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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75%이상 갚은 채무자 사고·질병 땐 상환 면제

중앙일보 2016.09.27 00:03 경제 3면 지면보기
김모(53·여)씨는 요즘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2억원의 채무를 갚을 수 없어 5년 전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그는 1억원을 감면받고 나머지 1억원을 7년에 걸쳐 갚기로 약속했다. 이후 열심히 일해 총 7500만원을 갚은 김씨는 조금만 더 고생하면 채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만 건강이 악화해 지난 8월부터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김씨는 “다행히 신복위에서 2년간의 상환유예 조치를 해줬지만 2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성실 상환자 연 8% 적금 혜택도
“대상자 잘못 고르면 도덕적 해이”

김씨와 같은 ‘성실 상환자’에게 정부가 추가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금융발전심의회 확대회의를 열고 ‘서민·취약계층 채무부담 경감을 위한 채무조정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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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김씨처럼 국민행복기금이나 신복위와 채무조정 약정을 맺고 채무조정액의 75% 이상을 갚은 채무자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추가 상환이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경우 잔여 채무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성실 상환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환 기간도 12개월에서 9개월로 줄어든다. 성실 상환자로 지정되면 미소금융의 자영업자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약정액의 60% 이상을 갚은 성실상환자는 연 8%의 높은 이자를 받는 ‘미소드림적금’에도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성실 상환자에게 제한적으로 발급돼 온 소액 신용카드의 한도도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난다.

사실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국민행복기금은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미약정 일반 채무자에게 적용하던 원금 감면율을 현재의 30~60%에서 최대 90%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그동안에는 기초수급자와 중증장애인, 70세 이상 고령층에게만 90% 감면율이 적용됐다.

국민행복기금 채무자 중 약정을 맺지 않은 채 빚을 갚지 않고 있는 사람은 약 120만명이다. 우선 이 중에서 연체기간이 15년 이상인 장기 채무자 약 10만명에 대해 원금 90% 감면의 기회를 준다. 최준우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자포자기한 연체자들이 원금의 10%라도 갚도록 의지를 높여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휴대폰 할부 구입도 쉬워진다. 금융사 연체 채무가 있는 채무자 중 기초수급자 등 일부 취약층에 한해 서울보증보험이 휴대폰 개통에 필요한 보증서 발급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보증서가 있어야 휴대폰 할부 구매가 가능해진다. 금융위는 늦어도 내년 1분기 중에 이 개선안들을 시행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도 ‘도덕적 해이’ 논란은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채권자가 채무자 정보를 100%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재활 가능한 채무자나, 지원해줘도 재기가 불가능한 사람을 불필요하게 지원해주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세금으로 저소득층의 빚을 갚아주는 것이라 대상자를 잘 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진석·김경진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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