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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쏠려도 너무 쏠린다

중앙일보 2016.09.27 00:37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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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사회1부 기자

‘서울 내에선 지원할 곳이 없구나. 지방대학으로 눈길을 돌리거나 재수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서울 강남구의 한 일반고 진학부장 A씨는 최근 한 3학년 학생의 수시모집 상담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상담 학생은 1학년 때 전교 30등 안에 들 정도로 우수했고, 인문학 책을 좋아하던 학생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학부모는 아이가 2학년에 올라가기 전 강하게 이과를 원했다.

문과 성향이 강했던 학생은 이과에 올라간 뒤 수학·과학을 힘들어했고 성적은 추락했다. 엄마는 “내년에 인문계로 바꿔 재수를 시켜보려고 해요. 그때 선생님 조언을 들을 걸 그랬어요”라며 후회한다고 했다. A교사는 “이과가 대학 가기 좋다니까 문과 성향인 데도 이과로 무조건 가려 한다. 요즘 부쩍 이런 후회를 하는 학생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란 말은 문과여서 대학 가기 힘들고, 취직도 잘 안 된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과 쏠림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본인 적성이 이과에 맞고, 목표하는 학과와 직업이 이공계라면 문제 될 게 있을까. 하지만 적성이나 성향과 관계 없이 그냥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건 분명 문제다. 서울 강남구 B고 교감은 “전교 20등 내에서 18명이 이과로 가는데 모두 의대를 목표한다. 그리고 전교 100등 내 학생들은 최상위권이 의대로 빠지면서 만들어진 틈새를 뚫고 이공계 학과로 간다”고 말했다. 고교 교사들 역시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학벌 중시 사회가 만들어낸 촌극”이라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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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여기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하버드생 268명을 1937년부터 72년에 걸쳐 추적 연구했다. ‘행복한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연구다. 추적 연구를 시작하고 10년이 지난 후 하버드대 졸업생 286명 중 20명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호소했고, 50세가 됐을 무렵엔 약 3분의 1이 정신질환을 앓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고통에 적응하는 자세, 교육, 배우자와의 관계,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 등 7가지를 꼽았다. 좋은 대학, 학벌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 건 분명하다.

2018학년도부터 고교에 문·이과 통합교육 과정이 도입되면 지금과 같은 문·이과 구분은 불필요해질지 모른다. 그래도 사회·과학탐구 등 과목에 따른 문·이과 구분은 여전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교사는 “교과서만 통합할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진로 교육을 체계적으로 다듬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현 진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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