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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이후 공무원 약속 취소, 부킹 20% 줄어든 골프장도

중앙일보 2016.09.27 01:55 종합 5면 지면보기
‘말문이 막히고 손발이 묶이다’.

기업들 “시범케이스 걸릴라” 긴장
홍보 담당들 손발 묶여 초비상
‘김영란법 식당’리스트 만들어

28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국내 기업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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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힐’ 우려는 주로 기업의 대관·홍보 담당들이 쏟아냈다. 국내 한 대기업 대관 담당 임원은 “시범 케이스에 걸릴 것을 우려해 28일 이후 공무원과의 식사 약속은 거의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각자 식사비용을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초반에 시범 케이스로 걸려 그걸 해명하느니 차라리 당분간은 아예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한 정부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인들을 만나야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지금 분위기에선 그러기 쉽지 않다”며 “상당수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옮긴 뒤 공무원 조직이 섬이 돼 가고 있는 그런 경향이 심화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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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묶였다’는 불만은 마케팅 쪽에서 많이 나왔다. 해외 사업이 많은 정보기술(IT) 업계는 마케팅 제약이 제품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에서 5년간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한 국내 한 IT 기업 임원은 “외국에서는 광고비뿐 아니라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와 공공 관련 로비자금 등을 모두 마케팅비로 책정해 제약 없이 사용한다”며 “그 비용을 판매비용에 포함시켜 산정하는 것이 공식화됐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3년 삼성은 글로벌 시장에서 마케팅비로 11조원을 지출했다. 애플은 최근 자국 내 언론으로부터 “혁신 없이 마케팅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실탄’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는 관공서를 대상으로 한 시연 사업이나 로비·홍보활동 등이 포함된다. 첨단 IT 제품의 마케팅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IT 업계 한 임원은 “국내 업체가 개발한 보안 프로그램이 최근 미국 육군에 채택됐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시연회를 열고 참석자들에게 식사와 음료 등을 제공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미국엔 이를 일일이 제재하는 법률이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업계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신차 출시행사나 시승 차량 운영도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 신차 출시행사는 자동차업체가 가장 공을 들이는 이벤트다. 이런 행사엔 국내외 전문가와 언론이 초대된다. 식사와 선물은 차치하고 차량 대여비와 유류비만 따져도 비용이 1인당 5만원을 쉽게 넘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자국 기자나 전문가 초청에 제약을 받고 외국의 경쟁사는 자유롭게 시승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은 마케팅 역차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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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일이 다가오면서 일부 시장에선 내수 위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협과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4개 대형마트에서 추석 28일 전부터 추석 다음 날까지 29일간 선물세트 판매금액을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 명절 전후 한우 선물세트 판매액은 지난해보다 19.2% 급감했다. 반면 비교적 저렴한 과일세트 매출은 1.6% 늘었다.

경조사 비용이 ‘화환 가격을 합쳐 10만원’으로 확정되면서 화훼농가는 직격탄을 맞기 시작했다. 한국화원협회에 따르면 이달 화훼업계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0% 급감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성철(가명·35)씨는 “궂은일에 현금도 아니고 꽃을 보내 주는 미풍양속까지 청탁이라며 법으로 다루는 건 난센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골프장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우려대로 부킹은 줄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회원제 골프장은 다음달 주말 부킹이 이달보다 20% 감소했다. 골프장 관계자는 “10월은 성수기인데 아직까지 실적이 좋지 않다”며 “퍼블릭 전환도 고심해 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김영란법 식당’ 개발에 나섰다. 롯데마트 등 일부 대기업은 한 달 전부터 1인당 2만5000원 선에서 식사할 수 있는 음식점 40여 곳의 명단을 만들어 뒀다. 대개 한식이다. 이마트도 명절이나 때때로 전하던 선물 품목을 고심하고 있다. 5만원에 맞춰 가성비 좋은 상품을 고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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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조현숙·김기환·유부혁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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