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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합의 찬성 피해자도 존중돼야…日 돈 받는게 나쁘단 생각 안돼"

중앙일보 2016.09.27 12:02
“한·일 간 12·28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더 부각되는데, 앞으로 나서진 않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한을 풀고 싶어하시는 피해자 분들의 의사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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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외교부]

23년 동안 해외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귀국을 도와온 김원동(71)씨는 26일 “합의가 무효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의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합의에 찬성하지만 그에 가려진 다른 많은 분들의 인권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23년 간 해외 거주 위안부 피해자 지원한 김원동씨
“아시아여성기금 받은 할머니들 매도당해…이젠 안돼”

무역업에 종사했던 김씨는 1993년 사업차 중국 난징(南京)에 갔다가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정학수 할머니를 만났다. 열네 살이었던 39년 위안부로 끌려갔던 정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된 뒤 귀국운동을 펼쳤고, 정 할머니는 96년 해외에 거주하던 피해자로선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로도 김씨는 피해자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한국 정부로부터 할머니 13명의 영구 귀국 허가를 받아냈다.

김씨를 만난 곳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가 진행된 날이었다. 김씨는 새누리당 측 참고인으로 국감에 출석했다. 하지만 국감 파행으로 여당 위원들이 불참하고 야당 위원만 질의를 하면서 제대로 된 발언 기회도 얻지 못했다. 2시간12분 동안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 중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3분이 채 안됐다.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도 “피해 할머니들을 가까이서 뵈어온 제 견해를 국감장에서 밝히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12·28 합의에서 일본 정부가 관여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 것은 사죄로 봐야 한다. 일본의 총리가 피해 할머니들 앞에서 무릎 꿇기를 원하는 것은 감정에 따른 요구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모셔온 할머니들은 두분 말고는 다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이런 합의가 나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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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외교부]

12·28합의에서 일본 측은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거주하다 낙상 사고로 위중한 상태에 빠져 올 4월 한국으로 긴급이송된 하상숙(88) 할머니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김씨는 전했다. 하 할머니는 17살때인 44년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다 종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중국 귀화를 거부하고 무국적자로 생활하다 93년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이 과정을 김씨가 도왔다.

김씨는 “하 할머니는 정부가 일본과 합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우리 자손들에게 이런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 할머니는 지난 13일 추석을 맞아 문병을 온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난 먹었는데, 장관은 밥이나 먹고 일하오?”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김씨는 12·28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사장 김태현)에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출연한 10억엔(약 108억원)을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지원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95년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민간이 주도한 아시아평화여성기금을 통해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는 정대협과 함께 받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다. 차이를 물었다.

“당시엔 일본 정부가 민간 뒤에 숨는 꾀를 부렸다. 할머니들을 돈으로 매수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2·28 합의에 따라 지원되는 돈은 받을 명분이 있다. 배상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김씨는 “아시아평화여성기금 때 수령한 할머니도 60여분 됐는데, 돈을 받자마자 배신을 한 것처럼 매도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도 받고 싶었는데 눈치를 보느라 못받은 분들도 계시다”며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할머니들이 ‘이 돈 받으면 나쁜 사람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과거 국가가 나약해서 할머니들이 붙잡혀갈 때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나라가 힘이 생겨서 일본의 사과를 받았으니 이렇게 해서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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