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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8. 딸기의 밤 (2)

중앙일보 2016.09.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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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소리는 공중을 떠돌다가 지하로 스며든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에서부터 생선 장수, 생선 사라고 외치는 소리까지 반지하는 도시의 소음을 흡수 처리할 사명을 띠고 그곳에 존재했다.
 
오후 나절이면 든든하게 간식을 챙겨 먹은 아이들이, 있는 힘껏 축구공을 텅텅 튀겼고 그 진동은 바닥에 깔린 반지하 창문을 통해 그녀의 신체로 흘러들었다. 공이 한 번 튕길 때마다 그녀의 심장도 덩달아 텅텅 울렸다. 차의 엔진소리 역시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소음이었다.

차체의 크기가 클수록 엔진소리도 심했다. 대형트럭이 시동을 거는 소리는 드릴로 귀를 파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소리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를 괴롭히는 것이 그나마 아이들의 공 차는 소리나 기계 소음이 전부였더라면 그래도 나았을 것이다. 조심성 없는 여자들의 말소리도 그녀의 창가로 고스란히 흘러들었다.
 
반지하에 사는 가장 큰 고통은 일조권의 박탈도, 먼지의 과다유입도, 공기유통의 어려움도, 습기도 아니었다. 여자들의 입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다세대 주택지는 원시시대의 부족공동체를 떠올리게 했다. 여자들은 마늘을 깐다, 나물을 다듬는다 하면서 틈만 나면 건물 출입구 앞에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앉았다. 멀리서 보면 이웃끼리 정담을 나누는 장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들이, 그들의 이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짓밟는 대학살의 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살인쇼의 무대가 하필 그녀의 창가 부근이라는 게 문제였다. 일자리를 구했다며 한 여자가 빠지면, 다른 여자가 들어와 그 자리를 채웠다. 일 나갔던 여자도 한 달이 못 돼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소설가인 그녀를 포함해서 돈 버는 일에 심각하게 매달리는 여자는 이 동네에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들고나면서 악의 어린 소문은 확대 재생산되었고 동네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사람 하나가 곤죽이 되도록 으깨지는 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도마에 오르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만 없다면 누구라도 좋았다. 당장 다음 날 얼굴을 마주치게 될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은 서슴없이 칼을 빼들었다.

매일 만원 씩 반찬값을 빌리러 다니는 골목 끝집 여자, 애가 말썽을 부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뒷집 여자, 쓰레기 처리를 잘 못하는 어떤 세입자, 새벽마다 샤워 물줄기 소리를 창밖으로 내보내는 건너 집 남자가 차례차례 먹잇감이 되었다. 그녀의 경우, 적어도 하루 한 번은 도마에 오르고 있었다. 그날도 여자들은 빙 둘러앉아 햇마늘인지를 품앗이로 까는 중이었다.
 
“마늘 한 번 잘 샀네.”
 
“이런 걸 어디서 샀대? 알이 실하네.”

 
이런 대화는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 워밍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가 잘났음 얼마나 잘났기에 사람을 무시해?”
 
게임 스타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 보지 않아도 목소리의 임자가 1층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무심히 책에 집중했겠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라 자신을 향한 험담에 의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잘났다는 건 뭐고 또 무시당했다는 건 또 뭔가. 그녀는 빨래 사건 외에 1층 여자와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말을 섞지 않는 일부터 1층 여자는 무시의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디 술집에 나가나? 옷을 입어도 꼭.”
 
그들에게는 별게 눈엣가시인 모양이었다. 옷이 야한 게 아니라 몸매가 잘 빠진 거라고. 트레이너가 ‘빌딩’해 준 ‘바디’를 너희 같은 모태 빈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겠니. 돈 생기면 배달음식 시켜 먹을 궁리만 하는 너희들이. 1층 여자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는 슬픔마저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 그들은 감상의 욕망으로부터 그녀를 끌어올렸다. 분노가 크면 잔잔한 슬픔 따위는 자리 잡을 곳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그녀를 멸시한 만큼 그녀도 마음속 깊이 상대를 멸시했다. 마르크스가 실패한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못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배운 사람이여. 여기 오기 전에는 큰 평수 아파트에 살았대. 일전에 들여다봤더니 벽 두 개가 전부 책이더라고. 매일 공부한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거 안 보여? 그래서 그런가, 말하는 것도 얼마나 교양 있는지 몰라.”
 
주인 여자였다. 집주인으로서 교양인을 세입자로 거느리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테지. 고마운 평가이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그녀는 몇 가지 사실을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자신이 몰락한 중산층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반지하 생활자는 ‘지하생활자’보다 불리한 삶을 사는 셈이었다. 통풍과 채광의 통로가 되어야 할 창이 사생활의 공개 창구가 되어버렸으니. 안타까운 것은 그런 주인여자의 두둔조차 그녀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주인 여자의 발언은 1층 여자를 도발시켰다.
 
“교양이 있으면 뭐 해? 이혼한 주제에.”
 
말 많기는 과부집 종년이라더니 1층 여자에게는 이혼이 참 대단한 문제인 모양이었다. 이혼은 선도 악도 아닌데 말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최선’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쌍둥네는 빨래 좀 잘 널어. 가뜩이나 지하로는 바람도 안 드는데 왜 남의 집 창문을 꽉 가로막고 그래? 저기 땅 많잖어.”
 
주인여자가 이번에는 제대로 나섰다. 1층 여자의 반발을 주인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인지도 몰랐다.
 
“그 자리가 볕이 잘 든다고요. 전에 살던 사람은 암말 안 했는데 왜 저 여자만 야단인지 몰라.”
 
반성이라고는 모르는 여자였다. 반성하지 않는 자에게 주위 사람은 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일 뿐이었다. 아무려나 주인 여자의 잔소리 덕분에 빨래 건조대의 위치가 1미터 옆으로 이동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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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그녀는 묘한 불쾌감에 절로 눈이 떠졌다. 나쁜 냄새가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 알고는 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냄새,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지는 냄새. 지린내였다. 열어둔 창으로 소변 지린내가 타넘어 오는 중이었다. 지나가던 개가 창에 대고 오줌이라도 눈 거야? 그녀의 눈앞으로 개 목줄을 잡은 무수한 개 주인들이 지나갔다. 자기 애견이 보도 한 가운데 용변을 보건 화단에 용변을 보건 남의 집 창턱에 보건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불특정 다수의 개와 개 주인에게만 혐의를 두었다.

“이봐요, 아저씨! 차 다른 데다 대요. 여기는 여기 사는 사람들 대는 자리에요.”
 
설핏 잠이 든 모양이었다. 간밤에 글 쓰느라 못 이룬 잠을 다 저녁이 되어 보충하고 있었던 것. 스트로베리 나이트 위로 거무스름한 침 얼룩이 져 있었다. 주인 여자가 열을 낸 이유는 갑자기 출현한 차 때문이었다. 이곳 집주인들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바로 주차 문제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다세대 주택지는 다 좋은데 주차공간이 부족한 게 흠이었다. 주택 하나에 일고여덟 가구가 들어가 사는 형편임에도 석 대의 주차공간만 확보하면 아무 소리 않고 당국에서 건축 승인을 내주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상대적으로 퇴근이 늦은 운전자들은 주차할 공간을 찾아 온 동네를 빙글빙글 돌아야 했고 주인집들은 주인 된 도리로서 자기 세입자들을 위한 주차 공간 확보에 열을 올렸다. 물을 가득 채운 말통을 집 주변에 빙 둘러 배치하거나 의자 따위를 내놓아 영역표시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한편, 부득불 그걸 치우고 남의 구역에 주차하는 소신족들이 또 있었다.
 
“이 골목 아줌마가 세냈어요?”
 
젊은 사내의 목소리는 억울함과 흥분으로 고요히 떨고 있었다. 사내가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물러설 주인 여자가 아니었다. 다세대 주택 한 채를 차지하기 위해 빌딩 청소부에서부터 도배 보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셔틀콕을 받아치듯 야무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세냈지, 세냈고말고. 아저씨는 자기 집 앞 우선주차 원칙도 몰라요?”
 
주인 여자의 드센 공격을 받아넘기지 못한 사내, 결국 차를 빼고야 말았다. 그렇게 지켜낸 자리에는 사다리차가 들어왔다.
 
사다리차의 주인은 1층 집 남자였다. 그가 단골로 주차하는 자리는 그녀의 창가이기도 했다. 저녁나절이면 사다리차의 검은 바퀴와 기다란 차체 일부가 창의 프레임 안으로 스며들었다. 척 보면 그들이 사는 주택보다도 작지만 사다리를 펼치면 10층까지 닿을 만큼의 아찔한 높이로 변신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이사 나올 때도 그런 사다리차가 왔었다. 어쩌면 같은 차였는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자는 유독 차를 사랑했다. 휴일이면 자기 차를 쓸고 닦고 광을 내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보통의 운전자가 창만 닦는 것에 비해 남자는 차체 전체를 손걸레로 박박 문댔다. 커다란 차를 꼼꼼히 관리하는 그의 모습은 코끼리를 정성껏 목욕시키는 사육사처럼 보였다. 사다리차 닦는 데만 무려 반나절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대단한 직업은 아니라고 해도 1층 남자는 성실한 생활인임에 틀림없었다.
 
시내에 나갔던 그녀가 막차를 타고 귀가하던 날이었다. 집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등을 잔뜩 웅크린 것이 소변을 보는 것 같았다. 오줌 줄기가 떨어지는 자리가 다른 곳도 아닌 그녀의 창가였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핸드백 끈을 손에 감았다.
 
“뭐하는 거예요?”
 
그림자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가로등 때문에, 바지춤 사이로 축 늘어져 있던 물건이 훤히 드러났다. 그 끝으로 더러운 오줌 방울이 뚝뚝 듣고 있었다. 물건의 주인은 뜻밖으로 아는 얼굴이었다. 술이 좀 됐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눈길만은 흔들림 없이 정면을 향했다. 겁을 주기보다 모욕이 목적인 것이다. 어때, 갖고 싶지? 가끔 생각나지? 그런 눈빛.
 
“집 안에다 눈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털어 바지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 비틀비틀, 1층 자기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개 싸이코 새끼! 부부가 똑같잖아. 창가 옆 담장이 검게 젖어 있었다. 알코올 섞인 오줌 냄새가 코끝으로 날아왔다. 그녀는 쫓아 올라가지 않았다. 1층 사람 누구와도 시비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동네에서 있었던 싸움판을 기억하고 있었다. 싸움에서 맹활약을 펼친 사람은 단연 1층 여자였다. 1층 여자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상대편 여자에게 죽기 살기로 대들었다. 이 동네 여자들은 심심치 않게 고성을 지르며 싸움판을 벌이곤 하는데 그날은 좀 심했다. 삿대질로 시작된 손짓이 어깨를 미는 것으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머리채까지 잡아당기게 된 것이다. 머리채 잡는 일은 단순히 교양 없는 짓이 아니다. 무교양을 넘어 인격을 포기하는 일이다. 더불어 상대방의 인격을 살인하는 일이다. 잡는 쪽도 잡히는 쪽도 제3자가 보기에는 똑같이 인간 이하인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왔다. 생오줌 냄새가 생크림처럼 풍성하게 얹힌 뜨거운 실내. 펌프라도 있다면 오줌 냄새를 퍼 올리고 싶었다. 오줌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견딜 수 없는 지린내로 발효될 것이고 그녀의 삶을 오염시킬 것이다. 그녀는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은 후, 거품을 많이 내서 샤워를 마쳤다.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침대에 엎어졌다. 누군가 오줌을 누운 자리처럼 잠자리가 축축하고 뜨뜻했다. 창 너머로 바람이라도 불어오기를 기대했지만 체로 걸러낸 것처럼 신기하게 오줌 냄새만 밀려들었다. 냄새는 후각을 마비시킬 만큼 독했다. 누군가 코 있는 자리를 뭉텅 베어 간 것 같았다. 즙이 흐르는 빨간 생살 위로 고통이 날아와 앉았다. 고통이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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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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