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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취직 잘 되고 대입 유리 “전교 100등 중 87명이 이과”

중앙일보 2016.09.26 02:30 종합 2면 지면보기
100명 중 87명. 서울 강남구 소재 A고교에서 1학년 전교 100등 안에 든 학생 중 이과를 선택한 숫자다. 남자 고교인 이 학교는 이달 초 문과 또는 이과로 갈지 희망조사를 했다. 문과 희망자는 고작 13명. 전교 20등 이내 학생으로 범위를 좁혀 보니 단 두 명만 문과를 원했다. 이 학교 교감은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5년 전만 해도 전교 100등 내에서 30명은 문과로 갔는데 이제는 열에 아홉은 이과로 가려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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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선호가 높은 여고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강남구 소재 B여고의 경우 올해 1학년 전교 100등 내에서 30명이 문과를, 70명이 이과로 가겠다고 답했다. B여고 교감은 “이과를 희망하는 학생 중 20~30%는 적성과 맞지 않는데도 무조건 이과로 가겠다고 한다. 학생·학부모가 워낙 강하게 원해 좀 더 신중히 고민해 보라고 충고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교사는 “강남에선 ‘구구단만 할 줄 알면 이과로 보낸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고 꼬집었다.

이과 선택 학생 6년새 32% → 44%
의대 선발인원 늘어난 것도 영향
서울 소재 대학 정시지원 가능선
문과 수능 2.5등급, 이과는 3.5등급

고교에서 이과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일반고에 다니고 있는 2학년 최모군은 “경영·경제학과를 목표해도 우선 이과로 가는 분위기다. 이공계학과로 우선 합격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경영·경제학과를 복수전공하겠다는 친구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과 선호는 대학 진학에서 이과가 문과에 비해 더 수월하고 이공계 학과를 졸업해야 취업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오장원 서울 단대부고 진학부장은 “문과는 정시모집 기준으로 수능 평균 2.5등급을, 이과는 3.5등급을 서울 소재 대학 지원 가능 선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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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학 정원 확대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과 쏠림을 부추긴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의과대학으로 전환하면서 전국 38개 대학 의예과(학·석사 통합 포함) 선발 인원은 2015학년도 2299명에서 2019학년도에 2884명까지 불어난다. 신동원 휘문고 교장도 “최우수 학생은 죄다 의대를 가려 한다 ” 며 “현재 고1 학생이 고교를 졸업할 때도 대학 가기가 쉬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수능 응시생 중 이과 학생은 2011학년도 수능에서 31.9%(71만2227명 중 22만7264명)로 최저를 찍었다가 점점 상승해 올해 수능에선 44%(60만5988명 중 26만11명)까지 늘었다. 6년 사이 전체 응시생이 10만여 명 줄어도 이과 응시생은 3만2747명 증가했다.

이과 학생이 갈수록 많아지자 고교는 교사 수급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일반고 교사는 “학생들의 이과 선호를 반영해 무작정 이과 담당 교사를 늘리기도 쉽지 않다. 이과반이 문과반에 비해 학급당 3~4명씩 더 많아 수업을 끌고 가기가 벅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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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담당 교사들은 “무조건 이과 진학이 학생 입장에선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사교육업체인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최근 전국 고교생 3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 적성검사 결과 문과 성향이지만 대학 진학과 취업 때문에 이과를 선택했다는 응답은 20.4%(이과 진학 또는 희망자 201명 중 41명)였다. 김혜남 서울 문일고 교사는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교과(내신)뿐 아니라 동아리· 봉사활동 등 비교과를 두루 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 입시 제도다. 전국 대학이 평균적으로 총 선발 인원의 20%를 이 전형으로 선발하나 서울 상위권 대학의 선발 규모는 평균 40% 이상이다.

이과반에 성적 우수자가 몰리면 내신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내신 성적을 잘 받기 힘들어지는 문제도 있다. 오장원 진학부장은 “상위권이 다 이과로 가면서 문과에선 내신 따기가 오히려 쉬워진 측면이 있다. 문과 성향 학생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는 비교과 활동을 충실하게 잘해 낼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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