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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채무 75% 이상 갚은 추가상환 곤란자, 잔여 채무 면제

중앙일보 2016.09.26 13:55
김모(53·여)씨는 요즘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2억원의 채무를 갚을 수 없어 5년 전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그는 1억원을 감면받고 나머지 1억원을 7년에 걸쳐 갚기로 약속했다. 이후 열심히 일해 총 7500만원을 갚은 김씨는 조금만 더 고생하면 채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만 건강이 악화해 지난 8월부터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김씨는 “다행히 신복위에서 2년간의 상환유예 조치를 해줬지만 2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성실상환자’에게 정부가 추가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임종룡 위원장 주재로 금융발전심의회 확대회의를 열고 ‘서민ㆍ취약계층 채무부담 경감을 위한 채무조정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골자는 성실상환자와 추가 상환 불가능자에 대한 지원 확대다. 임 위원장은 “그동안 성실하게 상환하는 서민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해 상환을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성실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조정 지원을 내실화하기 위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김씨처럼 국민행복기금이나 신복위와 채무조정 약정을 맺고 채무조정액의 75% 이상을 갚은 채무자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추가 상환이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경우 잔여 채무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성실상환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환 기간도 12개월에서 9개월로 줄어든다. 성실상환자로 지정되면 미소금융의 자영업자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약정액의 60% 이상을 갚은 성실상환자는 연 8%의 높은 이자를 받는 ‘미소드림적금’에도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성실상환자에게 제한적으로 발급돼 온 소액 신용카드의 한도도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난다.

사실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국민행복기금은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일반 채무자에게 적용하던 원금 감면율을 현재의 30~60%에서 최대 90%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그 동안에는 기초수급자와 중증장애인, 70세 이상 고령층에게만 90% 감면율이 적용됐다.

정부는 일단 연체기간 15년 이상인 장기 채무자에게만 제도를 적용한 뒤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신복위 채무조정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일반채권의 경우에도 기초수급자·중증장애인에 한해 30%까지 원금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패자부활’ 기회도 확대한다. 신복위 채무조정 도중 연체가 발생해 중도탈락할 경우 한 차례에 한해 분할상환금 1회분을 납입하면 약정이 재개될 수 있도록 했다. 휴대폰 할부 구입도 쉬워진다. 금융사 연체 채무가 있는 채무자 중 기초수급자 등 일부 취약층에 한해 서울보증보험이 휴대폰 개통에 필요한 보증서 발급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보증서가 있어야 휴대폰 할부 구매가 가능해진다. 금융위는 늦어도 내년 1분기 중에 이 개선안들을 시행하기로 했다. 수혜자는 연간 최대 23만3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이번에도 ‘도적적 해이’ 논란은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채권자가 채무자 정보를 100%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칫 스스로 재활 가능한 채무자나, 지원해줘도 재기가 불가능한 사람을 불필요하게 지원해주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세금으로 저소득층의 빚을 갚아주는 것이라 대상자를 잘 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주식 금융위 서민금융과장은 “행복기금과 신복위의 채무조정위원회 등에서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본 뒤 수혜자를 선별하기 때문에 이번 개선안이 도적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내년 상반기 중 신용정보법을 개정해 불법 추심행위가 발생할 경우 채권 추심회사는 물론, 금융사와 대부업자도 처벌하기로 했다. 지금은 금융사에 대한 불법 추심행위 처벌 규정이 없다. 금융위는 2014년 말 폐지된 채권추심 업무 가이드라인도 부활시키기로 했다. 또 ‘채권자 변동 조회시스템’을 도입해 채무자들이 신용정보원 등을 통해 본인의 빚이 어느 곳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추심 권한이 없는 금융사나 기관의 불법 채권추심 등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박진석·김경진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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