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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장맛비보다 소나기가 낫다

중앙일보 2016.09.27 20:36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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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대기자

국회가 엉망이 됐다. 야당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새누리당은 국회 일정을 거부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단식농성 중이다. 국정감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
임기 중 모두 털고 가야
좋은 취지로 시작한 사업을
측근과 불투명한 처리로 잡음
청와대 언행은 증폭 전달돼
조심 않으면 오해 불러와


 20일밖에 안 되는 올해 국정감사는 물 건너갔다. 국정감사를 기다리던 이슈들도 파묻혀 버렸다. 우병우 민정수석,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이렇게 해서 그 이슈들이 사라지는 걸까. 사실 정치 공방이 되면 진실은 가려진다. 옳고 그른 게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임기 말 현상을 늦출 수는 있지만 임기를 연장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사실관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특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소문과 일부 언론 보도는 내용이 고약하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해명에 나섰지만 충분하지 않다.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면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이 적어도 필자에겐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대통령과 가까운 최순실씨가 청와대 비서실 협조를 얻어 모금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한류(韓流)의 혜택을 보는 것이 사실이다. 한류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가지고, 한국 기업과 상품에 대해서도 친근감을 느낀다. 최근 필자가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현지 공관에서 많은 사례를 들었다. 여자 프로 골프나 배드민턴, 축구처럼 스포츠가 호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화장품처럼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고, 보이지 않게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등 기업이나 상품이 다른 기업과 문화에 대한 평가를 높여주는 경우도 있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은 이명박 정부 때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아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에 한국이란 브랜드를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류 기업의 이미지를 국가 이미지로 가져오고, 다른 부문까지 끼워가자는 전략이었다.

 어쨌거나 K팝·한류·스포츠 등을 확산해 국가 브랜드를 높이겠다는 생각은 핵심을 짚은 것이다. 사업의 방향은 공감이 간다. 혜택을 본 만큼 기업들이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 국가적 사업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맡게 됐을까. 그리고 좋은 일을 하는데, 왜 갖가지 의혹을 받게 됐을까.

 문화융성은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문화융성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할 일이 있고, 민간기구가 할 일이 따로 있다. 누군가 이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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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절차다. 공개적이고, 투명했어야 한다. 이제까지 해명을 들어보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기조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보조기구다. 그렇다면 그것을 굳이 몰래, 불투명한 절차를 거쳐 만들 이유가 뭔가.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맞춰 급하게 할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회의록마저 조작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전경련에서 재편하겠다고 나섰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다고 이전의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 한 가지는 측근의 개입이다. 측근이란 주군과 공감대가 넓은 사람이다. 주군의 마음을 잘 알고, 무엇을 안타까워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안다. 대통령도 인간적으로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화 상대로 족하다. 자칫하면 공사(公私)에 혼선이 생기고 잡음의 원인이 된다. 역대 정부에서 동티가 난 것도 항상 사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동생들의 청와대 출입을 막고, 사랑하는 조카를 보는 것마저 자제할 정도로 철저히 주변을 관리해왔다. 억울할 만도 하다.

 걱정은 ‘말’이다. 미르뿐 아니다. 기업인들이 전하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은 거칠기 짝이 없다. 물론 기업인들은 손해 볼 일은 절대 안 하려 한다. 국정의 중심에서 조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렇지만 잘해보려고 노력해온 성과를 말로 망치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이 유신시대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게 해서는 곤란하다.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 측근이라는 분의 무리한 민원을 고압적으로 전달하면 뒷말이 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베일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돋보기에 노출돼 있다.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확대돼 전달된다. 청와대 고위 관리가 짜증을 내면 기업인에게는 협박으로 들린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 아들을 모두 임기 중에 처벌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임기 중에 정리하는 것이 억울한 일을 줄일 수 있다. 추적추적 장맛비를 맞는 것보다 소나기를 한 번 맞는 게 훨씬 낫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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