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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 사회로 가는 유럽…잇따라 정보수집 강화

중앙일보 2016.09.26 17:20
테러 우려는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의 정보법도 바꿔놓았다. 스위스는 25일(현지시간) 국민투표를 통해 정보·수사기관이 전화를 감청하거나 e메일을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추인했다. 유권자의 43%가 투표했고 그 중 65.5%가 법안을 지지했다. 기 파르멜렝 스위스 국방장관은 "스위스는 지하실을 벗어나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무대로 올라오게 됐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선 30년 가까이 어떤 경우에도 전화를 엿듣거나 e메일을 엿볼 수 없었다. 냉전이 끝나갈 무렵인 1989년 스위스 정보당국이 90만 명에 이르는 자국민의 정당 지지 성향, 노조 가입 상황 등 관련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감청과 e메일 열람이 불법화됐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으로선 오랜 '족쇄'가 풀리는 셈이다.

법안 자체는 지난해 의회에서 통과됐었다. 하지만 사생활을 감시 당할 수 있다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빅 브라더' 논란이다. 10만 명 이상이 서명으로 이에 동의했고 결국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스위스 정부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했던 광범위한 개인 정보 수집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감시를 위해선 법원뿐 아니라 국방부·내각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삼중 장치'도 걸었다. 스위스 정부는 "테러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만 감시를 허용하겠다. 연간 집행 건수가 10여 차례 정도일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폐쇄회로(CC)TV가 드물고 구글의 3차원 거리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곳이 많을 정도로 스위스인들의 사생활 보호 의지는 강하다. 그러나 이번 법안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스위스인들이 얼마나 테러 공격을 우려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 테러를 겪은 국가들은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프랑스에선 헌법재판소까지 간 곡절 끝에 테러 의심 행위에 대한 대대적 정보 수집을 합법화한 '감시법안'이 발효됐다. 영국은 정보기관이 개인들의 대화와 다른 개인 정보를 '대규모 수집(bulk collection)'할 수 있도록 한 데 이어 수사기관의 수사권 강화를 논의하고 있다.

한편 이날 스위스 국민투표에선 은퇴 후 받는 연금을 10% 올리자는 이른바 ‘국가연금(AHV) 플러스’ 법안이 59.4%의 반대로 부결됐다. 다수의 유권자가 막대한 추가 재원이 필요하며 이는 곧 세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정부 등의 반대 설명에 동조한 것이다. 스위스는 올 6월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법도 부결시켰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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