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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여야, ‘비상시국’일수록 민심 존중해야

중앙일보 2016.09.25 21:06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안 의결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은 24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는 비상시국에 굳이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건 유감스럽다”며 거부할 뜻을 비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제기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은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임 사유로 지적된 ‘싼 전셋값’ ‘모친의 의료 혜택’ 등의 의혹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야권인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조차 “사실관계 미흡이고 정치적 공세일 따름”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두 야당은 “지방 학교를 나온 흙수저라 무시당했다”는 김 장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글도 해임 사유로 들었지만 김 장관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그런 만큼 두 야당의 해임 건의는 정략적 발상에 따른 꼼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해임건의안에 아무리 하자가 많더라도 국회를 통과한 이상 대통령은 존중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총선 민의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임을 강조하면서 해임 건의를 하루 만에 일축해 버렸다. 지난 22일에도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사회를 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방’과 ‘폭로성 발언’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박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 등이 연루된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북핵사태·경제위기에 경주 지진까지 겹쳤으니 나라가 비상시국에 처한 건 맞다. 그러나 과거 IMF 외환위기나 북한의 1차 핵실험 같은 비상시국에서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이나 비리 의혹을 집요하게 제기하지 않았는가. 전시 상황도 아닌데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제기된 의혹을 ‘비상시국’을 내세워 일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사실이 아니라면 사실대로 설명해야지 “언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일이 아니다.

 ‘협치’는 증발되고 ‘대치’가 판치는 국회 상황도 우려스럽다. 경제·안보의 복합 위기에서 여야는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이유로 극한 대치에 들어갔다. 당장 26일 개시되는 국정감사 파행은 말할 것도 없고 산적한 경제법안 처리도 물 건너갈 우려가 커졌다. 야당도 반성할 게 많지만 우선 새누리당의 성숙한 대응이 절실하다. 해임건의안 통과에 불만이 많은 건 이해한다. 그렇다고 법으로 정해진 의사 일정을 거부하는 건 새누리당이 틈만 나면 비난해 온 야당의 운동권식 투쟁 정치를 재연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김 장관 문제는 가처분 신청 등 법적으로 대응하면서 국감을 비롯한 의사 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야당의 입지를 좁히고 민심을 얻는 길이다. 혹여라도 대통령의 ‘심기’를 의식해 장외투쟁을 벌인다면 “여당은 역시 청와대 거수기였나”란 의혹만 가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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