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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역 딱이래요”…데뷔 9년 만에 빛봤다

중앙일보 2016.09.27 01:06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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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700만 명 고지를 눈앞에 둔 ‘밀정’(김지운 감독).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를 꼽는다면,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으로 출연한 배우 엄태구(33·사진)가 아닐까.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과 함께 의열단을 쫓는 그는 대배우 송강호와의 기(氣)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와 예리한 눈빛. 데뷔 9년만에 비로소 관객들에게 제 이름을 각인시켰다. ‘밀정’이 엄태구를 ‘발굴’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영화 ‘밀정’하시모토역 엄태구
따귀 때리는 ‘악마 연기’로 화제
송강호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 보여

요즘 자신에게 쏟아지는 반응에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는 그는 “외모가 일본 경찰 역에 딱”이라는 말까지 온통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밀정’ 오디션 날에는 긴장감 때문에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어요. 다행히 감독님 앞에서는 딸꾹질이 멈췄는데, 온통 떨었던 기억밖에 없죠. 오디션에선 하시모토뿐 아니라 여러 역할을 했는데, 가장 탐났던 캐릭터는 역시 하시모토였죠.” 하시모토 역을 맡은 기쁨도 잠시, “갑자기 무섭고, 두렵고, 부담되기 시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시나리오에서 하시모토는 일본으로 귀화한 조선인이다. 경무국장 히가시(츠루미 신고)의 지시로 작전에 함께 투입된 이정출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옥죈다. ‘하시모토는 왜 의열단 잡는 일에 모든 것을 걸까?’ 그가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며 가장 많이 되물었던 질문이다. 그는 “편집된 장면 중에 ‘어려서 일본으로 귀화해 조선에 대한 기억이 없고, 아버지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는 대사가 있었다. 이를 떠올리며 하시모토의 전사(前事)를 상상했다. 하시모토는 의열단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처받은 인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화제가 된 부하 우마에(정도원)의 따귀를 수 차례 때리는 장면에선 정말 ‘악마’ 같아 보였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정도원 선배님에게 죄송했어요. 때리는 연기가 정말 힘들어요. 차라리 맞는 게 마음이 편하죠.”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였다는 평가에 대해선 “만약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모두 송 선배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까마득한 후배가 긴장하지 않게 격려해주시며 제가 어떻게 연기하든 다 받아주셨어요. 선배님의 연기엔 진심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어 신기했죠. 하시모토의 눈으로 이정출을 바라봐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게 돼 당황한 적도 많았어요.”(웃음)

건국대 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2007년 ‘기담’의 ‘일본군 1’ 역을 맡아 상업 영화에 데뷔했다. 이후 ‘악마를 보았다’ ‘잉투기’ ‘차이나타운’ ‘베테랑’ 등에 출연했다. ‘잉투기’와 11월 개봉 예정인 강동원 주연 영화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이 친형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연기하는 게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행복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엄태구는 ‘가려진 시간’과 ‘택시운전사’(하반기 개봉 예정, 장훈 감독)에도 짧게 등장한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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