게 기본이지만 코지마는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생선을 내서 변주를 준다. 간장은 두 개의 종지 가운데 셰프가 스시 종류에 따라 비율을 조절해서 직접 발라준다. 맛이 진한 간장은 장어에 쓰고, 나머지는 그보다 엷은 간장을 쓴다. 이렇게 완성한 스시는 접시가 아니라 박 셰프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500년 된 편백나무로 만든 히노키 스시 바 위에 그대로 올려준다. 히노키 바를 갖춘 곳은 많지만, 바에 스시를 바로 올리는 곳은 일본에서도 기요다 말고는 ·거의 없다. 생선 기름이 스며 들어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 셰프는 하루 두 번 도마를 직접 닦는 수고를 하면서도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편백나무의 은은한 향이 스시에 배어들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금쌀에 트러플까지···화려한 변주
| 9명의 셰프가 내놓는 현란한 ‘큐베이’식 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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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조 한석원
1989년 패션 공부하러 도쿄 유학, 1993~1994년 오다 조리사 전문학교 수료,1994년~현재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스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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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조는 10명까지 앉을 수 있는 카운터와 룸 8개를 포함해 100여 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꽤 큰 공간이다. 1994년 조선호텔에 입사해 20여 년 동안 스시를 만든 한석원 주방장 외에도 셰프 8명(총 셰프수는 19명)이 같이 스시를 만든다. 어느 셰프가 스시를 만들든 화려한 ‘큐베이’를 이어가는만큼 현란하고 과감하다. 한 셰프는 “스시가 일본 음식이긴 하지만 스시조는 전세계 손님이 찾는 글로벌 레스토랑인만큼 특정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한다”며 “장르를 넘나드는 변주를 하면서 스시를 재해석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시 재료 외에 캐비어·트러플을 올릴 때도 있고 치즈와 된장을 섞은 소스를 내기도 하는 건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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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조도 코지마처럼 일본에서 들여온 350년 된 히노키 바가 특징적이다. 하지만 바 위에 바로 스시를 얹는 게 아니라 접시에 낸다. 왼쪽 접시 위는 자연산 전복.


스시조 카운터에 앉으면 늘 유쾌하기 그지 없는데, 이것도 스시조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한 셰프는 “우리끼리는 긴자의 미슐랭 3스타 ‘스키야바시 지로’를 두고 초상집처럼 엄숙하다고 농담을 한다”며 “스시조는 정반대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스시는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이에요. 그 오감에는 같이 온 사람, 앞에서 스시를 만들어주는 셰프와의 교감도 포함되어 있지요.”

2011년 원전 폭발 전엔 쌀과 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일본에서 공수했다. 하지만 이제는 영광(도미), 여수(하모·여름 장어) 등에서 최고 재료를 구해온다. 이렇게 공수한 생선은 초절임을 하거나 숙성을 통해 맛을 들인다. 특히 식촛물이 은은히 배어든 학꽁치·전갱이·고등어·꽁치 스시는 한주방장의 20년 노하우가 녹아 든 비법의 결정체다.

샤리(촛물 먹인 스시용 밥)는 설탕을 전혀 넣지 않은 식초와 소금만 넣어 간을 하는데, 쌀은 두 가지 품종을 섞어 식감을 조절한다. 밥을 짓고 나서 30~40분 기다리면 촛물이 밥알 골고루 배어들며 스시 만들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여기에 짓눌러지지 않고 밥알 사이에 공기층이 살아 숨쉬는 지가 관건이다. 스시조에서는 올해부터 계약재배한 금쌀로 밥을 짓는다. 나노 단위로 분쇄한 금을 물에 타서 7·8월 두 차례에 걸쳐 분사하는 재배법으로 지은 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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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나 룸에서 스시를 먹을 때는 양조간장에 다시마와 정종을 배합한 간장을 셰프가 직접 발라준다. 생선에 따라 미묘하게 간장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웬만한 미식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시미(회)만 먹을 때는 깔끔한 맛이 나다가도 밥과 만나는 순간 미묘하게 비릿한 풍미가 올라올 수 있는데 그때 잡맛을 잡아주는 게 녹차를 권한다. 스시 하나를 먹고 녹차로 입을 헹구면 다음 스시를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 스시조 카운터는 8m 길이의 히노키 스시 바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 장인이 350년 된 편백나무를 15년간 자연 건조시켜 만든 것이다. 일본 각지에서 공수해온 접시·젓가락 등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식탁을 만들어낸다.

스시조는 호텔 레스토랑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이벤트로도 주목을 받는다. ‘큐베이’등의 게스트 셰프를 초청한 갈라 디너 행사는 물론 때론 평상시엔 라이브 스시를 한다. 카운터가 아니라 룸에서 스시를 만들어주는 재밌는 컨셉트로, 셰프 한 명이 전담으로 오마카세를 내준다. 한 셰프는 “로드샵 업장에서는 스타셰프 한 명이 지휘하지만, 호텔에서는 주방장급에 준하는 전문 인력 배치가 자유로워 이런 이벤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글=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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